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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 변하는 호텔 업계] 비즈니스 호텔 지고 부티크 호텔 뜬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중국인 단체 관광객 급감에 중저가 호텔 직격탄...‘가치 소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 겨냥

▎레스케이프 호텔 최상층에 자리한 '라망 시크레'는 해외 유명 레스토랑과 협업했다. / 사진:신세계조선호텔 제공
신세계조선호텔이 7월 19일 서울 중구 회현동에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를 선보인다. 지상 25층으로 총 204개 객실을 보유한 중급 규모의 호텔은 ‘일상에서의 탈출’이라는 이름처럼 19세기 말 파리의 귀족 문화를 모티브로 했다. 파리 코스테스호텔과 뉴욕 노마드호텔 등 부티크 호텔 디자이너로 유명한 프랑스 자크 가르시아가 디자인을 맡았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세계 유명 레스토랑·바와 협업해 눈길을 끈다. 식음 공간에는 홍콩의 유명 레스토랑과 제휴를 통해 광둥식 중식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며,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있는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과 협업해 호텔 최상층에 레스토랑을 마련했다.

이 호텔은 발표 단계부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야심작으로 꼽혔다. 여기에 신세계조선호텔이 내놓는 첫 독자 브랜드 호텔이자 부티크 호텔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부티크 호텔은 규모는 작지만 건축 디자인와 인테리어, 운영 콘셉트, 서비스 등이 남다른 개성을 갖춘 호텔이다. 기존 체인 호텔이 현대적인 시설과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부티크 호텔은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범수 레스케이프 총지배인은 6월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드웨어 면에서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레스케이프 호텔만의 멋과 감성을 유지하면서 콘텐트 면에서는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독보적인 부티크 호텔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204개 객실은 디럭스룸 124개, 스위트룸 80개로 구성됐다. 프리미엄 객실인 스위트룸의 비중이 40%에 달한다. 총 42개 객실이 있는 아틀리에 스위트의 가격대는 52만원대다. 그만큼 높은 평균 객실단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레스케이프는 시장 연착륙을 위해 풍부한 식음료 콘텐트와 기존 호텔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주 고객층도 단체 여행객보단 신세계백화점과 면세점을 이용하는 부유한 중국인 개별여행객을 비롯 아시아·유럽·미주의 개인 여행객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레스케이프는 반려견과 함께 투숙이 가능하고 식음 매장까지 이용이 가능한 ‘펫 프렌들리’ 호텔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객실 내 반려견 하우스와 식기를 배치하고 목줄과 배변 패드 등 각종 반려동물 제품을 제공한다. 여기에 IT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체크인 등 비대면 서비스도 도입했다.

해외 유명 레스토랑과 제휴, 반려견 동반


▎롯데호텔의 부티크 호텔인 L7강남 스위트룸 객실. / 사진:롯데호텔 제공
신세계그룹은 문화·트렌드·미식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콘텐트 플랫폼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호텔리어 출신이 아닌 김범수 총지배인을 내세운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2004년부터 미식 블로그 ‘팻투바하’를 운영해오다 정 부회장의 눈에 띄어 2011년 신세계그룹에 전격 입사한 김 총지배인은 스타필드·데블스도어·파미에스테이션 등 신세계의 식음·공간·라이프스타일 콘텐트 기획을 맡았다. 김 총지배인은 “식음료 가격을 기존 호텔보다 낮게 책정해 더 많은 고객이 즐길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겠다”면서도 “객실만큼은 5성급 호텔 수준으로 제값을 받을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레스케이프와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한 부티크 호텔 ‘L7 명동’은 롯데호텔의 부티크 호텔 브랜드다. 롯데호텔은 2016년 1월 오픈한 L7 명동을 시작으로 홍대·강남 등 주요 상권에 부티크 호텔 브랜드 L7을 선보였다. L7의 숙박비는 롯데호텔의 비즈니스 호텔 브랜드인 롯데시티호텔과 비슷한 10만~2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롯데시티호텔과 달리 지역 특성을 반영한 시설을 마련하고, 독특한 문화 콘텐트를 가미해 차별화했다. L7 홍대는 미술·음악·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아티스트와 콘텐트 창작자가 교류하고 즐길 수 있는 놀이터 콘셉트를 강조했다. 최상층부에는 다른 지점에 없는 루프톱 바와 수영장을 갖춰 디제잉과 공연, 풀 파티가 열리는 식이다. 일찌감치 시장을 선점한 덕분에 이제는 롯데호텔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 L7 명동과 강남은 매월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대림그룹 산하 글래드호텔스그룹 역시 2016년 9월 강남에 부티크 호텔을 선보였다. 파티룸을 강조한 ‘글래드 라이브 강남’은 전 객실에 음향기기 전문 업체인 하만카돈의 블루투스 스피커, 빈백 소파, 무빙테이블이 있어 소비자가 직접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글래드호텔 관계자는 “실내 풀이 있어 수영장 파티를 즐길 수 있는 풀 스위트룸은 20~30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아 성수기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됐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4월에는 글로벌 호텔 체인 메리어트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부티크 호텔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이 홍대에 문을 열었다. 옛 서교호텔을 재건축한 이 호텔은 홍대 지역의 청년 문화와 예술 문화를 반영한 콘셉트가 특징이다. 총 272개의 객실은 6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그중 4개의 아티스트스위트룸은 4명의 국내외 아티스트가 참여해 객실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꾸몄다. 내년에는 하얏트호텔의 럭셔리 부티크 브랜드인 안다즈 호텔이 서울 압구정동에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 수 년 간 비즈니스 호텔 짓기에 급급했던 국내 호텔 업계가 부티크 호텔로 눈을 돌린 까닭은 호텔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2013년 191개(객실 2만9828개)였던 서울시 호텔 수는 지난해 399개(객실 5만3453개)로 급증했다. 2022년까지 서울 시내에 준공 예정인 호텔도 188개(객실 2만8201개)에 달한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 수는 급감했다. 특히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중국 단체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비즈니스 호텔을 주축으로 한 3성급 이하 호텔은 공실률이 40~5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화로운 부대시설 대신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한 교통, 깨끗한 시설을 제공해 중국인 관광객에게 인기를 끈 비즈니스 호텔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중국 외 아시아권 젊은층 관광객 늘어

대신 중국 외 아시아 지역에서 온 젊은층 관광객과 20~30대 내국인 투숙객은 크게 늘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관광 업계에서도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탄생한 세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한 마케팅 전문 기업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현재 세계 호텔 고객의 30%가량을 차지하며 2020년엔 50%까지 차지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2년 사이 2030세대의 호텔 이용률이 급격히 늘어났다. 데일리호텔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데일리호텔 앱을 통한 특급호텔 객실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400% 증가했다. 이 가운데 2030세대 사용자가 전체 고객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개인화된 서비스와 독특한 경험을 중시한다. 특히 다른 세대에 비해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가치 소비지향적인 특징을 지녔다. 이들에게 독특한 분위기의 부티크 호텔은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김홍범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의 성장으로 앞으로도 개성있는 부티크 호텔이 큰 인기를 끌 것”이라며 “다만 독특한 인테리어 못지 않게 고객의 요구에 맞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1442호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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