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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의 회사 생활] 달기 힘든 별, 달고서도 힘든 별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주 52시간 근무는 남의 이야기...일주일에 3회 이상 술자리 69%

134명 상무 승진, 100여 명 퇴진. 국내 모 대기업의 2019년 임원 인사 내용이다. 창사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임원 자리에 올랐지만, 그만큼 많은 ‘별’이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임원이란 ‘별’은 달기도 어렵지만 그만한 무게를 견뎌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한국시엑스오(CXO)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에서 처음 임원으로 발탁된 평균 나이는 49.6살, 임원에서 물러난 평균 나이는 54.2살로 나타났다. 임원에 오르기까지 20년 넘게 걸리지만 평균 재직 기간은 4년 6개월에 그친 것이다. 이번에 새로 임원이 된 한 대기업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과 3세 경영자들의 부상으로 임원 교체 주기가 더욱 빨라진 것 같다”고 씁쓰레했다.

임원의 삶은 간단치 않다. 별을 다는 순간, 도전의 연속이다. 새로운 권한과 경험 못했던 책임이 따라온다. 중견 간부 때와는 다른 희노애락이 기다린다. 본지가 임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그들은 자부심이 넘치고 업무에 헌신적이었다. 동시에 업무에 치이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회의 중이라 카톡 어렵습니다


임원의 회사 일과는 대략 오전 7시30분에 시작한다. 주요 프로젝트 진행 사항을 점검하면 바로 회의다. 점심 시간도 업무의 연장이다. 몇주 앞 점심 일정이 항상 잡혀 있다. 오후에도 역시 회의가 기다린다. 설문에 답한 임원의 69%가 매일 1~2번의 회의에 참석했다. 17%는 2~3개, 4개 이상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도 12%에 달했다. 카카오톡 답장을 늦게 하며 임원들이 ‘하루 종일 회의가 있어서’라고 하는 말이 핑계만은 아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회의 중이라 카톡 응답이 늦습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임원 79%의 하루 업무시간은 평균 9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겐 주 52시간 근무가 적용되지 않는다. 수시로 야근이 있다. 53%가 주2회, 24%가 주4회 이상 야근을 했다. 야근이 아니면 외부 관계자와 저녁이 있다. 임원의 52%가 월 6회 이상 외부 회식 시간을 가진다. 대상은 고객이나 협력사 사람 등이다. 그러다 보니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다. 설문에 응한 임원 중 69%가 1주에 3회 이상 음주를 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술로 달리는’ 임원도 6%가 있었다. 32%는 주말에도 일하고 있었다. 이번 임원 인사에서 살아남은 한 대기업 홍보임원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왔다”며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항상 대기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내부 회식에 대한 인식은 많이 변했다. ‘부서 단합을 위해(회식이) 필요하다’고 답한 임원은 15%, ‘필수는 아니지만 가끔은 해야 한다’가 79%에 달했다. ‘아예 필요없다’는 임원도 6%가 나왔다. 한 건설사 임원은 “요즘 직원들에게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라며 2차 3차를 끌고 다닌다면, 다음날 네이버에 임원 갑질 기사가 뜰 것”이라며 “업무에 집중하고 최대한 사생활은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내부 회식은 월 1회가 47%, 2~3회가 35%였다. 한 독일계 기업 임원은 “한국의 기업문화를 배우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분기마다 부서 회식을 연다”며 “TV에 나왔던 유명 맛 집을 미리 예약하니 젊은 직원 참석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승진하려면 능력 못지 않게 충성심도 중요하다는 사실도 나타났다. 임원들은 회사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상사에 대한 존경과 부하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만족한다가 58%, 매우 만족한다가 8%가 나왔다. 66%가 후임들을 좋게 평가했고 보통이라고 답한 이는 24%, 부족하다는 10%에 그쳤다. 평가 기준은 실무적인 능력이 가장 많았다. 대부분 업무 능력과 근무태도를 중시했고 인간성을 꼽은 이는 9.4%에 그쳤다. 선임 임원이나 사장단에 대한 충성도 역시 높게 나왔다. 61%가 만족, 15%가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의 이유로는 57%가 업무능력, 34.4%가 인간성을 들었다. 아랫사람은 일을 잘하길, 윗사람은 인간성이 좋기를 바라는 심리가 엿보였다.

물론 스트레스도 많다. 58%가 가끔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양했다. 부하직원이 일을 못할 때가 29%로 가장 높았고 스스로의 한계를 느낄 때가 21%, 업무 문제로 책임을 져야 할 때 14%, 상사에게 질책을 받을 때가 10%였다. 회사 생활에서 어떤 점이 나아지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물었다. 43%가 ‘업무가 원활히 풀리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답했다.

개인 집무실, 골프 회원권 등에 만족

몸은 힘들지만 자리에 대한 만족감은 높은 편이다. 설문 참여 임원의 85%가 현재 임원직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의 이유는 확실한 보상에서 나왔다. 업무가 고된 만큼 좋은 대접을 받아서다. 회사를 더 오래 다닌 고참 부장이라도 임원이 받는 대우에는 못 미친다. 임원으로 가장 좋은 점을 꼽는 항목에서 전체의 79%가 집무실과 차량, 기사 제공을 꼽았다. 개인 비서가 생기고, 해외 출장 때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다. 골프 회원권을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다만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집무실이 생긴 점에 만족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일반 직원들과 거리가 벌어지며 소외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임원의 가치는 연봉이 보여준다. 한 외국계 기업 임원은 “회사를 옮길 때 가장 신경쓰는 분야가 연봉”이라며 “시장이 검증해주는 나에 대한 가치이기에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외국계와 달리 국내 기업 대부분은 연봉 체계가 이미 정해져 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임원의 연봉은 부장의 1.5~2배 수준이다. 설문에 응한 임원 70%가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자신의 연봉을 밝혔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연봉도 이와 비슷하다. 삼성그룹 초임 상무의 연봉은 대략 1억5000만~2억5000만원 선이다. 3년차 이상의 고참 상무가 되면 3억~5억원으로 훌쩍 뛴다. 여기에 초과이익분배금 같은 다양한 성과급이 더해진다. 현대차그룹은 이사대우나 이사에겐 1억6000만~2억원 정도를 주며 전무급으로 올라가면 3억원 벽을 넘을 수 있다. LG그룹은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할 때, 연봉을 100% 올려준다. 임원 초임은 1억2000만~1억5000만원 선이다. SK그룹은 신임 임원에게 1억5000만원 안팎의 연봉과 다양한 성과급을 제공한다.

이전에 비해 임원 대접이 박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대기업 임원은 “과거엔 임원이 되는 순간 기사 딸린 고급 세단과 개인비서, 집무실이 기본으로 주어졌지만 요즘은 임원수가 많아지면서 전무 정도는 달아야 예전 임원들이 누리던 호사를 누릴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1470호 (20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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