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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규제에 멍 드는 국내 SW 경쟁력] “경제자유 침해 심각” 위헌 논란까지 일어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공공 SW사업 입찰에 대기업 참여 제한… 대기업도 수주 실적 부족해 해외 수출 어려움 가중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 제한 규제가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취지와 달리 정작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에 밀려 사업을 제대로 따내지 못하고 있다. 중견기업도 출혈경쟁과 프로젝트 수행능력 부족 탓에 ‘빛 좋은 개살구’ 신세다. 국내 수주전에서 배제된 대기업은 관련 사업 실적 부족으로 해외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특히 13일 발표한 ‘공공SW사업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의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기업 참여 제한은 헌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주장했다. 소프트웨어 기반의 신성장 산업 발전이 더뎌지고 신기술 확보도 어려워진다고도 덧붙였다.

2013년 개정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집단 대기업은 공공IT 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매출액 8000억원이 넘는 소프트웨어 업체도 총사업비 80억원 이하의 공공사업을 수주하지 못한다. 다만 2016년부터 이른바 ‘ICBMA(인터넷·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인공지능)’ 등 신기술·신산업 영역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별도 심의를 거쳐 대기업의 제한적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심의 통과율은 2016년 68.2%에서 지난해 42.9%로 낮아졌다.

단독 입찰 능력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에 밀려

정부는 규제 이후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의 수주금액이 늘어나는 등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규제 취지와 달리 전체 공공사업의 20%가량은 7~8개 중견기업이 차지했다. 대기업이 참여하지 못하는 빈 공간을 일부 중견기업이 메웠다. 단독 입찰 능력이 떨어져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뤄 수주를 노리던 중소기업이 밀려나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그나마 입찰을 따낸 중견기업들도 손익 측면에서는 그다지 남는 장사를 하지 못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참여한 중견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2년 2.1%에서 2014년 0.1%로 내려 앉았다. 입찰에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출혈경쟁을 벌였고, 수주 후에는 사업 수행이나 프로젝트 관리 능력 부족으로 적자를 내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수주전에서 중견기업에 밀린 데 이어 이들의 사업에 하도급 업체로 참여했다가 수익성 악화의 직격탄까지 맞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IT서비스 기업 가운데 매출액 600억원 이하 중소기업 수는 2012년 50개에서 2015년 9개로 줄었다.

국내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대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예컨대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던 국내 대기업의 전자정부 수출은 2015년 5억3404만 달러를 기록한 이후 2017년 2억3610만 달러로 반 토막 났다. 국내 수주 실적이 부족해 해외 전자정부 사업 입찰에서 힘을 못쓰고 있는 것이다. 전자정부 사업은 전자증명 서비스부터 정부 기록물 관리와 관리감독시스템에 이르는 정부 행정업무를 정보기술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해외 입찰에서는 대개 최근 3년간의 실적을 기준으로 전자정부 구축 사업자를 선정한다. 그런데 정부의 규제로 대기업들은 국내 수주 실적을 쌓기 어렵다. 중소기업은 수출 기회를 잡기가 더욱 어렵다. 해외에서는 인지도 높은 국내 대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대기업의 공공시장 참여가 막힌 상황에서는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신기술에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기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을 일방적으로 시장에서 전면 퇴출시키는 제도는 과도한 규제 수단을 사용한 것”이라며 “방법의 적절성과 피해의 최소성 측면에서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위헌 여부는 해당 법규의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을 기준으로 따진다. 방법의 적정성은 규제 목적에 맞게 실제로 효과가 있고 가능한 방법인지, 피해의 최소성은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더라도 과도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원칙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정부의 대기업 규제가)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정당성은 인정되지만,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반면 경제 자유의 침해가 심각하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본다.

임 부연구위원은 “혁신성장동력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소프트웨어 시장 발전, 특히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형 지능정보기술 연구원장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의 대기업 참여 제한이 ‘공생’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부작용만 낳고 있다”라며 “정부가 소프트웨어 사업을 발주해 구매하는 체계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등을 활용해 민간에서 개발된 서비스를 빌려 쓰고 이용료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해 산업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는 지금 - 대형 구축 사업 꺼리고 유지·보수 사업만 노려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 A씨는 최근 정부에서 발주하는 정보화시스템 구축 사업 입찰을 포기했다. 섣불리 덤볐다가 개발에 실패하거나, 발주사의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해 손해를 보게 될까봐서다. 그는 “최근 정부 발주 사업은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웬만해선 (정부 발주 사업에)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수주를 기피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대기업 참여를 제한한 이후 유찰률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경쟁 입찰이 이뤄지지 않아 유찰된 사업 비율이 52%에 이르렀다. 나라장터 사이트에 공개된 소프트웨어 구축·유지관리 사업 가운데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는 40억원 이상 규모 입찰의 계약 현황을 조사한 결과다. 유찰률은 2012년까지 36.8% 안팎에 머물렀다. 그러나 대기업 참여 제한 규제 이후 40%대로 뛰더니 2015년(50.5%)부터 줄곧 50%를 웃돌고 있다.

무엇보다 중소·중견 업체가 수익성 낮은 공공사업 수주를 꺼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기업 규제 이후 공공사업 시장을 집중 공략했지만 프로젝트 수행능력 부족과 출혈경쟁으로 손익을 맞추지 못했다. 애초 제시한 제안요청서 대비 과도한 사업 변경 등도 손실 요인이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당장 손실이 나더라도 공공 부문 레퍼런스를 쌓는 게 장기적으로는 이득일 것이라고 판단해 참여했지만 사업 기간이 길어져 비용이 증가하고 나중에 지체 보상금을 무는 일까지 겪다 보니 이제는 정부 사업 수주를 망설이게 된다”고 말했다. 유호석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대기업 참여 제한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유찰률 증가로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 위축과 행정력 낭비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 중견 업체들은 전략을 바꿔 공공정보화 사업에 대한 수익성 평가를 강화하는 추세다. 특히 리스크가 큰 대형 구축 사업보다는 단순한 유지∙보수 사업에만 입찰하는 업체도 늘었다. 이에 따라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가운데 신규 구축 사업 비중은 2013년 64%에서 2016년 26%로 급감했다. 이와 달리 유지∙보수 사업의 비중은 같은 기간 36%에서 75%로 증가했다. 인공지능∙사물인터넷 등 혁신적 시스템 구축 사업 감소로 경쟁력 감소와 공공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도 문제다. 한 전직 공공기관 발주담당자는 “상당수 사업에서 시작부터 유찰과 재공고를 염두에 둔다”며 “업무 프로세스가 복잡해지고 사업 일정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485호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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