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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집은 소유자산인가 주거공간인가 - 문화인류학] ‘집의 가격’에서 ‘삶의 가치’ 떼어내야 

 

한국 사회에서 ‘집의 가격’은 곧 ‘삶의 가격’… 집이라는 상품에 인간의 생각·행동 구속

인류학자 마르셀 에나프는 저서 [진리의 가격]에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의 가르침에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여겼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인권이나 개인의 자유, 형사상의 정의, 인간관계 등의 추상적 개념이 가격을 따져 거래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에나프의 논의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상업화폐의 등장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과거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여겨졌던 상당수 품목이 지금은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문적 활동과 예술창작 같은 영역 역시 근대 이후에는 금전적 보상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상거래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주택, 즉 우리가 살아가는 집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실 거의 모든 것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이 상품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필요한 것은 집이 ‘삶을 영위하는 장소’로서보다도 ‘시장에서 가격을 매겨 거래되는 상품’으로 간주되는 현상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부동산 관련 뉴스를 보면 서울을 포함해 지역 단위로 매주 발표되는 집의 평균 매매가를 접하게 된다. 집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집을 갖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가격 변화에 희비가 교차한다. 물론 집의 소유 여부에 따라 집값의 오르내림을 보는 관점은 반대로 나뉠 것이다. 이처럼 집에 투영되는 여러 가치 가운데 다른 무엇보다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집’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 거의 모든 품목이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상황에 대한 또 다른 논의를 살펴보자.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20세기 초 게오르그 짐멜은 화폐가 갖는, 일종의 ‘해방 효과’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하게 만드는 화폐의 기능은 개개인을 속박하는 사회구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기제로도 작동한다. 기존에는 사람들이 서로 의존하며 때로 억압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사회관계의 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면, 상업화폐의 지배 이후에는 노동관계의 비인격화와 객관화가 야기돼 전통사회의 인격적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집에 매겨진 가격은 이와 같은 화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집값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한국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집을 가진 사람은 가진 대로, 집이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집이라는 상품과 그 가격에 얽매이는 것이 현대 한국인의 삶이다. 모든 것을 객관화해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화폐에 의해 집이 상품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말이다.

인간과 사물의 분리를 야기하고 인간을 사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화폐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상품으로서의 집’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그 당사자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역설을 낳는다. 소유자산의 대부분이 집의 가격으로 표현되는 상황, 그리고 자산을 효과적으로 늘리는 최고의 수단이 집에 대한 투자라는 게 분명해진 상황에서, 집이라는 상품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 모두를 집에 묶어버린다.

한국 사회에서 ‘집의 가격’은 곧 ‘삶의 가격’을 상징한다고 간주된다. 삶의 가치가 집의 상품가치를 통해 평가된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집이라는 상품을 통해 삶에 가격이 매겨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집의 가격’으로부터 ‘삶의 가격’을, 아니 ‘삶의 가치’를 떼어놓기 위한 대안적 상상과 실천일 터이다.

-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류학전공 교수
※ 정헌목 교수는…도시공간과 주거, 공동체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한국문화인류학회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마르크 오제, 비장소] 등의 저서가 있다.

1464호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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