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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위기론 진실은] 초호황 꺾여도 2~3년 호황 이어질 수도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세에 내년 명목 수출증가율 하락 전망…기술 격차 확대, 생태계 정비 등 과제 산적

최근 2년 간 초호황을 이어오며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반도체 산업 안팎이 최근 심상치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한 D램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공급 증가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가격이 더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의 무서운 추격도 악재다. 가격 하락과 중국의 추격 속에 일각에선 반도체발(發) 한국 경제 침체까지 거론된다. 아직은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아 당분간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겠지만, 내년부터는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약세로 돌아서면서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에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의 반도체 생산라인.
한국 수출은 요즘 날개를 달았다. 7월에는 사상 최초로 5개월 연속 5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7월 수출은 518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보다 동기보다 6.2% 증가했다. 월간 실적으로는 역대 2위다. 특히 올해 3월부터 5개월 연속 500억 달러를 돌파했다. 1∼7월 누적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다. 이 같은 수출 증가세는 반도체가 이끌었다. 7월에만 전체 수출액의 20%인 103억8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넘치는 수요 덕에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전체 상장사의 절반에 육박한다. 한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반도체가 국내 수출의 기둥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반도체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면서 편식에 따른 수출 불균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도체 비중은 수출액 기준으로 지난해에까지만 해도 17.4%였지만, 올 들어서는 20.3%로 커졌다. 전문가들은 “쏠림 현상이 심화한 상태에서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반도체 수출이 감소하고, 연쇄적으로 한국 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도체 가격, 낸드는 내리고 D램은 보합


최근의 한국 반도체 실적 호조는 세계 반도체 경기가 ‘초(超) 호황’을 맞은 덕분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면서 메모리반도체(데이터를 저장하는 반도체) 가격이 크게 올랐고, 이 같은 ‘가격 효과’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사상 최대 실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D램(DRAM, 임시저장 메모리반도체) 수출 물량은 전년에 비해 1.4% 감소했다. 소폭이긴 하지만 수출 물량이 줄었는데도 수출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건 순전히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오른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요가 늘고 가격이 오르는 ‘초호황’이 끝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의 불거진 ‘반도체 위기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반도체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는 올해 1월 “도시바와 삼성, 인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코퍼레이션 등 주요 낸드플래시(NAND Flash, 영구저장 메모리반도체) 제조 업체의 생산능력 증대가 반도체 산업에 순차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2019년 이후에는 낸드플래시 시장에 공급 초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반도체 시장은 공급이 조금만 넘쳐도 가격이 급락하고, 조금만 부족해도 급등하는 변덕이 심한 사이클을 지니고 있다. 1995년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만 영업이익 2조원을 벌어들이는 ‘전설’을 썼다가, 이듬해 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D램 가격이 50달러에서 4달러까지 추락하면서 영업이익이 1000억원대로 곤두박질한 게 대표적인 예다. 결국 수요가 줄지 않는다고 해도 2019년 이후 공급이 많아지면 낸드플래시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낸드플래시 가격은 약세를 보이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낸드플래시의 7월 말 평균고정거래가격(128Gb 16Gx8 MLC 기준)은 5.27달러로 전월에 비해 5.89% 떨어졌다. 지난해 9월 전월(8월) 대비 3.11% 하락한 5.6달러를 기록한 이후 처음으로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특히 가격 하락폭이 2015년 12월(-4.66%) 이후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D램익스체인지 측은 “중국의 ZTE(국영 통신장비·스마트폰 제조사)에 대한 미국의 제재와 미·중 무역분쟁 등의 영향이 낸드플래시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폰·통신장비 등의 제품 수요와 판매 감소가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는 설명이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가 37%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시장점유율이 9.8%로 도시바(19.3%)·웨스턴디지털(15%)·마이크론(11.5%)에 이어 5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흔들린 것도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에 따른 실적 악화를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통계를 봐도 비슷한 흐름이다. 한국은행의 낸드플래시 수출물가지수(2010년=100, 달러화 기준)를 보면 지난해 10월 49.75를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5월에는 40 밑으로 내려온 데 이어 6월에는 37.27까지 떨어졌다. 고점인 지난해 10월과 비교하면 8개월여 만에 25.1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수출물가지수는 수출품목의 가격변동을 측정하기 위한 지수로, 낸드플래시 수출물가지수 하락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수출하는 제품 가격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세가 국내 반도체 기업의 주력 상품인 D램으로 옮겨 붙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세계 D램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72.8%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 D램 가격은 아직 하락세로 돌아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2년 간 줄기차게 오르던 가격 상승세가 멈췄다. 한국은행의 D램 수출물 가지수는 반도체 시장 호황과 함께 2016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22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지만 5월 이후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D램의 7월 말 평균고정거래가격(DDR4 8Gb 1Gx8 2133/2400MHz 기준)은 전달과 같은 8.19달러로, 2016년 7월 말부터 이어온 분기별 상승세가 멈췄다.

