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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과학문화산업은] ‘과학은 축제다’ 관광상품이 된 기술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유럽 최대 과학축제 올해로 30년째 열려… 연간 1000만 명 찾는 항공우주박물관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된 엔터프라이즈 우주왕복선. 이 박물관은 워싱턴 D.C. 10대 관광명소로 꼽히며 연간 10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 사진:AFP
지난 3월 영국 에든버러에서는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가 열렸다. 이 행사는 유럽 최대 규모 과학축제로, 인간 유전자 변형이 처음 시작된 1989년부터 해마다 3~4월경 열린다. 30주년을 맞은 이번 축제의 주제는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으로, 에든버러 시내 30개 장소에서 270여 개의 과학이벤트가 펼쳐졌다.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 총괄책임자인 아만다 틴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과학과 사회·문화·예술이 결합된 축제를 즐기면서 과학기술이 어려운 학문이 아닌 우리 삶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것이 목표”라며 “연간 15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고 있고, 이색적인 과학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축제에 참여하는 기관도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과 에든버러 시티아트센터, 보타닉 가든, 동물원, 에든버러 박물관 등으로 다양하다. 축제 기간 동안 에든버러 랜드마크 곳곳에서는 특성에 맞는 과학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시티아트센터는 가정용 과학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는 한편 과거 왕립수의과학교로 사용하던 서머홀에서는 과학에 관심있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특징이다. 에든버러 과학축제는 연례 축제와 더불어 1년 내내 스코틀랜드 전역의 학교를 방문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정기적으로 해외 이벤트도 주최하는데 아부다비 과학 축제의 주요 파트너로 7년째 참가하고 있다.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 “과학은 삶의 축”


▎영국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를 찾은 어린이들이 자연 곤충 체험을 하고 있다. / 사진: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 제공
에든버러 과학축제는 말 그대로 과학 콘텐트를 축제로 즐기게 해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한다. 축제로 한 해 벌어들이는 수입만 35억원에 달한다. ‘배우는 과학’이 아닌 ‘즐기는 과학’에 초점을 맞춘 해외 사례는 국내 과학콘텐트 산업에도 시사점을 제시한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도 2년에 한 번씩 과학기술축제가 열린다. 매회 35만 여 명이 축제를 찾는데 방문객들은 행사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지만 3000여 개 프로그램에 50여 개 기업과 750여 곳의 과학 관련 기관이 후원해 세계 최대 과학축제를 개최한다. 과학자를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 베스트셀러 작가 등이 참여해 발명 특허 교육과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 워싱턴 D.C.가 ‘과학의 도시’로 불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시내 10대 관광명소로 꼽히며 연간 10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맞는다. 스미스소니언은 박물관·미술관·동물원·연구소 등 20여 개의 과학·문화·예술기관이 집합된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박물관이다. “인류의 지식을 넓히기 위한 시설을 워싱턴에 세우고 싶다”고 유언을 남긴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슨의 유산을 기금으로 1846년 설립됐다. 매년 7300만 여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는 이곳에서도 항공우주박물관은 핵심 명소로 꼽힌다.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는 1969년 인류 최초로 달 탐사에 성공했던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전시돼있다. 이때 참여한 미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지구로 돌아올 때 들고 온 가방과 그 속에 든 소장품 17점도 이 박물관에 기증돼 전시 중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11년 퇴역 우주왕복선을 전시할 곳을 두고 고심했는데, 여러 박물관의 유치 경쟁 끝에 스미스소니언에 전시하게 됐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운행하던 항공기의 실물과 모형, 우주선을 비롯해 관련 자료 장비들이 풍부해 이곳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시가 핵심이지만 자체적으로 항공우주와 관련한 강의를 제공하고, 온라인으로도 학습자료를 배포하는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 익스플로라토리움, 프랑스 라빌레트 과학산업관, 영국 런던과학박물관 등의 과학관이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자리잡을 만큼 잘 알려졌다.

해외 주요 과학관 운영이 자국 내 우수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콘텐트 경쟁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내년 전 세계 문화콘텐트 시장이 2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체 콘텐트 상품 중 63%가 온라인으로 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과학문화콘텐트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해외에서도 오프라인 과학관 운영에만 매달리기보다는 과학기술자와 콘텐트 제작기업을 연계해 과학적 지신 기반의 문화콘텐트를 제작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S)가 대표적이다. NAS는 과학·엔터테인먼트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해 영화나 TV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제작사와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과의 협업을 돕는다. 이를 통해 제작자는 과학적 지식 기반의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고, NAS 입장에서는 대중들이 과학기술과 과학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2008년 처음 시행 후 현재까지 2000건이 넘는 자문을 진행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영화 [어벤져스]나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등도 NAS의 과학자들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어벤져스'·'토르' 등 제작에 美 국립과학아카데미 참여

국내에서도 생활 수준이 향상되며 고급 과학교육이나 여가문화 관련 콘텐트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콘텐트 제작기업 입장에서는 고급 기술력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하고, 시장 수요도 아직 그에 못 미친다는 설명이다. 한 콘텐트 제작업체 대표는 “대부분 영세한 규모로 운영하다 보니 마케팅과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우리나라도 제작 단계부터 전문가의 자문과 자금 지원이 이뤄진다면 콘텐트 질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탐구기반학습센터(CIBL)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문 기관이 제품 개발과 지원에 참여해 콘텐트의 품질과 신뢰를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핵심 소비시장과 연결해 콘텐트 제작업체에 안정적인 유통 판로를 제공하는 식이다.

예컨대 미국위생재단(NSF)은 듀크대학교에 약 20억원을 지원했다. 듀크대는 기존 과학교구 제작 업체의 제품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교사들을 위한 과학교구 제작에 참여했다. 이렇게 개발된 교구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400여 개 학교에 대여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대학 전문가가 참여한 덕분에 학생들은 우수한 교구를 활용해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업체는 안정된 판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측은 “국내 업체도 우수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서의 국가 이미지를 활용한다면 과학문화콘텐트 수출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1459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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