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지역화폐 전성시대] 주민은 할인 받고, 상인은 수수료 줄고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경기도, 지역화폐 발행 가장 적극… 블록체인 등 디지털 지역화폐도 등장

▎4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 전시된 다양한 종류의 지역화폐. / 사진:연합뉴스
지역화폐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발행하고 지자체 행정구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전통시장은 물론 모든 소매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자금이 지역에서 선순환된다는 이점 때문에 지자체가 요즘 앞다퉈 지역화폐를 도입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경기도와 강원도, 인천, 광주광역시 등지의 지자체 56곳이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지난해 지역화폐를 도입한 이후 31개 시·군이 지역화폐를 발행했거나 발행을 추진 중이다. 가장 최근에는 하남시가 ‘하머니’라는 이름의 지역화폐를 내놨다. 전국에서 올해 안에 지역화폐를 발행할 예정인 지자체도 8곳에 이른다. 청주시는 올해 하반기 100억원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할 예정으로 현재 조례를 추진 중이다. 제천시도 올해 총 200억원의 지역화폐를 발행할 계획이다.

지역민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경기도 안산시는 4월 발행한 상품권 형태의 지역화폐인 ‘다온’을 내놓은 지 한달여 만에 40억원가량을 판매했다. 제천시는 3월 지역화폐인 ‘모아’ 발행을 시작해 한 달여 만에 16억원을 판매했다. 영동군도 2월 ‘영동사랑상품권’을 발행해 두 달 새 2억1458만원의 판매실적을 올렸고, 옥천군 역시 지난해 7월 ‘옥천사랑상품권’을 도입해 올 1분기까지 약 4억원 상당을 판매했다. 포항시가 지난해 내놓은 지역화폐인 지역사랑상품권은 1000억원 정도가 판매됐다.

할인 혜택주거나 적립금 쌓아줘


지역화폐가 인기를 끄는 건 지자체 재량에 따라 액면가의 일정 부분을 할인하거나, 적립금으로 쌓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10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구매한다고 했을 때 5% 할인받으면 95만원에, 10% 할인 받으면 90만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남시는 현재 10%, 제천시는 4%, 충주시는 6%, 영동군은 5% 할인해 준다. 할인 판매하지 않는 지자체는 대개 적립금을 쌓아준다. 당장 현금 할인은 아니지만 할인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진천군은 현재 5% 적립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전통시장 등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인 만큼 해당 시·군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기업형 수퍼마켓(SSM), 유흥업소 등에선 사용할 수 없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중소벤처기업부의 ‘온누리상품권’과 유사하지만 판매수익금이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선순환하고, 전통시장은 물론이고 모든 소매점에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남시청 관계자는 “학원 등지에도 하머니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지역 골목상권 살리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남시는 지역화폐 ‘성남사랑상품권’을 통해 전통시장을 살리기도 했다. 성남시가 2012년 선보인 성남사랑상품권은 발행 4년여 만에 영세 자영업자의 실질소득을 22.3%나 끌어 올렸다. 성남시 상권활성화재단이 청년배당과 산후조리비를 지역화폐로 지급한 성과를 분석한 결과, 전통시장인 성남 분당구 돌고래·금호시장의 자영업자 매출은 2015년 23억7000만원에서 2016년 30억3000만원으로 27.8% 성장했다. 성남사랑상품권 판매액은 2015년 133억원에서 2016년 249억원, 2017년 278억원, 2018년 446억원으로 3년 새 3.25배로 늘었다.

이 같은 지역화폐는 사실 꽤 오래 전인 1997년 태어났다. 당시 정부는 경제 위기 이후 지역 상권 활성화와 지역 공동체 강화, 실업 구제 등의 목적으로 지역화폐를 도입했다. 당시 한 모임에서 ‘미래화폐’를 만들면서 최초의 지역화폐가 등장했다. 이후 서울 송파구의 ‘품앗이’(1999), 대전시의 ‘한밭레츠’(2000) 등으로 전파하면서 2000년대 초반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지자체가 72곳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지역민의 일상생활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 실질적으로 보편화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들어서다. 초창기에는 백화점 상품권과 같은 유가증권 형태가 많았다. 지금도 유가증권 형태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카드 형태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지역화폐가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의 지역화폐는 시·군별로 이름이나 할인율은 제각각이지만, 직불카드 형태로 발행하고 있다. 본인 명의의 은행계좌를 갖고 있는 만 14세 이상 거주자면 누구나 구매해 발행 시·군에서 사용할 수 있고, 발급된 해당 지자체 관내 가맹점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카드 신청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하면 되고, 카드를 받으면 등록 후 충전해 사용하면 된다. 카드 단말기가 설치된 음식점, 소상공인(자영업자) 업체, 전통시장 등이 사용처다. 정책수당(청년배당·산후조리비) 등이 지역화폐로 지급된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지역화폐도 등장하고 있다. 김포시는 4월 KT와 함께 블록체인 기반의 지역화폐 ‘김포페이’를 선보였다. 지역화폐 가맹점에서 상품의 QR코드를 스캔하면 결제되는 시스템으로, 가맹점주는 결제된 지역화폐를 즉시 원하는 계좌로 환전할 수 있다. 앞선 지난해 2월 서울시 노원구도 블록체인 업체인 글로스퍼가 시스템을 구축한 지역화폐 ‘노원’을 발행한 바 있다.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지역화폐는 가맹점이 내야 할 카드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 게 이점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자화폐는 실시간으로 사용 이력을 추적할 수 있고, 지역화폐 정책 효과 분석과 문제점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며 “또 사용 규모의 정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발행규모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부도 지역화폐 적극 지원


정부도 지역 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입증된 만큼 지역화폐를 늘려 간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전용 상품권 18조원 발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영업자 종합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역화폐 발행과 관리 비용이 적지 않게 드는 데다 지역화폐가 정말 지역 경기 활성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발행 규모가 50억원일 경우 약 10% 정도 금액을 발행·운영 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 고비용 구조인 셈이다. 속칭 ‘깡’이라 불리는 불법 환전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지역화폐는 대부분 실제 사용 금액보다 할인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사재기와 깡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병조 울산과학대 유통경영학과 교수는 “디지털 화폐 등을 통해 불법 환전에 대한 위험성을 줄여나가고, 지역민의 자발성과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지역화폐가)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489호 (2019.06.2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