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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결권 자문사 믿을 만한가] 지배구조에 입김 공정성·신뢰성 의문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
블랙록·뱅가드, ISS 분석의견 그대로 따라 인력·시스템 부족해 보완 필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현대글로비스와의 분할합병에 대해 주주들에게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권고하면서 두 회사의 분할합병은 무산됐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8 CES 현대모비스 전시부스 모습.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 사업을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에 흡수합병하는 분할합병을 결정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0.61대 1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이번 분할합병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불리해 보인다”며 주주들에게 5월 말 열리는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현대글로비스와의 분할합병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권고했다. 결국 주주들은 이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은 무산됐다. 현대모비스 분할합병 건을 계기로 의결권 자문사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기업지배구조에서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커지는 가운데 이들의 주주권 행사가 의결권 자문사의 판단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이 커지는 반면 이들의 신뢰성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이에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주요 선진국도 의결권 자문사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ISS· 글라스루이스 시장점유율 97% 달해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은 미국 상장기업 지분의 60%, 이 중에서도 특히 지분의 23%를 보유한 상위 10대 기관투자자들이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최대 기관투자가인 블랙록이 주주총회에서 찬성한 의안 중 87.9%가 ISS가 찬성 추천을 한 것이고, 반대 의안 중 69.2%는 ISS가 반대한 의안이었다(ACCF, 2018 통계). 세계 최대 인덱스펀드 운용회사인 뱅가드 역시 찬성 의안의 88.2%, 반대 의안의 80.3%를 ISS의 추천에 따라 행했다. 기관투자가가 아닌 의결권 자문회사가 기업지배구조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겉으로는 기관투자자가 주주권을 행사하며 기업지배구조에 참여하지만, 실상은 의결권 자문회사가 기업지배구조의 주인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는 의결권 자문회사를 기업지배구조의 사실상의 감독기관, 사실상의 지배구조 조타수(arbiter), 사실상의 행동주의자(activist)라고 말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시장의 과점이다. 미국에서의 글로벌 자문사 시장점유율은 ISS가 60%, 글라스루이스(Glass Lewis) 37%로 ‘빅 2’가 전체의 97%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로컬 자문사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물론 ‘빅 2’ 중심의 독과점시장은 비즈니스모델 속성과 시장경쟁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의결권 자문시장은 주주총회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개최되는 업무 속성으로 인해 서비스 인프라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예컨대 지난해 블랙록이 의결권을 행사한 건수는 49만4752건이다. 단기간에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를 담당하는 블랙록 내부 직원은 31명이 전부다. 블랙록 같은 대형 자산운용회사들이 자문 커버리지가 넓은 이들 자문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의결권 자문사들이 영향력을 공정하게 행사하느냐다. 지금까지 조사 결과는 부정적이다. 유럽·캐나다·미국 등에서 진행된 규제개혁 논의에서 제기된 의결권 자문사의 문제점은 크게 이해상충, 데이터 오류, 의안분석 방법론과 관련된 투명성 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하원 청문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주총 시즌이 되면 상장기업 CEO들이 주요 주총의안에 대해 경영진에게 유리한 자문을 하도록 메릴랜드주 록빌에 있는 ISS 본사를 찾아 로비하는 풍경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ISS는 심각한 이해상충에 노출돼 있다. ISS는 다른 자문사와 달리 기업고객에게 컨설팅을 하고 있다. 기업 상대로 어떻게 하면 지배구조 등급을 높이고 의결권 자문회사로부터 의결권 찬성 추천을 받을 수 있는지 컨설팅을 하고 있다. 동시에 기관투자자에게 해당기업 지배구조 의안에 대해 의결권도 추천한다. ISS는 해당 업무를 완전 자회사로 두고 법률적·물적·기술적 방화벽을 두는 등 이해상충 완화정책을 펼친다고 하지만 공정 자문에 대한 의심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글라스루이스는 컨설팅에 대한 이해상충은 없으나 타 금융서비스 겸영(소유구조) 상의 이해상충이 존재한다. 2007년 글라스루이스를 인수한 중국계 복합금융회사는 이해상충 문제와 시장 반발로 1년도 되지 않아 캐나다 온타리오 사학연금(OTPP)에게 지분을 매각했다. OTPP 역시 사모투자를 통해 수많은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공정한 자문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의결권 자문사의 구조적 문제점은 분석 데이터와 의결권 추천의 정확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부정확성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기본은 업무의 시간적 집중에 비해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6년 9월 기준으로 ISS는 115개 국가에 3만9000건의 주주총회, 1600개의 기관투자자를 관리하고 있는데 인력은 900명이 조금 넘는다. 900명의 인력이 경영사항, 주주제안, 재무성과, 화상플랜, 이사회, 경영권 분쟁 등 광범위한 기업 데이터를 관리해야 한다. 더구나 이런 업무도 주주총회가 집중된 기간, 1년 중 4달 정도에 몰려 있다.

의결권 자문사, 스튜어드십코드 참여해야

이 같은 자문사 업무 특성상 의결권 자문사의 데이터 오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데이터 오류 문제를 스스로 개선하기 위해 ISS와 글라스루이스의 경우 의안 추천 초고를 해당 회사에 미리 보내 피드백을 받고 있다. ISS는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위해 피드백 리뷰위원회를 두고 있다. 회신, 의견 제시는 주총 보통결의 사항에 한정되며, ISS는 의안 추천 내용을 포함하고 글라스루이스는 의안 추천 근거 자료만을 회신,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는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핵심 내용은 미국 증권거래위원(SEC)에 등록해야 하고, 분석 방법론과 분석 절차를 공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윤리규정, 잠재적 이해상충 유형과 관리정책 등도 의무 공시사항이다. 한국의 경우 의결권 자문 업무는 압축적 태동기에 있다. 때문에 한국의 의결권 자문사가 기업지배구조 발전에 기여하는 건강한 사회적 자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규제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우리나라 의결권 자문사들은 그들이 자문 과정에서 직면하는 이해상충이나 투명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사실 검증 과정도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시장규율이나 규제규율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할 자세가 필요하다.

의결권 자문사 신뢰 제고를 위한 방안은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의결권 자문사가 스튜어드십코드를 엄격하게 이행해 독립성·투명성·전문성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는 방법이다. 이해상충의 경우 잠재적 이해상충을 유형화하고 그것의 관리방법과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데이터 오류는 ISS나 글라스루이스처럼 피드백 장치를 도입하고, 추천 방법론 역시 글로벌 사례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개발하고 공개해야 한다. 두 번째는 기관투자자가 수탁자책임의 일환으로 위탁계약 과정에서 의결권 자문사의 독립성·전문성·투명성 내역의 공개 혹은 보고를 요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적 규제 도입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의 SEC처럼 투자자문업자 등록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의결권 자문사들이 투명성 등에 자발적으로 가입하거나 트럼프 금융선택법안처럼 등록을 강제하는 방법이다.

1449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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