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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18) 제나노(Genano)]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를 팝니다” 

 

에스포(핀란드)=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나노 단위 유해물질 거르는 유일한 공기청정기… 사스·메르스 사태 계기로 중동 병원에 납품

▎핀란드 에스포 제나노 본사에서 닉라스 스코그스터 대표가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사진:허정연 기자
핀란드는 세계에서 공기가 가장 깨끗한 나라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07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핀란드는 세계에서 공기가 깨끗한 나라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아이슬란드·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가 대기 청정지역 상위권에 올랐다.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보니 핀란드 사회 전반에서 대기오염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 그렇지만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 차가 60도 이상 벌어지는 극한의 기후환경은 실외 공기만큼이나 실내 공기 오염에 관심을 갖는 배경이 됐다. 추운 겨울을 나는 핀란드에서는 창문을 열어 환기하기보다는 주로 기계적 환기 시설이 발달했다. 바깥 날씨가 워낙 춥기 때문에 자연 환기가 쉽지 않다. 온도 차로 발생하는 곰팡이와 결로 등도 실내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 기반시설 복구를 위해 단시간 내 지어올린 건물은 특히 이런 문제에 취약했다. 건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실내 환기 시설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현재 핀란드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장 큰 오염 문제는 ‘실내 공기 질’을 높이는 것이다. 특히 학교와 병원을 비롯한 공공시설의 공기 질 개선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실제로 핀란드 중부 도시인 꾸오삐오의 한 학교에서는 실내 공기 질 악화가 학생들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바스퀼라 대학교는 실내 공기를 개선하기 위해 1년에 걸쳐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펼치기도 했다.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꾸준한 리모델링이 이뤄지고 있지만 모든 건물을 다 손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공기청정기를 놓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가정용 공기청정기 시장이 주를 이루지만 핀란드에선 산업용 공기청정기가 더 대중화돼 있다. 일찍이 공장 등 산업 현장 노동자의 업무 환경을 높이는 데 관심을 가진 덕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한 나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공기청정기 업체 ‘제나노(Genano)’가 탄생한 배경이다. 지난해 10월 핀란드 에스포에 자리한 제나노 본사에서 만난 닉라스 스코그스터(Niklas Skogster) 제나노 대표는 “우리는 단순히 공기청정기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깨끗한 공기를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라며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기후변화는 실외 환경뿐 아니라 실내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극한 기후에 ‘실내 공기 질 개선’ 화두


▎제나노의 상업용 공기청정기 제품. 핀란드 산업디자인의 거장 하리 코스키넨이 디자인했다. / 사진:Genano
1999년 설립된 이 회사의 전 직원은 50명이 전부다. 아직 상장도 하지 않은 중소기업이지만 제나노의 연매출은 620만 유로(약 80억원)에 달하며 공기청정기는 세계 50개국에서 판매된다. 직원 대부분은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엔지니어고, 제조는 헬싱키에서 2시간 여 떨어진 파트너사 공장에서 맡는다. 본사는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설립된 지 20년이 채 안 된 회사지만 제나노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술 기반은 핀란드의 대표적인 발명가이자 기업가인 베이꼬 일마스티로부터 시작됐다. 일마스티는 다양한 전자·기계 기술 분야에서 40개의 특허를 취득한 발명가다. 모든 특허는 공기청정과 관련된 기술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제나노의 전신이 된 ‘블라스트(Blast)’라는 회사를 세운다. 그의 친구인 군나르 그레뻬 교수 역시 공기청정기술 개발에 동참했다. 헬싱키대학 물리학 교수였던 그는 1998년 은퇴 후 친구의 회사 설립을 도왔다.

그레뻬 교수의 전공은 핵물리학이었지만 은퇴 후엔 환경물리학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특히 대기 중 자유이온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는데, 대기에서 발생하는 정전기와 나노 크기의 불순입자가 그의 전문 분야였다. 그는 일마스티와 함께 이온 공기청정 기술을 기반으로 ‘이온블라스트’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1993년 독일의 한 기업에 팔렸지만 5년 후 선립된 제나노의 전신이 됐다. 실내 공기 청정기에 초점을 맞춘 제나노를 2001년 미카엘 렌토라는 사업가가 인수했고, 그는 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회사를 발전시켰다.

제나노 공기청정기는 공기 중에서 빨아들인 미세먼지에 전기를 가해 음극을 부여한다. 음극이 된 미세먼지가 ‘챔버’라고 불리는 양극의 관에 달라붙는 방식이다. 스코그스터 대표는 “일반적으로 공기청정기는 필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지만 우리 제품은 필터가 거르는 방식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다”며 “특수 세정액이 관을 통과하면 일종의 비눗물 역할을 해 흡수된 미세먼지가 자동으로 씻겨내려가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1년에 두 번 세정액만 갈아주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렌털시스템으로 운영하는데 한달 렌탈료가 300유로(약 38만원) 정도다. 가정용과 상업용 제품의 경우 시간당 두 번만 청정작업이 이뤄지지만 병원처럼 무결한 환경이 필요한 곳에서는 시간당 최고 15번까지 청정기가 가동된다.

핀란드·폴란드·프랑스 등 6개 대학·연구소가 함께 개발한 최신 제품은 측정 가능한 최소 단위인 3nm(나노미터) 크기의 먼지까지 걸러낸다. 나노 크기의 입자를 제거하는 공기청정기는 세계에서 제나노 제품이 유일하다. 일반적으로 병원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공기청정기가 헤파(HEPA)필터 등급을 채택하는데, 이보다 1000분의 1 크기의 유해물질을 99.5%까지 차단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단순히 먼지를 걸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각종 화학물질·미생물·박테리아까지 제거해 병원·연구소·실험실 등 극도의 청결성을 요구하는 곳에서 각광받는다.

각종 화학물질·박테리어까지 제거


폴란드의 150개 암 연구소에 처음으로 납품된 이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사우디 병원에도 청정기를 납품했다. 스코그스터 대표는 “핀란드에서는 20개 종합병원에서 사용하고 있고, 일본과 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병원에도 공급했다”며 “병원에서 치료중 세균에 감염되는 비율이 평균 8% 내외인데, 공기청정기 기술이 더 발달하면 공기감염까지 완벽히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나노의 전 제품은 현재 100%로 핀란드에서 자체 생산한다. 스코그스터 대표는 “가정용은 4000~5000유로, 상업용은 1만 유로 정도로, 고가인데다 병원 등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설치하고 있어 소량 생산하고 있다”며 “최근 유럽 내 제조업 공장 등에서 산업용 공기청정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대량 생산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용 “공기청정기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한국 진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1469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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