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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 노리는 엘리베이터 공룡들] 빌딩숲 한국은 세계 3위 시장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R&D센터 잇따라 세우고 한국형 제품도 선보여... 현대차그룹 GBC 유치전에 치열한 눈치전

▎현대엘리베이터가 경기도 이천 본사에 설치한 시속 65㎞짜리 현대아산타워 엘리베이터.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속도를 자랑한다.
한국은 내수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외면 받기 일쑤다. 디젤게이트를 일으킨 폴크스바겐이나 연쇄 발화 사고를 낸 BMW 등이 미국·중국에 비해 한국 소비자들을 홀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장이 작으니 소비자 민원을 어느 정도 무시해도 된다는 식의 사건·사고 처리 행태를 적지 않게 보여줬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도 유독 엘리베이터 시장에서 만큼은 한국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협토에 도심 밀집 시가지가 조성돼 있고, 주거 형태도 대개는 아파트라서다. 고층 빌딩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의 엘리베이터 시장 규모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인도에 이어 3위다. 글로벌 엘리베이터 기업들이 앞다퉈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차리는 등 공을 들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대도시 거점에 수요 몰려 생산·물류 용이


엘리베이터 분야 글로벌 1위인 미국 오티스는 인천 송도에 총면적 약 1만5600㎡ 규모의 R&D 센터와 첨단 생산시설을 짓기로 하고 지난해 10월 12일 기공식을 가졌다. 올 상반기 중에 완공할 예정이며, 오티스 직원 200여 명이 일하게 된다. 서울·인천·창원 등 전국에 분산된 연구개발 및 생산조직을 통합해 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IoT 커넥티드 엘리베이터’ 개발에 역량을 쏟을 계획이다.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도 총 330억원을 들여 지난해 3월부터 송도사업장에 R&D센터 및 제조설비, 시험타워, 제품검증센터, 보수·설치 기술교육센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1932년부터 엘리베이터를 생산한 세계 5위 일본 히타치도 지난해 12월부터 한국 법인 영업을 개시했다. 히타치는 1968년부터 LG산전과 손을 잡고 한국 시장에 진출해 63빌딩과 한국무역센터 등 1980~90년대를 대표하는 고층 빌딩 엘리베이터를 만든 바 있다. LG산전 엘리베이터 사업 부문이 오티스에 매각되면서 1995년 국내에서 철수했다가, 22년 만에 복귀했다. 독일의 티센크루프도 한국을 글로벌 R&D 거점으로 꼽고 시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티센크루프가 독일 외 국가에 트윈 엘리베이터 기술을 전수한 것도 한국이 유일하다. 트윈 엘리베이터는 하나의 승강로에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독립적으로 운행함으로써, 층간 이동이 많은 고층 건물의 운행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티센크루프는 2003년 동양엘리베이터를 인수해 한국에 진출한 뒤로 천안공장을 거점으로 기술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고층 빌딩이 많은 데다 아파트 재건축 등 회전률이 빠른 편이고, 대도시 거점에 수요가 몰려 있어 생산과 물류가 용이하다. 글로벌 1, 2위 시장인 중국·인도와도 지리적으로 가까워 생산 거점으로도 활용하기 좋다. 여기에 고령화로 저층 건물의 엘리베이터 설치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엘리베이터는 생산 업체가 유지·보수 등 관리까지 맡기 때문에 장기적인 수익 창출도 가능해 보인다. 현재 한국에서 가동 중인 엘리베이터 수는 약 73만대에 달한다.

신설 수요는 일본의 2배 수준인 연간 약 4만대. 2013년 3만 대에 그쳤던 엘리베이터 수요는 2017년 4만8000여 대에 달했다.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빌딩 재건축이 활발했던 영향이다. 2015~16년 아파트 신규 분양은 총 97만 가구에 달했다. 올해는 2만2000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중장기적으로 신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글로벌 톱7 진입 목표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한 한국형 제품이나 IoT 기술과 결합한 제품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오티스는 세계 최초로 가정용 전원(220V)으로 구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내놓았다. 엘리베이터는 대개 380V 전력망에서 가동돼 별도의 전기공사가 필요한데, 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전기 공사 및 설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마찰열을 전력으로 저장하기 때문에 전력소비량도 전자레인지보다도 적다. 티센크루프는 또 한국의 전통 문화인 나전칠기를 엘리베이터에 접목시키는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티센크루프는 세계 최초로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을 적용한 미래형 유지·보수 서비스 ‘맥스(MAX)’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도어의 움직임과 작동 상태, 에러코드 등 정보를 수집해 소모품 교체와 고장 예상 시점을 알려주고 고장이 생기면 1~5순위 원인을 정리해주는 시스템이다. 고장시 서비스매니저가 현장에 즉시 출동하도록 연락하고 점검이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알려준다. 오티스 역시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플랫폼 ‘애저(Azure)’를 활용해 IoT 기술에 기반을 둔 유지, 보수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IoT 기반 원격관리서비스인 ‘HRTS’를 지난해 내놓고 원격 수리 시대를 열었다. 2만6000대의 엘리베이터에 이 서비스를 적용해 전체 고장의 약 60%는 원격으로 수리를 하고 있다.

최근 엘리베이터 업계의 최대 화두는 현대차그룹 신사옥 건립 사업인 글로벌비즈니센터(GBC)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수주전이다. 569m, 105층 규모의 초고층 건물이라는 상징성과 높은 사업성에서 현대엘리베이터와 오티스·티센크루프·미쓰비시·히타치 등이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현대엘리베이터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40%대로 압도적 1위를 자랑한다. 유지·관리 분야에서도 현대엘리베이터는 23.8%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초고속 엘리베이터 수주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세계 시장점유율 0.5%로 9위를 기록 중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려면 초고층 빌딩 수주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구조조정 폭풍에 휘말린 현대상선이 현대 그룹에서 빠지며,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그룹의 주력 사업이 되기도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고층 빌딩 수주 실적을 토대로 중국으로 시장을 넓혀 글로벌 톱7으로 도약할 계획이다.

오티스·티센크루프·미쓰비시·히타치 등은 롯데타워 등 국내외 초고층 빌딩 수주 이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비해 많아 한발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티센크루프는 지난해 말 여의도 파크원빌딩에서 단일 규모로는 역대 최대인 700억원 규모의 엘리베이터를 수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GBC 수주전에는 글로벌 회사들도 긴장을 놓치지 않는 모습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조달의 강점과 많은 운행 경험을 무기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과의 특수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지지부진하던 GBC 건립은 행정적 절차가 마무리됐다. 연내 착공이 가능할 전망이다. GBC 엘리베이터 등의 유치전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1474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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