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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시대 열리나] 핵탄두 배치에 핵 공유도 불사할까 

 

냉전 종식의 상징 중거리핵전력(INF) 8월 2일 폐기… 동북아 국제역학 근본적으로 바뀔 수도

▎지난 3월 독일 뒤셀도르프 축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한 모습을 풍자한 모형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냉전 종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던 중거리핵전력(INF)이 8월 2일 폐기됐다.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조인했으며 6개월 후인 1988년 6월 발효됐었다. INF는 사거리 500~5500㎞의 중거리 지상발사형 탄도·순항 미사일을 모두 폐기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양국은 1991년 5월까지 핵탄두 또는 재래식 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모든 중거리 미사일의 폐기를 완료했으며, 그 뒤 이를 개발·생산·보유·배치하지 않으면서 조약을 자동 연장해왔다

요격할 시간 부족해 전술적으로 위협적


하지만 러시아의 신형 중거리 미사일 실전 배치와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전력 강화를 둘러싸고 2018년 10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만을 토로하면서 INF에서 이탈하고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의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2월 1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그 이튿날인 2일 각각 INF 이행 중단을 공식 선언했다. 그 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8월 2일 INF는 결국 사라졌다. 인류는 이제 INF 없는 세상을 맞고 있다. 핵전력 경쟁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

INF가 체결된 1987년 상황을 살펴보면 이 조약의 중요성과 조약 폐기의 위험성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사거리 5500㎞ 이상의 대륙간 탄도미사일보다 사거리 500~5500㎞의 중거리 미사일이 위험한 이유는 발사될 경우 이를 요격하거나 대체할 시간이 지극히 짧다는 데 있다. 미사일이 발사된 후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륙간탄도탄보다 전술적으로 더욱 위협적인 것은 물론 우발적인 핵전쟁의 가능성도 더욱 크다. INF는 이러한 중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을 폐기해 핵 전쟁의 공포를 줄이고 미국과 소련이 핵전력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INF에 따라 폐기 시한인 1991년 6월 1일까지 미국은 846기, 소련은 1846기 등 모두 2692기의 중거리 미사일을 없앴다. 양국은 베를린을 기준으로 동유럽을 공격할 수 있는 퍼싱 Ⅰb(사거리 740㎞), 동유럽과 소련 서부를 공격권으로 하는 퍼싱Ⅱ(1740㎞), 모스크바까지 가격할 수 있는 BGM-109G(2500㎞)를 전량 폐기했다. 소련은 소련 영토에서 서독을 가격할 수 있는SS-23(500㎞), SS-32(900㎞), 베네룩스까지 공격할 수 있는 SS-4(2080㎞), 프랑스·영국·이탈리아까지 날릴 수 있는 SS-C-X-4(3500㎞) 등을 없앴다.

31년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핵 군축

이에 따라 이 협정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핵 군축으로 평가받았으며 협정은 31년간 유지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핵폭격기로 이뤄진 장거리 핵무기는 1차와 2차 스타트(START: 전략무기감축조약)와 뉴스타트(New START: 신전략무기감축조약)에 따라 줄여왔다. INF의 성공에 고무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INF는 200년대 들어 러시아 신형 미사일의 등장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1996년 개발한 사거리 500㎞의 전술 탄도미사일 9K720 이스칸데르-M(나토명 SS-26)을 2006년 실전 배치한 것이 계기다. ‘이스칸데르’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렸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러시아어 호칭이다. 러시아가 정복 군주의 이름을 딴 미사일을 앞세워 INF로 사라졌던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재건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에 했던 미국과의 약속을 어기고 전력 균형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더구나 이스칸데르-M은 복잡 회피기동으로 요격이 힘들다. 탄도미사일은 로켓 추력을 바탕으로 발사 지점에서 목적지까지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날아가는 유도 발사체다. 하지만 이스칸데르의 비행 궤도는 고전적인 탄도미사일과 사뭇 다르다. 기본적으로는 탄도 미사일과 같은 포물선을 그리지만 최종 단계에서 엔진을 재점화해 전체적으로 ‘옆으로 누운 오뚜기’와 비슷한 모양으로 비행한다.

