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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구 숙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이 분석한 일본 기업의 불황 극복기] ‘지방·소매·가성비’가 불황 극복 키워드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20년 일본 불황기에 성장한 52개 기업 조명...“고령화·저성장 헤쳐갈 타산지석 삼길”

▎서용구 원장은 “한국은 일본과 20년 차이를 두고 경제·사회적으로 비슷하게 움직여왔다”며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의 불황 극복 비결을 참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앞날이 밝지 않다.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을 잇따라 내려 잡고 있다. 반도체가 겨우 경제를 지탱하는 가운데 자동차·조선 등 기존 주력 산업의 침체가 예사롭지 않다. 정부의 잇단 대책에도 일자리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비명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제가 불황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그래도 살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이 있다”며 “잃어버린 20년을 버티고 성장한 일본 기업의 사례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급격한 변화에 재빨리 적응해야

서 원장은 한국 경제가 2012년부터 특히 어려워졌다고 본다. 소비가 정체되기 시작했고, 공장 가동률도 떨어진 시점이다. 국내 경제가 ‘뉴노멀 경제’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기존 경제가 존속성 혁신, 인구 증가, 4인 가구, 80세 수명, 국가, 상대가치, 멀티채널 등의 특징을 보인다면 뉴노멀 경제는 파괴적 혁신, 소비자 수 감소, 1인 가구, 100세 수명, 도시, 절대가치, 옴니채널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에선 이미 전통적 일자리 와해, 양극화 심화, 엇갈리는 국가와 도시 번영, 제품과 서비스의 정확한 가치 산출, 온라인·오프라인 시장의 경계 붕괴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급속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불황이 임박했다고 본 서 원장은 일본의 사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대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마케팅과 유통 관련 전문가다. 연구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2014년에 한국유통학회장을 맡고 있었다. 마침 일본 유통학회와 교류하던 중 연구 파트너를 만난다. 일본 리츠킨메이칸 경영학부의 김창주 교수다. 둘은 의기투합했고 일본 기업 분석을 시작한다. 대상은 일본 닛케이 상장기업 6286곳이었다. 이들은 일본 불황기인 1991년부터 2014년 사이에도 매출이 해마다 두 자리대 성장한 기업 52개를 추려냈다.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불황을 이겨냈는지 분석하기 위해서다. 서 원장은 “한국은 일본에 비해 경제 규모가 작고, 빠르게 움직이는 강점이 있다”며 “우리 연구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살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연구 목적을 소개했다. 두 사람은 연구 내용을 편집해 [불황에 더 잘 나가는 불사조 기업]이란 책으로도 펴냈다. 이들이 꼽은 일본 ‘불사조 기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지난 25년 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12.1%씩 증가했을 뿐 아니라, 내실경영으로 놀라울 정도의 수익성을 보였다. 영업이익 성장률이 16.4%나 됐다. 불사조 기업 가운데 대다수가 지방에서 소매업을 영위했다. 이들은 제품을 저가에 파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품을 선보이며 ‘가성비(가격대비 성능)’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불황에 사람들이 허리띠를 조이지만 품질에 대한 요구는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특정 지역에 거점을 두고, 그것을 발판으로 사업의 영역을 확장했다. 지역밀착 경영을 하는 일본 기업의 특징이다.

서 원장은 52개 기업을 5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고객 친화적인 영업력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전문성 ▶높은 수준의 직원 결속력 ▶신뢰받고 사랑받는 사회적 친화력 ▶틀을 깨는 창의적 역발상 등이다. 그가 소개한 영업력 기업으로 한즈만이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준다는 기업이다. 일본 농촌에서 성장했고, 중소도시에만 입점하며 지역 유통을 장악했다. 이곳에선 원하는 물건을 갯수만큼 구할 수 있다. 장화나 장갑도 한 짝 단위로 구할 수 있다. 국내 대형마트에서 관리하는 제품 수가 대략 5만개인데, 이곳에는 22만개의 제품이 있다. 매주 300개의 신상품이 등장한다. 이들의 모토는 ‘절대 상흔’, 고객의 요구는 모두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영업력의 또 다른 사례로 니토리홀딩스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가구 전문점이다. 니토리 때문에 이케아가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1972년 삿포로에서 창업해 훗카이도를 평정하고 본토로 진격해 자리를 잡았다. 니토리홀딩스의 타깃은 600만엔 이하의 연봉 생활자다. 한국 기준으로 중산층을 겨냥한 셈이다. 가구 생산부터 유통·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수직 통합하며 원가를 절감했다. 이들은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일본의 중소도시를 집중 공략하며 영토를 넓혔다. 니토리는 일본 최고의 가성비를 앞세워 불황을 겪는 깐깐한 일본 소비자의 마음을 잡았다.

