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후준비 늦게 할수록 재정부담 커져사람들은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후 생활에 들어갈 시기가 아직은 한참 남아 있어 저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한다. 그러나 정작 저축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망설이면서 여윳돈을 써 버리고 만다. 이는 금연이나 다이어트, 시험공부를 미루는 것과 비슷하다. 막상 금연을 시작하려고 하면 이상하게도 다른 핑계거리가 생겨 “에이, 기왕 버린 몸, 몇 달만 더 담배 피우다 끊지 뭐” 하고 유혹에 굴복하게 된다. 노후 준비도 먼 훗날의 일인 데다 자녀교육, 내 집 마련 등 눈 앞의 목돈 수요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그러나 노후 준비는 미루면 미를수록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60세에 정년퇴직한다고 할 때 죽을 때까지 필요한 노후자금은 대략 4억원이라고 한다. 이 돈을 만들기 위해선 현 시점에서 얼마씩 저축해야 할지 계산해 보자. 연 2%의 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30세에 매월 약 80만원씩 저축해야 60세쯤 4억원이 모인다고 가정하면 40세엔 140만원 정도, 50세엔 300만원 정도씩은 저축해야 모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목표금액을 모으려면 재정 부담이 부쩍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후 준비를 위한 저축을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후 준비를 하겠다고 맘을 먹어도 자꾸 미루며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그렇게 어영부영 지내다 막상 은퇴가 가까와서야 노후 준비를 못한 것을 후회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행동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노후 준비를 위해 저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방법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다. 과거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크리스마스 저축클럽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 클럽의 운영방식을 보면 이렇다. 가령 11월에 계좌를 개설하고 매주 일정 금액을 저축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이때 입금한 돈은 1년 이내에 찾을 수 없으며 크리스마스 직전에만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면 1년 후 회원들은 크리스마스 직전에 돈을 돌려받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게 되는데, 이 상품의 특이한 점은 이자를 한푼도 주지 않는다는 점이디. 언뜻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선물을 위한 돈을 은행에 넣어 두는 게 나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은행에서는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 이 상품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겨졌지만 크리스마스 저축 클렵은 수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이자를 주지 않는 대신 넣어둔 돈을 인출해 다른 일에 써 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런저런 유혹의 손길이 뻗치게 마련인 노후자금에 행동장치를 거는 대표적인 예는 정부에서 개인연금 가입자에게 주는 세액공제나 비과세 혜택이다. 가입자가 중도 해지할 경우 이 혜택을 토해내야 해 손해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렇게 되면 중간에 다른 데 돈 쓸 일이 생겨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다. 개인연금의 세제혜택은 우리나라 사람의 노후 준비가 매우 부실하다고 하니 정부가 나서 강제저축을 유도하려고 내놓은 대책이다.개인적으로 집을 사는 것도 행동장치를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는 은퇴설계 이론으로 보면 바보 같은 짓이다. 우선 전 재산을 집에 묶어 두면 아주 위험하다. 주식에서 한 종목에 몰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집을 사면 유동성이 메말라진다. 당장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집을 팔아 현금을 만들기가 어려우며, 일부만 현금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노후에 필요 이상으로 큰 집은 장애물로 작용한다. 생활비를 조달하는 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노후엔 그저 현금흐름이 꼬박꼬박 생기는 자산이 최고인데, 집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많은 은퇴설계 전문가가 노후생활에 들어가기 전 부동산 비중을 가급적 낮추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주택담보대출도 행동장치 역할그러나 집을 팔기 어렵다는 단점은 돈을 묶어둘 수 있는 장점도 된다. 돈이 집에 잠겨 있으면 더 이상 그 돈에 손을 대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후를 위해 저축한 돈을 미리 써 버리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만약 노후에 유동자산이 부족할 경우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해 생활비에 보태 쓸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은 돈만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 이 경우 대출을 이용하게 된다. 이 역시 행동장치의 역할을 하게 된다. 빚은 부담스럽고 위험하다. 그래서 월급이 들어오면 빚을 먼저 갚고 소비를 한다. 소비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현금흐름이 풍부한 현역 시절엔 통제의 범위 안에 둘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빚은 독이 아닌 약이 된다.자동이체를 적극 이용하는 것도 좋다.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내 노후 대비 적금계좌를 개설하고 매달 일정 금액이 자동적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없는 셈치고 잊어버리도록 한다. 빨리 잊을수록 유리하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언젠가 든든한 노후 재원을 마련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결국 노후 준비도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적금이든 적립식 펀드든 연금이든 하루라도 빨리 자동이체를 걸어놓도록 하자. 매월 조금씩 꼬박꼬박 떼어 놓다 보면 돈이 눈덩이 굴러가듯이 커져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게 확실하다.※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