탄도미사일을 잡으려는 측은 이 포물선 궤도를 바탕으로 물리적인 궤도를 수학적으로 이동경로와 탄착점을 계산해 요격미사일을 발사하게 된다. 하지만 엔진 재점화는 이동경로와 탄착점, 심지어 사거리까지 모두 예상을 헛갈리게 한다. 엔진 재점화는 적의 요격을 어렵게 하는 회피기동에 해당한다. 전시에 적의 레이더 기지, 지대공 미사일 포대, 비행장, 항만, 지휘통제 센터 등을 노릴 수 있다. 초기 기습에 용이한 무기체계다. 러시아군은 이 미사일을 시리아에 배치해 실전 경험까지 쌓았다. 미국 입장에선 방어가 까다로운 적 미사일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스칸데르-M은 북한이 지난 5월과 7월 쏘았던 쏜 바로 그 괴물 미사일이라는 점이다. 기존 탄도미사일과 다른 비행 궤적 때문에 미사일의 사거리 파악도 잘못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러시아의 신형 미사일 배치로 INF 흔들려


러시아는 미국이 2006년과 2013년 서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자국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원래 독일령 동프로이센의 북부 지역으로 2차대전 뒤 소련이 병합)에 이스칸데르-M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한바탕 외교적 소동을 벌였다. 당시 미국이 자국과 가까운 동유럽 국가 폴란드에 미사일방어(MD)용 미사일을 배치하자 러시아가 반발한 것이다. 폴란드는 냉전 당시 소련 진영의 바르샤바조약국이었으나 1992년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이 종식된 후인 1999년 3월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해 러시아에 대응하고 있다. 폴란드는 2004년 유럽연합(EU)에도 가입해 서방 진영의 일원이 됐다.

문제는 칼리닌그라드에 이 미사일을 배치하면 나토 회원국의 수도인 폴란드 바르샤바, 리투아니아 빌뉴스, 라트비아 리가 물론 독일 베를린까지 핵 타격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미국 바로 남쪽의 쿠바에 소련이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한 것이나 진배없는 위험한 상황이 유럽에서 벌어진 셈이다. 서방으로선 1987년 INF로 폐기됐던 러시아(당시 소련)의 중거리 미사일 전력이 되살아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자 미국은 2014년 7월 처음으로 러시아에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INF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 당시의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2017년 2월엔 보란 듯이 사거리가 300~5500㎞에 이르는 9M729 이스칸데르-K 순항 미사일까지 실전 배치했다.

러시아는 오히려 미국이 INF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루마니아와 일본에 배치를 추진한 지상 기반 이지스 시스템인 ‘이지스 어쇼어’가 원래 목적인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넘어 중거리 미사일 발사 시스템으로 전용될 수 있다고 의심한다. 이지스 어쇼어는 지금까지 이지스 시스템을 갖춘 군함에 장착했던 미사일 탐지·추적·요격 시스템을 지상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이 날아오는 데 대비하기 위한다는 명문을 내세워 이를 요격할 이지스 어쇼어의 배치를 추진해왔다.

미국과 일본은 이지스 어쇼어에 미사일을 요격하는 SM-3 미사일만 배치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국과 일본이 요격미사일인 SM-3 외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도 이지스 어쇼어에 배치하려고 한다고 의심한다. 중거리 순항 미사일인 토마호크의 지상 배치는 INF 위반이다. 이 때문에 그간 미국은 토마호크를 수상함이나 잠수함에서 발사해왔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은 미국 군함에서 토마호크가 발사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서로 의심이 쌓이고 비난전이 확대되다 INF는 결국 폐기에 이르렀다.

