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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국내 벤처 최대 규모 투자 유치
소프트뱅크의 ‘사실상 손절매’ 주장도일각에서는 소프트뱅크의 쿠팡 투자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직접투자가 아닌 간접투자라는 점에서다. 지난해 20억 달러의 투자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를 통해 이뤄졌다. 앞서 2015년 10억 달러를 투자할 때에는 소프트뱅크가 자체 자금을 동원한 것과는 다르다.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 이름을 달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체 자본은 아니다. 비전펀드는 2017년 5월 약 1000억 달러 규모로 조성된 공동 투자 펀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투자펀드(PIF)와 아부다비의 무바달라인베스트먼트가 자본금의 3분의 2 정도를 출자했다. 이 밖에 애플·폭스콘·퀄컴·샤프 등이 펀딩에 참여했다.이에 소프트뱅크가 레버리지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직접 투자에서 간접투자로 방침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는 직접 자기자본을 투입하는 것에 비해 리스크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자신의 출자금에 다른 출자자들의 자금을 더해 투자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실제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지분율(약 28%)을 고려해 단순 계산하면 쿠팡에 20억 달러를 투자하기 위해 자체 자금을 5억6000만 달러만 들인 셈이다.이런 상황에서 최근 비전펀드 투자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비전펀드의 주요 투자자인 PIF와 무바달라는 기금이 일부 기술 기업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도 국내에서 기업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투자액과 지분율을 토대로 계산했을 때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가 쿠팡의 기업가치를 90억 달러(10조 1610억 원)로 산정했다. 거래액이 더 많은 11번가 기업가치의 5배에 달한다.또 PIF와 무바바달라 등은 소프트뱅크가 먼저 해당 기업에 투자했다가 나중에 비전 펀드에 지분을 이전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몇 년 간 기술 회사에 투자하면서 249억 달러 어치의 지분을 매입했고, 이를 적어도 263억 달러에 비전펀드에 매각해 최소 14억 달러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쿠팡 지분을 비전펀드에 매각한 사실도 이런 의혹을 부풀린다. 소프트뱅크는 2015년 10억 달러를 투자해 당시 기업가치 5조원으로 평가되던 쿠팡의 지분 20%를 확보했다. 하지만 지난해 비전펀드가 20억 달러 투자를 발표하기 직전에 이 지분 전체를 30% 감액한 7억 달러에 비전펀드에 넘겼다. 이에 소프트뱅크가 추가 실탄을 요청한 쿠팡을 ‘밑 빠진 독’으로 간주했고, 비전펀드를 대상으로 투자 자산을 ‘손절매’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다만, 소프트뱅크가 단순히 손절매를 했다고 보면 이후 비전펀드가 쿠팡에 2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한 점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소프트뱅크의 쿠팡 지분 매각이 비전펀드의 쿠팡 투자의 ‘조건’으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 비전펀드가 소프트뱅크 보유 지분 20%까지 매입하며 쿠팡의 지분을 최대한 확보한 것이 향후 쿠팡을 알리바바나 국내의 유통 업체에 매각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수도 있다. 2017년 비전펀드는 인도의 1위 이커머스 업체 플립카트에 25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21%를 확보한 후 9개월 만에 플립카트 지분 전량을 40억 달러에 월마트에 팔아 시세차익을 낸 사례가 있다.
11번가·SSG닷컴 상장 겨냥해 투자
탁월한 1등 기업 없어 투자하며 기다려티몬에 투자한 KKR과 SSG닷컴에 투자한 어퍼니티는 국내에서 차익을 많이 남긴 거래로 유명한 사모펀드다. 어퍼니티와 KKR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벨기에 AB인베브로부터 OB맥주를 인수한 후 2014년 이를 AB인베브에 재매각하면서 4조원이 넘는 차익을 넘긴 바 있다. 이는 국내 PEF가 주도한 M&A 중 가장 큰 규모의 차익을 남긴 거래로 남아있다. 또 어피너티는 지난 2013년 SK그룹으로부터 로엔엔터테인먼트를 3000억원에 인수했고, 2년 반 만에 이를 카카오에 매각하면서 1조원이 넘는 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11번가의 투자자인 H&Q는 국내에서 온라인플랫폼 업체를 인수·경영한 경험이 있어 11번가 투자에도 나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H&Q는 지난 2013년 잡코리아 지분 49.9%를 인수한 후 2015년 나머지 지분까지 인수한 운용사다.투자 업계에서는 국내 e커머스 시장 성장세에 따라 투자자들이 ‘끝까지 버티면 큰 돈을 번다’는 시각을 갖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의 아마존처럼 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가 아직 없다 보니 먼저 위치를 굳히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투자가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아마존 같은 강력한 해외 경쟁자가 출현할 가능성도 작다는 점이 업체 간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