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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14) 오기의 성공과 실패] 능력 출중하나 부귀공명에 집착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리더십 뛰어나고 맡은 임무마다 완수…출세 위해 아내까지 죽여

▎사진:일러스트 김회룡
한 병사의 어머니가 슬피 울고 있었다. 이웃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말했다. “내 아이가 종기가 났는데 장군께서 친히 그 고름을 빨아 주셨다는구려.” 사람들은 의아했다. “아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니오? 아주머니의 아들은 일개 졸병인데 장군께서 직접 돌봐주셨다니, 기뻐하지는 못할지언정 어찌 우시는 게요?” 병사의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소리 마시오. 예전에 장군께서 우리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 치료해주신 적이 있소. 그이는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고 말았소. 이제 장군이 또 내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었으니, 이 아이 또한 필시 죽고 말 것이오.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이 장군이 병사들을 얼마나 잘 다스렸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가장 낮은 계급의 병사와 똑같은 옷을 입었고 똑같은 이불을 덮었으며 똑같은 밥을 먹었다. 자신의 짐도 직접 메고 다니며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았다.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전국시대 병가(兵家)를 대표하는 인물로 [오자병법(吳子兵法)]의 저자로 추정되는 오기(吳起)의 이야기다.

하급 병사와 똑같이 생활

그런데 오기에 대한 세상의 평은 좋지 않았다. 그는 출세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며,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지 않는다. 그 일로 그는 스승인 증삼(曾參, 공자의 제자)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또한 오기는 자신의 공명(功名)을 위해 아내를 죽이기까지 한다. 제나라와의 전쟁을 앞둔 노나라 임금이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군대를 맡기기를 주저하자,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인은 남편이 높은 지위에 오르고 큰 공을 세워 영원토록 이름을 남기기를 바라지 않소? 그렇다면 부인이 도와줄 일이 있소. 지금 부인의 머리가 필요하오.” 그 길로 오기는 아내의 목을 쳐서 임금에게 들고 갔다고 한다.

오기의 잔인함에 경악한 노나라 임금이 그를 내치려 하자 신하들이 말렸다. “오기는 자기 아내보다 부귀공명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오기의 바람을 채워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결국 노나라 임금은 그를 대장군으로 임명했고, 사람됨이야 어찌됐든 군사능력이 출중했던 오기는 제나라 대군을 격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기는 실각한다. 재물에 눈이 팔려 제나라에서 보낸 막대한 뇌물을 받았다가 발각됐기 때문이다. 노나라 임금이 “오기는 역시 믿을 자가 못 된다”며 체포하려 하자 그는 위나라로 도망쳤다.

오기가 찾아간 위나라는 문후(文侯)의 리더십 아래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문후는 오기에게 진나라와의 국경 요충지인 서하 지역의 방어책임을 맡겼는데, 오기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그는 솔선수범하며 병사를 아끼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기는 다시 제 무덤을 팠다. 위 문후가 죽고 뒤를 이어 무후(武侯)가 보위에 오르면서 전문(田文)이라는 어진 신하를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자 오기는 전문을 찾아가 따졌다. “그대가 대체 무슨 공로가 있어서 재상이 된 것이오? 이 오기가 세운 공에 비할 수 있소?” 전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청컨대 말씀해보시오.” 오기가 의기양양해하며 말했다. “군대를 거느리고 병사들을 독려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게 하는 것, 그대와 나 중에서 누가 더 잘하겠소?” 전문이 말했다. “내가 그대만 못하오.” “서하땅을 굳건히 지켜 진나라가 감히 우리 영토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키는 것, 그대와 나 중에서 누가 더 잘하겠소?” “내가 그대만 못하오.” “문무백관을 통제하고 만백성을 순종케 하며 나라의 창고를 가득 채우는 것, 그대와 나 중에서 누가 더 잘하겠소?” “내가 그대만 못하오.”

오기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대체 그대는 이 세 가지 다 나보다 못하다면서 무슨 염치로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오?” 전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족한 내가 재상이 되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오. 이번에 등극하신 전하께서 아직 나이가 어리시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되지 못했소. 대신들이 말을 잘 듣지 않고 백성들도 조정을 믿지 않으니, 그래서 나를 재상으로 삼으신 듯하오.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가 서로 공로를 따지고 다툴 때가 아닌 줄 아오.” 겸연쩍어진 오기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 “그대의 말씀도 맞는 것 같소. 하지만 두고 보시오. 조만간 재상 자리는 내 차지가 될 테니.”

오기가 수긍하고 물러서긴 했지만 실로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임금의 인사(人事)에 대해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시한 것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는데, 화가 난 무후는 오기의 병권을 거두고 대기발령 상태로 두었다. 권력을 탐하다가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오기는 이번엔 초나라로 망명한다.

초나라에 도착한 오기는 임금 도왕으로부터 융숭한 환대를 받았다. 오기가 마음에 든 도왕은 단숨에 그를 재상에 임명했고, 오기는 다음과 같은 개혁을 추진했다. “불필요한 관리들을 모두 면직시킨다. 하는 일 없는 왕족, 귀족 자제들에게 주는 국록을 몰수한다. 5대를 넘어간 왕족과 귀족은 평민으로 대우한다. 그렇게 절약된 돈으로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고 병사들을 넉넉하게 대접할 것이다.”

취지와 방향은 좋다.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고 국가지도층의 기강을 확립해 그렇게 모인 힘을 국가 재정과 국방력 강화에 투입한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초나라는 오기의 개혁 덕분에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국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오기 개인으로서는 너무나 적을 많이 만들어버렸다. 관직과 재물과 권력을 빼앗긴 왕족, 귀족들이 오기라면 이를 갈았고, 오기의 오만불손한 성품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도왕이 세상을 떠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귀족들이 군사를 일으켜 오기를 공격한 것이다. 오기는 빈전(殯殿, 장사를 지내기 전까지 왕이나 왕비의 시신을 안치하는 전각)으로 피신해 초도왕의 시신을 안고 엎드렸다. 하지만 귀족들은 오기를 죽이겠다는 것에만 눈이 팔려 그에게 화살을 날렸다. 오기는 “이러고서 너희가 무사할성 싶은가?”라는 말을 남기며 눈을 감았는데, 다음 왕이 즉위하자마자 오기를 공격한 귀족 70여 집안이 몰살당한다. 귀족들은 오기가 안은 초도왕의 시신에 화살을 날린 셈이고, 이는 대역죄를 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머리를 써서 복수의 기회를 마련해놓은 것이다.

독단적이고 오만불손한 성품

오기는 분명 지혜와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었다. 리더십이 뛰어났고 맡은 임무는 누구보다도 훌륭히 완수해냈다. 덕분에 그가 어머니와 아내를 저버리면서까지 욕망하던 ‘공명(功名)’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지만 눈앞의 이익을 탐하며 오기는 스스로 무너진다. 부귀공명에 대한 집착은 그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게 했고, 여기에 각박하고 오만한 성품이 기름을 부었다. 올바름을 상실한 재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459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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