중국, 저사양 메모리반도체 양산 시작


시장에서는 최근 2년 간 이어진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가격이 하락 추세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이르다”면서도 “지난해와 같은 오름세는 꺾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올해 말부터 중국이 낸드플래시 양산에 들어가면 가격 하락 기울기가 가팔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술적인 면이나 완성도 면에서는 아직 국내 기업 제품에 비할 수 없지만, 중국이 저가·저사양 낸드플래시 생산을 시작으로 반도체 생산을 늘리면 공급이 늘어나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중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8월 6일(현지 시간) ‘반도체 본고장’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2세대로 불리는 32단 3D 낸드플래시 시제품을 선보였다. 10월 본격적인 시험 생산에 들어가 내년부터는 대량 생산을 통해 시장에 푼다는 계획이다. 국내 기업의 주력 상품(4세대로 불리는 64~72단 3D 낸드플래시)과는 성능 차이가 크지만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반도체를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김영찬 모간스탠리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 요인이 올 4분기부터는 사라질 가능성이 커 가격 하락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도 8월 6일 반도체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로 내년 ‘명목 수출증가율’이 ‘실질 수출증가율’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명목 수출증가율 전망은 올해 대비 1.5%로, 실질 수출증가율 예상치(3.5%)보다 2%포인트 낮다. 내년 명목 수출증가율이 실질 수출증가율보다 낮으면 2016년 이후 3년 만의 일이 된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경기 호황에 따른 반도체 가격 상승에 힘입어 명목 수출증가율이 15.8%로 실질 수출증가율(3.8%)을 훌쩍 웃돌았다. 올해도 반도체 호황이 이어져 명목 상품수출 증가율이 5.6%로, 실질 증가율(3.5%)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명목 수출증가율이 꺾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둔화할 수 있다. 명목 변수와 연관된 기업 매출, 정부 세수, 경상수지 증가세도 둔화한다. 결국 교역조건 악화는 실질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져 내수 위축으로 번질 수 있다. 7월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은 “최근의 수출입 가격 동향을 고려할 때 향후 명목 성장률이 지난 3년 간 유지한 5% 내외보다 상당히 낮은 3%대에 머무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최근의 우려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으로 초호황이 지속되기는 어렵지만 반도체 가격이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사실 반도체 위기론은 지난해부터 조금씩 흘러 나왔다. 지난해 나온 반도체 위기론의 본질은 주요 메모리반도체 수요처인 스마트폰 시장 침체로 수요가 크게 줄 것이라는 우려였다. 과거에는 PC와 스마트폰 등 소비자용 제품이 메모리반도체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 들어서도 소비자용 제품 수요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그래픽카드·서버 등 기업 고객 수요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즉,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다소 나빠질 수는 있겠지만 수요 증가에 따라 반도체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2년 간의 초 호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황으로 바로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2~3년 간은 시장이 어느 정도 유지될 것”이라며 “이 기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은 ‘초격차 전략’ 구사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과의 양산기술 격차 벌리기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7월 15조원을 투자해 경기도 이천에 차세대 첨단 미세공정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갖춘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새로 건설키로 했다. SK하이닉스는 SK 편입 이후 지속적인 투자와 생산시설을 확대해왔다. 이천 M14, 건설 중인 청주 공장에 이번에 발표한 이천 신규 공장까지 세 곳에 대한 총투자 금액은 46조원을 넘어선다. 삼성전자는 8월 8일 국내에만 13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적으로 경기도 평택 반도체 부지에 2라인을 추진하고 있다. 평택 부지는 반도체 라인 4개를 지을 수 있는 규모다. 정부도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향후 10년 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연구·개발 투자도 좋지만 후방산업을 육성해 반도체 생태계를 견고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반도체 호황에도 국내 반도체 관련 중소·중견기업 5곳 중 1곳은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 특허(실용신안) 출원 건수도 2012년 1만3720건에서 2016년 1만1044건으로 계속 줄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 비해 뒤떨어진 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개발 전문회사)나 파운드리(Foundry,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사업)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반도체 위기론의 또 다른 축 ‘시스템반도체’ - 세계 시장점유율 3%로 중국에도 뒤져


최근 반도체 위기론의 또 다른 요인은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지나친 쏠림 현상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4분의 3을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메모리반도체가 데이터를 ‘기억’하는 장치라면, 시스템반도체는 고차원적인 데이터의 ‘처리’를 담당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같은 시스템 반도체의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시스템반도체의 경쟁력이 매우 낮은 편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7월 30일 삼성전자를 방문한 자리에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우리 기업 특허·설계·제조분야 경쟁력이 모두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는 열악한 생태계와 자본 및 전문 인력 부족,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미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반면 중국은 중앙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중국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1%에 이른다. 세계 팹리스 업계 10위권에는 3개 업체가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50위권에 LG그룹 계열의 실리콘웍스가 이름을 올린 게 유일하다. 중국은 팹리스 산업에 지난 3년 간 반도체 투자 중 17%를, 향후 25%까지 늘린다는 전망이다.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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