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5대 핵심 상권에서도 고전
장사 잘되는 상권에서도 권리금 분쟁장사가 잘되는 상권에서도 권리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자영업자가 많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부각된 종로구 서촌에서 봉평막국수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태림(46)씨는 권리금을 놓고 건물주와 4년째 분쟁 중이다. 김씨는 권리금을 받고 식당을 정리하려 했지만 건물주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권리금을 내고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있지만 건물주가 계약서에 사인을 안 해 주면 임차인은 권리금을 받을 방도가 없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문가들은 권리금 양성화를 꼽는다. 권리금 폭락이나 건물주와의 갈등 해결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현재 20%도 안 되는 권리금 계약서 작성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권 법무법인 우송 변호사는 “계약서 작성을 활성화해야 권리금을 줬다는 근거라도 남는다”며 “근거가 있어야 구제받든 소송을 통해 보전받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권리금을 온전히 회수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며 “지방자치단체 등에 분쟁 조정 기구를 확대해 자영업자의 피해를 줄여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권리금이 법적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건 2015년 1월 개정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권리금의 정의’가 포함되면서다.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에서 영업하는 자(또는 영업을 하려는 자)가 영업시설·비품,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상가건물의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양도 또는 이용 대가로서 임대인, 임차인에게 보증금과 차임 이외에 지급하는 금전 등의 대가’로 정의됐다. 상가의 현재 임차인이 새로 들어올 사람에게 받는 자릿세라는 얘기다. 임차인이 건물주에게 내는 보증금과 월세와는 별개다. 상황별로 나눠 보면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전 임차인이 단골을 만들고 장사 잘 되는 상가로 번성시켜 놓은 데 대한 권리 즉, ‘영업권’이다. 또 임차인이 영업 시작 전 인테리어 등에 투자한 ‘시설 권리금’이 포함돼 있다. 원래 장사가 잘 되는 목 좋은 상가에 붙는 ‘바닥 권리금’도 있다.
‘권리금 속 상권 프리미엄’에 갈등 소지 많아문제는 권리금에도 상권 프리미엄이 끼어든다는 데 있다. ‘권리금 속 상권 프리미엄’은 실제로 임대인과 임차인이 가장 큰 이견을 보이고 분쟁의 원인이 되는 부분이다. 뜨는 상가일 경우 땅값·임대료·권리금 등이 모두 뛰게 마련이다. 임차인은 본인이 일군 영업적 가치를 더해 기존보다 더 높은 권리금을 받으려고 한다. 경기가 좋아 새 임차인을 쉽게 구하면 권리금 문제는 수면 아래로 들어간다. 그러나 새 임차인이 나서지 않거나 건물주가 상가를 직접 운영하려 할 경우 분쟁이 발생한다. 특히 건물주가 계약 기간 종료를 이유로 임차인에게 나가라고 할 경우 높아진 권리금을 누가 차지할 것이냐를 두고 극한 갈등이 생기곤 한다. 국내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선 ‘키 머니(Key money)’, 중국은 ‘주안랑페이(轉讓費)’라는 비슷한 개념이 존재한다.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임차인의 영업권이 법으로 혹은 관례로 보호되고 있다. 국내에선 광복 후 권리금 갈등 문제가 신문에 보도되곤 한 걸로 봐서 꽤 오래 전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상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경기 확장기에 권리금이 생겨나고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박스기사] 권리금 갈등 해법은 - 임차인끼리 권리금 계약서 꼭 써야2년여 분쟁 끝에 결국 지난 6월 폭력사태를 빚은 ‘서촌 궁중족발사건’을 지켜본 주변 상인들은 “중재자가 있었더라면…”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궁중족발 사장 김모씨는 뒤늦게 서울시 상가건물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이라 분쟁조정위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었다.권리금·임대료 갈등은 꼭 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수년씩 걸리는 민사소송보다 효율적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시가 지난 2014년부터 운영 중인 분쟁조정위원회가 좋은 예다. 변호사·감정평가사·교수 등 26명의 전문가로 꾸려진 분쟁조정위원회는 현장 답사와 법률 검토 등을 토대로 조정과 합의를 끌어내고 있다. 실제 조정 성립 사례도 증가 추세다. 올해 상반기 접수된 72건의 임대차 분쟁 조정 신청 중 31건은 중재·자체 합의했으며 11건은 현재 조정이 진행 중이다. 72건 중 임대인이 중재를 신청한 건수가 5건이라는 것도 의미 있다.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법률 자문과 함께 주변 가게의 임대료·권리금 시세 등을 조사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얘기하면 분쟁 당사자들이 대체로 수긍한다”며 “둘이 내버려 둘 때보다 전문가가 개입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임대인·임차인 간 갈등 원인 1위는 권리금이었다. 상반기에만 31건을 비롯해 2016년 이후 접수된 분쟁조정 193건 중 83건이 권리금으로 인한 분쟁이었다. 하지만 분쟁조정위원회에서도 권리금 분쟁이 합의에 이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분쟁조정위원회 관계자는 “올해 들어 권리금으로 인한 분쟁이 조정을 통해 해결된 경우는 7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권리금 분쟁 해결이 이렇게 어려운 원인은 임차인이 주장하는 권리금의 산정 근거나 법적 효력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보통 권리금은 현재 장사 중인 임차인이 그 전에 장사하던 사람한테 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른바 영업권에 대한 권리금이다. 하지만 임차인 간 계약서를 작성해 두지 않은 이상 액수나 실제 지급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이상혁 상가정보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임차인끼리 권리금을 주고받을 때 계약서를 쓰는 경우는 20%가 안 된다”며 “권리금을 주고받을 때도 계약서를 쓰도록 유도해야 특정 시기에 한 사람이 피해를 뒤집어쓰는 걸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권리금 계약서를 쓰고 관할 세무서에 신고하면 부가가치세 10%를 낸다. 또 권리금이 1000만원이 넘을 경우는 기타금액으로 종합소득에 포함해 소득세율이 높아진다.- 김영주·김민중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