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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의 무한질주] 올 상반기 팔린 차 2대 중 1대 SUV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중형·준중형 일변도에서 초소형·대형까지 라인업 확장… 하이브리드·전기차까지 접수 태세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전성시대다. 국내에서 2000년대 들어 조금씩 인기를 끈 SUV는 올 상반기 판매량에서 세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 상반기 팔린 차 2대 중 1대가 SUV였다. 라인업도 다양해졌다. 준중형·중형 일변도에서 초소형·대형으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친환경차도 SUV 모델이 대세다. 하반기에도 SUV 신차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SUV 질주의 배경과 전망 등을 짚어봤다.


▎(왼쪽부터) 기아차 니로, 쌍용차 티볼리, 현대차 팰리세이드
군용차가 승용차 시장의 대세가 됐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얘기다. SUV 원형은 2차 세계대전 독일이 개발한 군용차였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대형 SUV G클래스가 당시 나온 ‘G5’에 기원을 뒀다. 미국은 G5에 맞서 ‘지프’를 개발했다. 지프는 다용도(General Purpose)의 약자 ‘GP’에서 비롯했다. 지프는 1950년 한국전쟁에서도 활약했다. 과거 SUV를 ‘짚차’로 불렀던 이유다.

군용차였던 SUV는 2000년대 들어 실용성과 안전성, 탁 트인 시야 등으로 주목받았다. 최근 기술 발전으로 연비와 승차감까지 개선된 SUV는 국내 승용차 시장의 주역으로 질주하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국내 완성차 시장 승용차 판매의 절반은 SUV였다.

‘승용차=세단’ 공식 깨져


‘승용차=세단’으로 통했던 국내 완성차 시장이 SUV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승용 SUV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국내에 등록된 승용차 중 SUV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9.4%(25만2259대)에서 지난해 35.6%(55만7497대)로 커졌다. 현대차·기아차·쌍용차·르노삼성·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신차 판매량 기준 SUV 비중은 지난해 이미 40%를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에는 48.5%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팔린 승용차(62만5235대) 2대 중 1대가 SUV였다는 뜻이다. SUV 판매량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30만3315대를 기록하며 지난해(28만3538대)와 비교해 6.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단 판매는 줄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승용 세단 판매량은 32만192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34만1107)보다 5.6% 줄었다. 55%였던 세단 비중은 51%로 4%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세단 비중은 올해 1월 51.4%, 2월 50.8%로 낮아졌고 3월에는 40%대로 떨어져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5개사가 국내 승용차 시장에 판매 중인 세단 총 29개 차종 중 쏘나타, G70, G90/EQ900, 레이, K9, 말리부 등 6개 차종만 전년보다 늘어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총 21개 SUV 차종 중 투싼, 팰리세이드, 쏘울, 니로, 코란도, QM6, 트랙스, 이쿼녹스 9개 차종에서 판매 증가가 나타난 것과 대조된다.

SUV가 잘 팔리는 이유는 기술의 발전으로 연비와 승차감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SUV는 그동안 넓은 실내공간과 적재 공간을 갖췄다는 장점에도 차량이 무겁고 차고가 높아 연비가 떨어지고 불편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과거 SUV가 채택했던 ‘프레임 바디’가 원인이었다. 프레임 바디는 차량의 뼈대가 되는 구조물인 프레임 위에 엔진과 서스펜션 등 구동계를 결합하고 그 위에 차량의 외형을 올린 형태를 말한다. 크고 단단한 강철 프레임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강성이 좋지만, 프레임 무게가 많이 나가는 탓에 무겁고 연비가 떨어지며 실내공간 확보도 이뤄지지 않았다. SUV가 유가 하락이나 아웃도어 열풍 등에 힘입어 반짝 인기를 끌다가 이내 세단에 밀려나곤 했던 이유다.

