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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본격 도입그런가 하면 한 기업이 ‘퍼스트 무버(선도자)’로서 렌털 개념을 대대적으로 도입해 소비시장 판도를 송두리째 바꿨던 사례도 있다. 웅진그룹이다. 웅진은 창업주인 윤석금 회장이 1980년 세운 ‘헤임인터내셔널(현 웅진씽크빅)’이라는 출판사가 그룹의 모태다. 이 회사는 학습지와 전집 등을 발행하면서 돈을 벌었다. 애초 윤 회장은 1971년부터 창업 직전까지 백과사전을 발행하는 영국 기업 ‘브리태니커’의 국내 지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창업 자금을 마련했다. 그는 브리태니커 입사 1년 만에 54개국 영업사원을 통틀어 판매 1위를 기록할 만큼 방문판매 수완이 빼어났다.창업하고서도 출판업으로 목돈을 모은 윤 회장은 9년 만인 1989년 웅진코웨이(현 코웨이)를 설립했다. 정수기 판매가 본업이던 웅진코웨이는 국내 가전 업계에서 최초로 렌털 사업을 도입하면서 동종 업계는 물론 소비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98년 4월의 일이다. 소비자가 매월 2만6000~5만1000원을 내면 고가 정수기를 빌려주고 정기적으로 관리해줄 테니 굳이 사서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윤 회장이 직접 낸 아이디어였지만 사내에선 “고가 가전을 사람들이 빌려서 쓰겠느냐”며 회의를 품는 임직원이 다수였다.윤 회장은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 렌털 사업을 결심했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소비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정수기 같은 고가 상품은 매출이 뚝 떨어졌다. 궁여지책으로 무이자 할부 행사를 진행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어 어느 순간 정수기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회사를 되살릴 묘안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시장은 침체기였지만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많았으므로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어 그는 렌털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 비싸니까 팔지 말고 빌려주자!’ 젊은 시절 방문판매 현장에서 수많은 소비자들을 만나 반응을 살피고 여러 얘기를 들었던 생생한 순간들이 뇌리를 스쳤다.그의 생각은 이랬다.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주요 생활가전은 제품 불량이 아닌 이상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소비자의 특별한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는 다르다. 필터 교환 등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이런 관리에 소홀했을 땐 아무리 잘 만든 첨단 제품이더라도 소비자 건강에 해가 된다. 따라서 빌려주되 관리까지 기업이 책임진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 없는 비용으로 보다 편리하게 제품을 쓸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팔지 않고 빌려주니 제품 소유주는 여전히 기업이고, 그런 만큼 기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품에 대한 관리를 꾸준히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기만 하면 제품에 대한 성의 있는 관리와 그 지속성을 신뢰할 것이다.’예측은 들어맞았고 렌털 사업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웅진코웨이는 렌털 서비스 제도를 도입한 지 4년 만인 2002년 렌털 서비스 가입 계정 100만개 돌파에 성공해 가전업계를 놀라게 했다. 2010년엔 500만개를 넘어섰다. 웅진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2011년 한때 재계 32위(자산 규모 기준)에 오를 만큼 나날이 사세가 확장됐다. 윤 회장은 “만일 IMF 사태로 위기를 맞지 않았다면 정수기 렌털 제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끔은 위기가 좋은 약이 된다”고 회고했다(자서전 [사람의 힘]). 웅진그룹은 이처럼 잘나가던 때 극동건설 인수 등 무리한 사업 확장에 나섰던 게 화근으로 작용, 경영난에 처한 뒤 법정관리를 받고 웅진코웨이마저 떠나보내야 했다(2013년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 현재 윤 회장은 코웨이 인수를 노리면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청호나이스·SK매직·쿠쿠홈시스도 100만 계정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