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클라우드로 눈 돌리는 대기업들] 삼성도 LG도 현대차도 ‘구름 타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데이터 분석·활용 플랫폼으로 자리매김… 단순 비용 절감 수단 넘어서

국내 대기업들이 정보통신(IT) 시스템의 클라우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클라우드가 데이터 급증이 일어나는 4차 산업혁명에서 비용 절감 수단을 넘어 이른바 ‘데이터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상품 출시와 생산·판매 전 부문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대기업들은 데이터 플랫폼으로 클라우드를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마침 아마존웹서비스(AWS)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는 급증하는 데이터를 담을 인프라를 대여를 넘어 데이터 분석을 위한 머신러닝·인공지능(AI) 기반 툴까지 제공하고 있다.

국내 10대 기업, IT 시스템 전환 추진


IT업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차·LG·한진 등 국내 10대 대기업 대부분이 IT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한항공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전사 시스템을 AWS의 클라우드로 전면 이전하기로 정했다. LG그룹은 2023년까지 그룹 전체 계열사 IT 시스템의 90%를 클라우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약 7000억원을 투입해 전사적관리시스템(ERP)의 클라우드 전환을 계획했다. ERP는 기업 내 생산·물류·재무·회계·영업·구매·재고 등 전반적인 경영 활동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삼성SDS는 이미 지난해 말 그룹 계열사 IT 시스템의 90%를 클라우드로 변경했다. SK·롯데·한화 등 대기업 역시 IT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기업들이 IT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을 두고 클라우드가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클라우드 전환은 기존 전산실의 물리적 서버에 저장돼 있던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가상의 클라우드 서버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클라우드 서버는 AWS나 MS 등이 자사의 데이터 센터를 통해 제공한다. 이 경우 서버 유지·보수·관리 비용은 물론 서버를 설치할 물리적 공간도 필요 없다. 특히 클라우드서비스를 제공하는 AWS·MS·구글 등의 머신러닝·AI 같은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데이터 분석 효율을 높이고, 빠른 시장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 김영섭 LG CNS 사장은 “클라우드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클라우드는 게임이나 인터넷 쇼핑몰처럼 고객이 특정 시점에 집중되는 영역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고, 해당 기업들에게서 각광받았다. AWS가 주요 고객사로 확보한 쿠팡과 넥슨이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서버를 직접 구축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컴퓨팅 자원 활용을 위한 비용 절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안정성과 보안성을 중심에 둔 데이터 센터 구축을 중시한 것도 이유가 됐다. 그러나 데이터 경제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의 대두로 상황이 달라졌다. 넷플릭스가 영화관을 위협하고 핀테크 스타트업이 은행의 입지를 흔드는 배경에 데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기업들은 각 사와 각 부서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고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활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클라우드를 택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AI·머신러닝 등을 활용해 빅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AWS 클라우드를 활용, 개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빅데이터 기술로 승객의 여정 정보 등을 분석해 고객에게 최적화된 항공 상품을 빠르게 제안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이 같은 변화는 넷플릭스가 이미 AWS 클라우드를 활용해 일으킨 변화와 닮아 있다. 넷플릭스는 2009년 AWS 클라우드를 도입, 2016년 마지막 자체 데이터 센터를 완전히 폐쇄하고 클라우드로 이전했다. 당초 넷플릭스는 비용 절감, 엔지니어들의 생산성 향상 등의 효과를 얻으려 했으나 방대하게 쌓인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AWS가 클라우드와 함께 제공하는 머신러닝 툴을 활용해 고객 취향에 맞는 추천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개별 가입자에 대한 맞춤 추천 시스템을 넷플릭스의 주효 성공 전략 중 하나로 꼽고 있다.

LG그룹은 클라우드 전환으로 경영과 고객 관리는 물론 공정 최적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LG그룹 클라우드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LG CNS는 현재 25% 수준인 LG그룹의 클라우드 전환율을 2023년까지 90%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제시했다. 또 ‘클라우드 엑스퍼(Xper)’라는 클라우드 기반 통합 관리 소프트웨어도 개발해 상반기 중에 출시하겠다고 했다. 클라우드 엑스퍼는 AWS와 구글, MS의 클라우드를 동시에 쓸 수 있는 ‘멀티 클라우드’ 형식으로 모든 계열사가 수집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통합 분석해 마케팅, 생산 관리, 고객 관리에 활용할 전망이다. 2020년까지 약 7000억원을 투입해 IT 시스템의 클라우드 전환을 밝힌 삼성전자는 이미 무선사업부 내 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병행·협업해 생산성을 향상하는 프로젝트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매출을 창출하는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매출 증가가 평균 2배 빠르다는 분석을 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안을 이유로 클라우드 전환에 부정적이었던 현대차도 변하고 있다. 이용 경험의 누적으로 신뢰가 쌓이면서 클라우드 보안 관련 우려가 줄어든 덕이다. 앞서 현대차는 빅데이터 기반 공정 최적화 솔루션을 개발하는 등 데이터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클라우드 전환엔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현대차는 ERP 시스템에 오는 2026년까지 약 4000억원을 투입, 클라우드로 전환을 예정했다. 현대차는 독일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SAP와 함께 ERP를 클라우드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클라우드 전환 지지하는 ‘젊은 피’ 총수

일각에선 국내 대기업들의 클라우드 전환 추진 배경으로 기존 총수를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선 40~50대 ‘젊은 피’ 총수들을 꼽고 있다. 타계한 기존 총수를 대신해 각각 총수에 오른 구광모(41) LG 회장과 조원태(44) 한진 회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취임한 구광모 LG 회장은 데이터를 통한 비즈니스 혁신을 강조하면서 ‘클라우드 퍼스트’를 내세우고 있다.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전사 시스템의 클라우드 전면 전환에도 조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아버지를 대신해 삼성의 총수로 이름을 올린 이재용 부회장은 글로벌 인공지능 연구센터를 신설하는 등 세계 각지에 AI 글로벌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모든 사업을 직접 관리·통제해야 한다는 기존 대기업의 고정된 사고가 대기업 총수의 세대교체로 변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나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쓰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제품을 가져와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490호 (2019.07.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