그러나 ‘모노코크 바디’를 SUV에 적용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른바 ‘도심형 SUV’가 대표적이다. 도심형 SUV는 별도의 프레임 없이 차체를 하나의 견고한 박스처럼 만들어 차량을 제작하는 모노코크 방식을 채택했다. 모노코크 바디는 원래 항공기 구조에 적용되던 방식이다. 공간 확보가 유리하고 무게가 가벼워 연비가 좋은 장점을 갖는다. 다만 상대적으로 강성이 떨어져 험로 주행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이 떨어지는 단점은 도심형 SUV라는 이름을 붙여 만회했다. 완성차 업체는 모노코크 바디로 SUV의 단점인 연비 저하를 개선하고 세단에 비해 큰 차체를 장점으로 삼아 넓은 실내 공간과 적재공간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 엔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같은 차급이라 해도 덩치가 큰 SUV를 끄는 데 무리가 없어졌다. 실제 현대차는 준중형 세단 아반떼와 준중형 SUV 투싼에 동일한 1.6ℓ 디젤 엔진을 적용하고 있다. 변속기 역시 자동(DCT) 7단으로 같다. 투싼 전장은 4480mm로 아반떼 전장 4620mm보다 짧지만, 차체 폭이 넓고 높아 훨씬 크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존 SUV는 프레임 위에 차체를 얹는 만큼 차량 높이와 무게중심이 높아져 도로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속력·승차감이 좋지 않아 수요가 제한됐지만, 최근엔 완전히 변했다”면서 “도심형 SUV는 실용성과 안전성을 챙기면서 세단이라 봐도 좋을 정도의 연비와 주행 성능을 갖추고 있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SUV는 세단보다 오히려 나은 차라는 인식이 퍼졌다”고 설명했다.

차급 구성까지 세단과 대등해져


SUV가 인기를 끌자 완성차 업체는 최근 SUV를 세단과 대등한 형태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동안 국내 완성차 업체의 중심은 세단이었다. 중세시대 프랑스 가마인 ‘스당(sedan)’에서 유래한 세단만이 소형부터 대형까지 모든 차급에 활용됐다. 차체 뒤쪽에 위아래로 여닫을 수 있는 문이 있는 해치백은 중형 이상으로 확장되지 않았고, 쿠페(2인승 세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최근 완성차 업체는 초소형부터 대형까지 SUV로 차급을 확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똑같은 차종을 세대만 달리하며 지속적인 판매 상승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세단 플랫폼인 모노코크 바디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SUV라는 이름의 신차를 내놓는 것은 완성차 업체가 침체된 시장을 살리는 쉽고 유용한 재료가 됐다”고 했다.

실제 완성차 업체는 세단이 힘을 잃은 시장에 SUV를 내놓으며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 현대차 엑센트, 기아차 프라이드, 한국GM 아베오가 이끌었던 소형차 시장이 대표적이다. 소형 세단이었던 엑센트, 프라이드, 아베오는 월평균 판매량이 1000대에도 못 미쳤다. 여기에 기아차는 소형 SUV 스토닉을 출시하며 소형차 구매 수요를 끌어왔다. 프라이드 차량 구성 플랫폼이었던 모노코크 바디를 그대로 사용해 SUV로 출시했다. 올해 상반기 스토닉은 월평균 925대가 팔리고 있다. 기아차는 2017년 스토닉을 출시한 후 프라이드를 단종시켰다. 단종 이전 프라이드 월평균 판매량은 340여 대에 불과했다. 아베오 국내 판매를 중단한 한국GM은 트랙스를 통해 소형차 시장을 방어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트랙스는 6233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SUV는 가솔린차는 물론 하이브리드차(HEV)·순수전기차(EV)·액화천연가스(LPG)차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능이 좋아지자, SUV가 세단의 영역을 대신하기 시작한 셈이다. 특히 르노삼성 중형 SUV QM6는 가솔린 모델은 지난 6월 2105대가 판매되며 누적 판매 대수가 4만5000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LPG 모델인 QM6 LPe는 1408대 판매됐다. QM6 디젤 모델은 271대가 팔린 데 그쳤다. 차체가 크고 무거운 탓에 완성차 업체가 SUV 주력을 디젤 모델로 꾸렸던 것과 대조된다. 기아차가 SUV로 내놓은 친환경차 전용 모델 니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니로는 올해 상반기 HEV와 EV를 합쳐 1만4917대가 팔렸다. 그러나 현대차가 세단 형식으로 내놓은 아이오닉은 올해 상반기 동안 EV와 HEV 모델을 합쳐 2676대 판매되는 데 그쳤다. 또 아이오닉 EV 판매량은 883대로 7697대가 팔린 코나EV의 9분의 1 수준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선 무거운 SUV에는 토크가 좋은 디젤엔진이 알맞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디젤게이트 이후 뛰어난 성능의 가솔린 SUV와 HEV SUV 등이 나오며 이런 인식이 뒤집혔다”면서 “SUV는 이제 세단을 대신하는 자동차의 한 형태로 인식돼 디젤이냐 아니냐는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하반기 소형부터 대형까지 SUV 신차 봇물


