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소맥’ 1만원 시대의 단상 

 

정영수 칼럼리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금문교(金門橋·Golden Gate Bridge)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머린 카운티를 남북으로 잇는 미국의 명물 현수교(懸垂橋)다. 샌프란시스코의 교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령으로 1937년 완공된 당대 세계 최장의 다리였다. 길이가 장장 2789m인 데도 교각이 없다는 점이 이채롭다.

골든게이트는 1849년의 골드러시(Gold Rush) 때 붙인 이름이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만(灣)에 사금(砂金)이 지천이었다. 그래서 금을 캐려는 사람들이 신대륙 곳곳에서 몰려들어 아귀다툼을 벌였다. 금을 캐는 일손이 모자라 신문에 구인광고가 넘쳐나, 바로 이때 미국 신문의 상업 저널리즘이 창궐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930년대 대공황시대의 암울함이 존 스타인백(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Grapes of wrath)]에 잘 그려져 있다. 가뭄과 대자본의 진출로 오클라호마의 농장을 뒤로하고 금(金)을 찾아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서부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착취와 탐욕, 저임금과 굶주림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알맞게 따뜻하지만, 밤에는 얇은 담요 한장이 아쉬울 정도로 선선하다. 주머니가 가벼운 노동자들은 한잔 술로 몸을 덥혀 잠을 청하곤 했다. 맥주에 싸구려 위스키를 섞어 마신 것이다. 이름하여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인데, 우리가 말하는 폭탄주의 원조라고나 할까.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술에 물을 타 먹는 경우는 있어도 술과 다른 술을 섞어 마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음주 속성상 술을 섞어 마시거나 잔을 돌리는 나라가 많다. “우리의 군사문화가 낳은 무식한 술버릇”이라고 말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술 끝’이 길어지는 것도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영어로도 우리의 ‘2~3차’에 해당하는 ‘술집 순례(Bar Hopping)’라는 말이 있는걸 보면, 술을 ‘1차’로 끝내지 못하는 건 동서고금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세계적인 한류스타 싸이(PSY)가 몇 해 전 뉴욕의 한 술집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폭탄주’를 청해 마셔 새로운 유행을 낳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때맞춰 한국의 20대 젊은층이 기성세대보다 폭탄주를 더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발표도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몇 해 전 전국의 만 15세 이상 남녀 2066명을 조사한 결과, 3명 중 1명꼴로 “1년간 한 번 이상 폭탄주를 마셨다”고 했다.

20대가 폭탄주를 선호하는 이유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보다 마시기 편하고, 짧은 시간 내에 취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폭탄주를 즐기는 사람 중 97%는 맥주에 소주잔을 폭탄처럼 던져 “밤(Bomb)”소리가 난다는 ‘소폭’을 평균 4잔 이상 마신다고 했다.

블로그 ‘명욱의 동네 술 이야기’에 따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폭탄주는 바로 혼돈주(混沌酒)다. 조선 말기 전라도를 중심으로 유행한 술로서, 만드는 방법은 막걸리에 증류식 소주를 타는 식이다. 다만 지금처럼 많이 마시면서 빨리 취하는 폭탄주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막걸리의 앙금이 가라앉은 다음에 맑게 떠오른 소주를 마시는 것인데,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빨리 마셔서 빨리 취하는 술과 달리 적어도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술이었다고나 할까.

일제 강점기에는 특이한 술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비탁(맥주+탁주)’이라는 술이다. 1930년대 들어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기린 맥주와 삿포로 맥주가 영등포에 공장을 차린다. 오비맥주와 조선맥주의 전신이다. 이때의 맥주 가격은 일반 노동자 사나흘치의 임금에 해당할 정도로 비싸다 보니 맥주의 양을 늘리기 위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섞어 마시는 혼합주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바로 맥주에 탁주를 섞은 것이다.

폭탄주는 영국의 산업혁명 시절에도 노동자들이 싼값에 빨리 취하기 위해 맥주에 위스키를 섞어 마셨다는 설도 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외환위기 이후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미 1980년 정부의 언론 통폐합 때 해고된 언론인들이 ‘관제 통폐합’의 상황을 빗대어 소주와 맥주를 섞어 ‘통폐합주’로 마셨다는 서글픈 유래도 전해진다.

‘주신(酒神) 바커스(Bacchus)는 해신(海神) 넵튠(Neptune)보다 더 많은 사람을 익사시켰다’는 말이 있다. 술을 마시고 유명(幽明)을 달리한 사람이 물에 빠져 숨진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은유적 표현이다. 술의 해악적 측면만을 부각해 누군가가 꾸며낸 얘기겠지만 그럴싸하다.

그런데 최근 소비자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오르다 보니, 소주 1병과 맥주 1병을 섞어 마시려면 1만원이 필요하게 됐다. 소주와 맥주 값이 동시에 오르다 보니 직장인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소맥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소주 출고가 인상 소식을 접한 일부 식당이나 주점 등에선 현재 4000원 정도에 팔고 있는 소주 가격을 5000원으로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식당과 주점에서 술값을 올려 받을 경우 소맥의 원재료가 되는 소주 1병과 맥주 1병 가격은 합쳐서 1만원대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3년 이상 값이 묶인 소주는 영업이익이 줄어들어 실적이 악화할 때마다 소주 도수를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주는 주정(酒精)에 물을 섞어 만드는데, 도수가 내려가면 주정 값이 줄어든다. 소주 도수를 1도 낮추면 병당 6~10원의 원가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주정과 첨가물, 병값과 포장재 등 원부자재 가격, 주 52시간에 따른 인건비 상승, 물류비 상승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먼저 출고가격이 오른 맥주의 경우 5000원에 판매하는 식당과 주점이 빠르고 늘고 있다. 소주 업체는 출고가에 병당 300원~400원의 유통 마진을 얹어 식당이나 주점에 납품한다. 식당이나 주점 업주 측은 경기 불황으로 술 소비가 줄고, 임대료 등이 올라 술값으로 적자를 메울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출고가는 정작 몇십원 올랐을 뿐인데 소비자가가 1000원 오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술이 우리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적당량만 마신다면 신진대사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좋은 자리엔 꼭 술이 붙는다. 술도 음식이다. 하루에 소주를 3~4잔 이내로 마시면 뇌졸중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와인·맥주 등 서양 술이 아닌 소주의 뇌졸중 예방효과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미국신경학회 학술지 ‘신경학(neurology)’에도 실린 이 연구내용을 보면, 하루에 소주를 1잔(알코올 10g) 마시는 사람의 허혈성 뇌졸중 예방효과는 소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62% 높았다.

연구결과를 보면, 소주 2잔을 마시는 사람은 뇌졸중 예방효과가 55%, 소주 3~4잔은 46%였다. 적정 음주량은 남녀 간 차이를 보여 남성은 3~4잔까지 예방효과가 있었지만 여성은 1~2잔까지만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음주의 효과를 확대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비슷한 내용은 미국의 스탠퍼드대와 텍사스주립대학 연구팀도 발표했다. 하루에 1~3잔을 마시는 적당량의 음주자(Moderate drinker)와 3잔 이상을 즐기는 폭음자(Heavy drinker) 그룹의 사망확률이 비음주자(Non-drinker) 그룹보다 훨씬 낮았다. 다만 술도 음식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어느 음식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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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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