52개 불사조 기업 25년 간 연평균 12% 성장

전문성 기업으로는 이토엔을 꼽을 수 있다. 1966년 차를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 시작했다. 녹차를 생산하다 좀 더 쉽게 유통하기 위해 차를 종이팩에 넣은 차팩을 개발하며 성장을 시작했다. 이후 캔에 담긴 우롱차, 패트병에 넣은 녹차를 개발하며 일본 시장 부동의 1위에 오른다. 기술 개발에도 매진하지만 차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토엔이 해마다 여는 ‘오차 하야쿠’ 행사가 있다. 녹차를 주제로 시를 짓는 백일장인데, 지난해 응모 인원은 187만 명에 달했다. 서 원장은 “확실한 제품이 있어야 영업에서 성공할 수 있기에 전문성과 영업력은 같은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불황을 이겨낸 일본 기업으론 직원 결속력을 강조한 업체도 있다. 수퍼 전문점 야오코와 하로데이, 중고품점 토레자파쿠토리, 의류 전문점 유나이텟도아로스 등이다. 유나이텟도아로스는 2007년 전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1200명이던 아르바이트생도 모두 채용했다. 이 회사 인사부의 나가시마씨는 “점포에서 경험을 쌓은 직원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은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손실”이라며 인재 유출을 막고 직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정규직 전환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인건비 증가는 회사의 고민이었지만 경영진은 이를 선행 투자로 여겼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젊고 유능한 직원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재의 다양화가 이뤄져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환경이 조성됐다. 실제로 이 회사는 1994년부터 22년 간 성장하며 규모를 3110%나 키워냈다.

사회적 친화력은 기업에게 점점 더 중요해지는 덕목이다.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은 메마르기 쉽다. 이들에게 감동을 제공하며 윤리적인 이미지를 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스서비스(SNS)의 발달로 기업 윤리가 더욱 중요해진 세상이다. 일본 불황기에 정식과 신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인정 받으며 성장한 기업들이 있다. 일본 100엔 스시 최대 체인점인 쿠라코퍼레이션, 쇼핑약자를 우선 배려하는 만물상 야쿠오도, 가맹점 배려로 유명한 작업용 의류 전문점 와쿠만 등이다. 쿠라코퍼레이션은 일본 양심 경영의 대명사다. 이 회사 다나카 사장은 “식재료를 다른 곳에서 아웃소싱하며 경영자도 먹지 않는 인공 조미료를 넣는데, 이를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직접 재료를 구해 조리하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난 스시는 신선도가 떨어지기에 폐기 처분한다. 일본에서 가장 신뢰받는 회전 초밥 브랜드로 성장한 원동력이다. 야코오도는 ‘쇼핑난민’을 위한 사회적인 기업이다. 인구 감소로 일본 시골에선 상점들이 사라지고 있다. 차가 없거나 몸이 약한 노인들이 일용품을 구하기 막막해졌다. 야쿠오도 원래 약국이었다. 하지만 쇼핑난민에게 도움을 주고자 만물상으로 업종을 전환한다. 인구 1만 명 이하의 지역, 특히 산간이라 일반 상점이 문을 열기 어려운 곳에 매장을 열고 있다.

인구 적은 산간 지역에 매장 열어


남들과 반대로 일하는 역발상 기업도 상당수 살아 남았다. 신입사원만 일하는 점포를 시작한 키리치, 독창적인 진열로 관광상품의 반열에 오른 돈키호테홀딩스, 남과 똑같은 것을 하는 것은 수치라는 로토세야쿠, 하나의 점포에 점장을 두 명 임명하는 산도랏구 같은 독특한 기업이 있다. 이 중 돈키호테홀딩스를 살펴보자. 점포에선 인기 상품이 구석 선반 아래에 숨어 있다. 손님이 보물찾기를 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상품은 여러 층에 나누어 배열한다.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찾기 위해 부모에게서 떨어져 돌아다니게 하기 위해서다. 처음엔 매장이 지저분하다며 ‘한국식 진열’이라는 비아냥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돈키호테 매장 한곳의 하루 평균 방문자는 2449명에 달한다. 하루에 1억원 넘는 매상을 올리는 점포도 있다. 독특한 진열방식엔 이유가 있다. 공급처에서 온 물건을 아무 곳에나 진열하면 창고에 제품을 쌓아둘 이유가 없다. 창고 없이 더 많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직원들도 고객 서비스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진열대가 복잡한 덕에 매장에 고객이 머무는 시간도 더 길어진다. 창업주인 야스다 회장은 “고객들이 보물찾기를 하듯 매장 안을 탐험하게 유도하고 찾는 즐거움, 고르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방식”이라며 “즐거움은 돈키호테가 고객에게 주는 최고의 가치”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이 돈키호테 같은 역발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곧 맞이할 초고령·저성장 시대에선 기존 문제 해결법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영업·마케팅, 고객 접근, 직원 관리 모두 기존 방식을 벗어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실제로 해낸 기업 52곳을 한국에 소개하는 이유다. 그는 “불황을 이겨낸 일본 기업을 통해 우리 기업에게 불황의 돌파구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1459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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