▎한국GM 트랙스
SUV는 하반기에도 국내 승용차 시장의 대표주자로 군림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SUV의 판매 비중 증가를 이끈 주요 차종의 경쟁 모델이 대거 출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SUV 시장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팰리세이드가 지난 1~6월 3만1502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시장 가능성을 입증하자 경쟁사가 줄줄이 동급 신차 출시를 발표하고 나섰다. 한국GM은 이르면 8월 말 대형 SUV 트래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트래버스(5189㎜)는 팰리세이드(4980mm)와 전장을 비교해도 209mm나 긴 대형 SUV다. 기아차는 하반기 대형 SUV인 모하비의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포드자동차의 대형 SUV 익스플로러도 팰리세이드를 경쟁 모델로 지목했다. 여기에 제네시스까지 SUV(GV80)을 출시, 하반기 대형 SUV 대전에 불을 지필 전망이다. GV80은 제네시스 최초의 SUV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소형차 시장은 SUV 전쟁터로 치닫고 있다. 쌍용차가 티볼리 부분변경 모델을 내놨고, 현대차가 베뉴, 기아차가 셀토스를 각각 출시하기로 했다. 하반기 폴크스바겐까지 소형 SUV 티록 국내 출시를 앞뒀다. 올해 상반기 내수 시장에서 국내 완성차 업체에 소형·대형 SUV 시장 주도권을 뺐긴 수입차는 대신 하반기 중형 SUV 시장 공략 나선다. BMW그룹코리아가 3분기 중 X3M·X4M 등 2종의 고성능 SUV를 국내 출시한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준대형 SUV GLE클래스 완전변경 모델을 선보인다. 폴크스바겐도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출시했던 3세대 투아렉을 하반기 국내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이 밖에 캐딜락(XT5), 포르쉐(마칸), 랜드로버(이보크), 시트로엥(DS3 크로스백), 링컨(에비에이터)도 줄줄이 중형급 안팎의 SUV 출시를 준비 중이다.

미국·중국·유럽에서도 SUV가 대세

한편 SUV의 인기는 세계적인 추세로 번지고 있다. 유가가 하락하며 수년 전 이미 SUV 인기가 시장된 미국에선 지난해 판매량 상위 25개 차종에 픽업트럭과 SUV가 17개 차종이 올랐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도 무게중심이 SUV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SUV 판매 비중은 2010년 1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전체 판매의 40%인 1000만대를 차지했다. 왜건이나 해치백 위주였던 유럽 시장도 올해 SUV 점유율이 30% 이상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대차 글로벌경영연구소는 세계 세단 수요가 2014년 4800만대를 정점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세단 판매는 4260만대로 5년 사이 540만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SUV 중심 시장 개편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1492호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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