러시아 “미국이 먼저 INF 위반” 주장

INF가 폐지된 배경에는 미국의 중국 견제 목적도 자리잡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INF가 미국과 러시아의 발목만 잡았을 뿐 중국에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해왔다. 중국이 그동안 마음껏 핵전력을 키웠음에도 그 위협 아래에 있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도 불만이었다. 이제 INF가 폐기됐으니 트럼프가 어디까지 움직이는지에 관심이 모인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6월 미러 정상회담에서 중국까지 포함한 군축 협상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현재 미국은 미국·러시아·중국이 모두 참여하는 핵군축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군축 협상을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중국의 참여에도 이견이 없다. 다만 미국이 중국을 설득해 협상장에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어느 정도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INF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며 새로운 군축 협상에 참가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 소련(이후 러시아)이 INF에 따라 중거리 미사일을 억제하는 동안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핵무기까지 장착할 수 있는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 배치하며 글로벌 핵 억제 노력에 무임승차해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제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을 마음껏 개발·생산·배치하는 것은 물론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이를 배치하면서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에 대한 압력을 냉전 이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높일 수도 있다.

중국도 만만치 않게 대항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무역전쟁으로 힘이 부치는 상황에선 아무래도 운신이 폭이 좁다. 미국으로선 절호의 기회인 셈이고, 중국으로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맞을 수 있다. 미국은 INF 폐기를 계기로 발빠르게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8월 9일 방한한 마크 에스퍼 신임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3일 호주 방문 중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동맹국과 협의하겠다”고 발언한 것이 미국의 속마음일 것이다.

미국이 한국·일본에 중거리 핵전력을 배치할 경우 잃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이고, 얻는 것은 북한 핵전력의 실질적인 무력화일 수도 있다. 미국이 평양과 베이징에 불과 몇십 분이면 도달하는 중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하면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근거리 핵우산으로 직접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핵 억제력을 유지하면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 억지나 핵 압력, 핵 협박이나 중국의 압박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된다. 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핵미사일은 전쟁 발발 때 몰려오는 적의 예봉을 꺾기 위한 ‘전술핵무기’가 아니라 적의 수도나 대도시를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전략핵’이다. 그만큼 함부로 쓸 수 없는 무기 체계이지만 분쟁을 억제하는 효과도 그렇게 클 수밖에 없다. 조기경보 시간이 짧은 이 무기체계의 위험도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는 남는다.

미국·러시아 “중국도 핵군축 협상에 참여해야”

여기에 전시에 미군의 핵무기 일부를 한국군이 운용할 수 있게 하고 수시로 이를 훈련하는 ‘핵 공유’까지 할 경우 핵우산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다. 미국으로선 한국과 일본의 도미노 자체 핵 무장과 핵무기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확장일로에 있는 중국의 군사력과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미국은 냉전 이후 유럽에서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터키 등과 핵 공유를 하면서 소련과 러시아에 대해 이러한 효과를 충분히 거뒀다. 이들 나라는 준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중거리 핵 배치에 핵 공유의 상황까지 벌어지면 북한은 물론 중국도 한국을 압박하고 겁박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동북아 국제정치의 세력 균형점이 바뀔 수밖에 없다.

중국은 과거 2017년 주한미군이 경북 성주의 롯데골프장 부지에 북한 미사일 방어용 종말고고도지역방어(THAAD·사드)를 배치하자 한국 기업인 롯데를 괴롭혀 중국 사업에서 철수하게 했다. 정치 문제를 경제 문제로 해결하려 시도하면서 중국의 민낯을 한국인에게 각인했다. 하지만 일본이 이지스 어쇼어의 배치를 추진하자 중국은 조용히 대응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과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중국이 보복무기로 활용해온 관광객 송출 제한도 한국과 대만에만 적용했을 뿐 일본에 대해선 쓰지 않고 있다. 쓰지 못한다는 말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중국이 이지스 어쇼어에 대항하려면 일본이 아닌 미국을 직접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이 INF 폐기를 계기로 한반도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중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도 이전과 같을 수가 없다. 동아시아 안보와 국제정치의 지형도는 대대적으로 바뀔 것인가.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497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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