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신판 ‘리플리·개츠비’ 그들의 타락상 

 

정영수 칼럼리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현실을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인격 장애가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대체로 진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시치미 떼고 허구의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리플리 증후군을 ‘성과를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의 부산물’이라고 진단한다. 겉으로 보이는 성취감이나 부(富)와 명성 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 따위다. 각종 모임에 나가 자신을 과장해 으스대는 행위도 리플리 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범죄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됐다. “리플리는 범죄를 저지르며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작가가 소설 속 주인공 톰 리플리를 서술한 대목이다.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르네 클레망이 감독하고 알랭 드롱이 주연한 추억의 명화다. 주인공 톰(알랭 드롱)과 필립은 어릴 적 친구이나, 빈부 격차 등으로 우정이 깊은 사이는 아니었다. 톰은 유럽을 떠돌며 무절제한 생활을 즐기는 필립을 설득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집으로 데려오면 거액을 쥐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막상 필립을 만나고 보니 모멸감을 느껴 그를 죽이고 재산과 그의 연인까지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파멸에 이른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허구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상습적으로 거짓말과 허황된 행동을 반복한다. 의학계에서는 리플리 증후군을 망상 장애나 조현병과 같은 질환의 일종이라고 본다. 최근 들어 리플리 증후군에 노출된 사람들의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다.

“오후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허망한 꿈만이 홀로 남아 싸우고 있었네….” 1922년 뉴욕 외곽에서 사는 닉은 호화로운 별장에 사는 이웃 개츠비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개츠비는 어딘가 베일에 싸인 사나이다.

이 의문의 백만장자는 토요일마다 요란한 파티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 파티에 초대받아 참석한 후 개츠비와 우정을 쌓게 된 닉은 자신의 사촌여동생 데이지와 개츠비가 옛 연인 사이였던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개츠비와 재회하게 된 데이지는 잊혀가는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며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5년작 소설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제목에서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위대함’과는 달리, 이 소설은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타락과 절망을 담고 있다.

“나의 삶은 저 빛처럼 돼야 해, 끝없이 올라가야만 하지.” 최근 일부 타락한 젊은 연예인들이 화려하게 등장한 개츠비의 모습을 꿈꾸다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마약과 성매매 알선, 탈세 의혹 등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소설 속의 리플리와 개츠비가 투영돼 그들을 환호하던 많은 팬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리플리는 돈을 목적으로, 개츠비는 돈을 수단으로 막된 삶을 꾸려나갔다. 물질적 성공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질타할 수만은 없지만, 황금만능주의가 몰고 온 그들의 타락상은 용서받기 어렵다.

1487호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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