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루타크는 로마시대에 활동한 그리스 작가이다. 그는 말년에 그 유명한 [영웅전]을 집필해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명의 전기를 다루었다. 그중 루쿨루스라는 로마 장군의 편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기원 전 1세기 경 로마제국 동쪽의 강대국인 아르메니아의 왕은 티그라네스 대제였다. 로마의 확장으로 국경을 마주하게 되자 루쿨루스는 티그라네스에게 로마의 조공국이 되라는 요구를 보내왔다. 티그라네스가 이를 거절하자 루쿨루스는 대군을 이끌고 기습적으로 이 제국으로 쳐들어왔다. “첫 번째 전령(메신저)이 루쿨루스가 쳐들어 온다고 알리러 오자 기분이 나빠진 왕은 그 전령의 목을 잘랐다. 이후 아무도 더 이상을 소식을 가져오지 않았다. (나쁜) 소식이 전혀 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왕은 그냥 앉아서 그에게 아부하는 자들에게만 귀를 귀울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루쿨루스의 군대에게 포위당했다.” 이것이 바로 서양에서 가장 오래 전 기록된 ‘메신저 쏘(아 죽이)기’의 사례라고 한다. 어떤 현상을 초래한 책임을 당사자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애먼 사람에게 씌우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2. 서기 227년의 일이다. 제갈량은 위나라를 치러나가 위나라의 사마의가 이끌고 나온 20만 병력과 맞닥뜨리게 됐다. 제갈량은 결전을 앞두고 아군 보급로의 요충지 가정(街亭)의 수비를 튼튼히 할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마속(馬謖)이란 젊은 장수가 이 중임을 맡겠다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의 친구 마양(馬良)의 아우로, 총명하고 군략에도 밝아 평소 제갈량이 아끼던 장수였다. 제갈량은 마속에게 세 면이 절벽인 지형지물을 활용해 기슭에 진을 치고 자리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마속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적을 유인, 격멸하겠다는 요량으로 기슭이 아니라 정상에 진을 쳤다. 과연 위나라 군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는데, 그들은 산기슭을 포위한 채 시간을 끌어 마속 군대의 식수와 식량 보급을 끊었다. 결국 마속은 부하들 대부분을 잃고 간신히 본진으로 돌아왔다. 가정을 적에게 내줌으로써 위나라 정벌은 수포로 돌아갔고, 촉나라군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령을 어긴 마속은 군율에 따라 참수형에 처해졌다. 마속의 재주를 아낀 사람들이 선처를 호소했지만, 제갈량의 태도는 단호했다. 사사로운 정으로 군율을 어기면 군대 전체의 기강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서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읍참마속(泣斬馬謖·울면서 마속을 참수하다)이다.
#3. 개봉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난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네오 일행이 기계가 만든 가상현실 세계인 ‘매트릭스’에 침투해 어느 집 안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네오의 눈 앞에 시커먼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 가더니 바로 뒤에 똑 같이 생긴 고양이가 지나간다. 이에 주인공의 입에서 “데자뷰”라는 말이 나온다. 곧이어 네오의 연인인 트리니티의 이런 대사가 이어진다. “데자뷰는 보통은 매트릭스의 결함이야. 그들이 무언가 바꾸려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 과연 그것은 함정이었다. 프랑스어어 데자뷰는 굳이 직역하자면 ‘이미 본 적이 있는’의 뜻으로서 보통은 ‘기시감’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34세 먹은 한 남자가 말라리아를 앓고 난 후 예전에 전혀 경험한 바 없는 것에 대한 기억을 자꾸 이야기했다고 한다. 신경과학자 FL 아르노라는 사람이 1896년 한 학회에서 사례 발표를 하며 이 증상을 묘사하는 용어로 주창한 것이 효시가 됐다고 한다.#4. 참여정부 시절의 일이다.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요직을 맡아 부동산 정책 등 경제 정책의 근간을 만들어온 인사가 나날이 집값이 폭등하자 큰 비난을 받게 됐다. 심지어 “아마추어”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아마추어가 아름답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어디 한번 그 세금 내보시라”고 발언하며 효과를 확신했던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별별 정책을 11번이나 내놓아도 집값 앙등은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정권의 지지도는 갈수록 곤두박질쳤다. 이렇게 오르던 집값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몇 차례 올리고서야 꺾였다. 이에 청와대의 한 행정관은 참여정부의 임기 말에 개인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집값은 결국 금리와 통화량의 놀음인 것을….”
현 정부는 얼마 전 출범 이후 3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그만큼 집값, 특히 서울 지역의 집값이 폭등세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두 번의 대책이 주로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췄던 데 비해 금번 대책은 수요 억제의 강도를 더욱 높이면서도 공급 확대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대책 이후 주택거래가 거의 실종되고 여러 곳에서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금번 대책도 지난 번처럼 효과는 단기에 그칠 것이며 이후 다시 폭등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그런데 이런 상황을 보면서 데자뷰란 말이 자꾸 입에 감긴다. 지금 상황이 ‘참여정부 시즌 2’라고 할만큼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 시절에 외환위기 극복의 명목으로 사상 최저 금리와 함께 4~5배 늘어난 총통화량 등 유동성 과잉의 상황을 물려 받았다. 현 정부도 전전 및 전 정부에서 단행된 8번의 금리 인하로 풀린 넘치는 유동성을 물려받았다. 부동산이란 이론적으로도 금리와 통화량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니 당연히 두 정부 모두 부동산 폭등을 수습해야 되는 ‘재수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그런데도 참여정부 시절에는 아예 이런 이론적 근거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은 잘 모르고) 세금을 동원해 수요를 억제하려 했다. 현 정부는 이런 이론적 근거는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참여정부 시절보다 너무 엄청나게 늘어난 가계부채 문제의 뇌관을 건드릴까 역시 같은 노선을 택하는 것 같다. 물론 투기수요를 원망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참여정부 시절 ‘복부인, 기획부동산업자, 건설업자, 그리고 일부 주요 신문’을 적으로 삼더니현 정부는 다주택자를 적으로 돌리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집값 대책으로 내놓은 공급 확대 정책으로 대규모의 ‘토지보상비’가 풀렸고 이것이 다시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집값을 올리는 연료 역할을 했다. 현 정부의 공급 확대 정책도 같은 귀결에 이를 공산이 크다. 이러니 데자뷰라고 하지 않겠는가?얼마 전 통계청장과 기상청장이 전격적으로 교체됐다. 청와대의 변명에도 ‘메신저 쏘기’형 인사라는 말이 파다하다. 그런데 교육부총리의 경우를 제외하고, ‘읍참마속’ 형 인사는 ‘고용참사’와 ‘자초형 불경기’ 현상에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현 정부가 참여정부 후반부의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첫째는 총리도 언급한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최소한 금리 인상은 세금 인상이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보다는 훨씬 덜 할 것이되, 주택시장에 확실한 시그널을 줘서 집값 안정으로 이어질것이다. 둘째는 경제 정책 관련 읍참마속형 인사 쇄신이다. 새로운 스태핑으로 부동산 정책 등 경제 정책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해 ‘영점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발 이제는 ‘아마추어가 아름답다’라는 소리는 안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