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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제약사가 K바이오 구원투수 될까] 바이오 벤처 투자 늘리고 외부와 협력 강화 

 

연준,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미·중 무역전쟁, 선진국 경기 둔화 등 악재 수두룩

국내 대형 제약사가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허가 취소, 신라젠의 ‘펙사벡’ 임상 중단 등 악재로 기술 신뢰 위기에 휩싸인 ‘K-바이오’의 구원투수가 될까. 바이오의약품을 새로운 성장 돌파구로 점찍은 국내 전통 제약사가 국내 바이오 벤처에 투자 후 바이오 신약을 공동 개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늘리고 있다. 유한양행·GC녹십자 등 국내 대형 제약사는 바이오 벤처 인수합병(M&A) 투자는 물론 바이오 신약 공동 연구 진행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발표한 ‘세계 바이오의약품 산업 동향 및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형 제약사의 M&A 규모는 2조4460억원에 달했다. 바이오 벤처 대상 M&A 투자 규모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33.6%씩 증가하고 있다. 성동원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대형 제약사의 M&A는 연구개발(R&D) 효율성을 높이고, 바이오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면서 “특히 바이오 벤처에 투자한 후 오픈 이노베이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 있는 바이오 벤처에 투자해 공동 개발


이른바 개방형 혁신이라고 불리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내부의 R&D 활동을 중시하면서도 내·외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혁신 방안 찾는 것을 뜻한다. 국내 대형 제약사는 신약 개발 성공과 제품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높은 R&D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데 따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바이오 벤처에 투자를 진행해 공동 개발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 1위 제약사 유한양행이 바이오 벤처 투자와 오픈 이노베이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한양행은 바이오 벤처 투자 이후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으로 지난 1월과 7월 각각 글로벌 제약사 길리어드와 베링거인겔하임에 비알콜성 지방간염(NASH) 바이오의약품 기술수출을 이뤘다. 지난해 1조4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에 성공한 비소세포 폐암치료제 ‘레이저티닙’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결과물이었다. 지난 7월엔 국내 연구소 기업 아임뉴런 바이오사이언스에 60억원 규모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 투자를 단행했다. 국내 제약 업계 2위 GC녹십자는 기업 수를 기준으로 국내 대형 제약사 중 가장 많은 11개 바이오 벤처에 투자, 오픈 이노베이션과 같은 기술 제휴를 진행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2015년 얀센에 기술수출한 비만·당뇨치료제(HM12525A)가 물거품이 됐지만 바이오 벤처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설립 초기 바이오 벤처에, 종근당은 해외 바이오 벤처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소 제약사 중에선 부광약품이 바이오 벤처 투자와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광약품은 이미 콜루시드, 오르카파마, LSKN, 아이진 등 바이오 벤처에서 투자한 후 자금 회수를 이뤘고, OCI와 함께 항암제 개발 플랫폼 보유 기업 다이나세라퓨틱스 등 다양한 신약 개발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부광약품은 올해 세계 유수 연구기관, 바이오 벤처와 글로벌 협력을 통해 바이오의약품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업계에선 전통 제약사들이 바이오 벤처를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이유를 수익 다각화에서 찾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이 퇴행성 및 난치성 질환 치료에 뛰어난 안정성과 치료 효과를 보이면서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 시장 비중이 꾸준히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이밸류에이트파마(EvaluatePharma)는 2010년 18%였던 바이오의약품 비중이 지난해 28%로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4년에는 32%로 커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존 제약사가 바이오의약품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필수 코스로 떠올랐다.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의 위험 요인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외부 기업이나 대학이 개발한 치료물질을 도입해 신약 후보군을 늘리는 전략으로, 시간과 비용을 줄이면서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은 높일 수 있는 수단이다. 딜로이트는 오픈 이노베이션에서 신약 개발 성공률이 기존 폐쇄형 모델보다 약 3배 높다고 분석했다.

해외에선 이미 화이자(Pfizer)나 로슈(Roche)와 같은 글로벌 주요 제약사들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한 전담 투자 조직을 구성, 바이오 벤처 M&A 규모를 빠르게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 M&A 거래 건수는 1438건으로 2017년 대비 23% 증가했다.

국내 제약사 사이에선 오픈 이노베이션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회사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일회성 거래가 아닌 꾸준한 지분 투자로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은 물론, 상용화 가치가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한미약품이 설립한 창업투자사 한미벤처스가 대표적이다. 실제 한미약품은 한미벤처스를 통해 유망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신약 개발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펼치고 있다.

부광약품이 지난 6월 이스라엘 바이오 벤처 뉴클레익스(Nucleix)와 체결한 100만 달러(약 12억원) 규모 투자 계약 역시 OCI와 지난해 7월 설립한 합작투자사 비앤바이오가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광동제약은 지난 5월 자본금 200억원을 출자해 케이디인베스트먼트 설립, 본격적인 바이오 벤처 발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광동제약은 케이디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유망한 바이오 벤처 기업을 발굴하고, 바이오의약품 부문 경쟁력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바이오의약품으로 사업 확장하는 필수 코스

이런 국내 대형 제약사의 바이오 벤처 투자 확대가 위축된 K-바이오에 활력소가 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제약·바이오 벤처의 경우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신약 개발까지 10년 넘는 기간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대형 제약사의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 바이오 벤처 관계자는 “최근 코오롱생명과학의 허가 취소, 에이치엘비의 임상 실패 등으로 바이오 벤처 투자심리가 위축됐지만 대형 제약사의 투자는 여전해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 업계는 최근 불거진 K-바이오 위기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바이오 벤처에만 쏠린 기대감을 기존 제약사로 분산시킬 수 있고,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의 협력관계 강화로 안정적 수익모델을 구축할 수 있어서다. 임두빈 삼정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경쟁력 있는 바이오 벤처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면서 “그동안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변방에 있던 국내 제약사의 기술력 확보와 K-바이오 외형 확장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498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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