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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험난한 가을 맞나] 한일 갈등, 미중 분쟁, 엔고, 소비세 인상… 

 

일본 수출·내수 동반 하락할 가능성… 미일 무역협상 아베 책임될 수도

▎나루히토 일왕 내외가 8월 15일 도쿄도 지요다구 닛폰부도칸에서 열린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 아베 신조 총리의 추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8월 중순이 지나면서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올 가을은 험악한 계절이 될 전망이다.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말고도 아베를 짓누르는 현안은 많다. 정치와 외교, 경제 모두 난제다. 미중 경제전쟁과 중국의 경기 둔화. 세계경제의 침체 등 해외 요인과 함께 오는 10월로 예정된 아베 정부의 소비세 인상이 그것이다. 아베 정권은 현행 8%인 소비세를 10%로 올릴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초만 해도 고용과 소득 개선이 이어지며 내수 중심으로 경기 회복이 이뤄지고 성장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출과 내수가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0월에 소비세 8%→10%로 인상 예정


▎지난 2014년 3월 31일 도쿄의 할인점 ‘아에온(Aeon)’ 매장에 소비세 인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었다.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 미중 무역전쟁이다.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일본 경제는 유탄을 맞았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환율이 요동치면서 엔화 가치가 상승한 것이 가장 큰 부담이다. 엔화가 비싸지면 일본 수출품의 원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기업의 이익이 감소될 수밖에 없다. 수출이 줄면 아베 정권이 2013년부터 공들여온 아베노믹스가 흔들리게 된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브렉시트로 불안정성이 가중되고 있는 유럽 시장도 문제다.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 과거 약한 엔화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이었다. 아베 총리가 집권한 2012년 말 이후 일본 경제는 낮은 엔화를 바탕으로 경제성장률을 크게 회복했다. 2013년엔 2.0%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이도 옛말이 되고 있다. 아베노믹스 이후 한때 달러당 125엔대까지 떨어졌던 엔화값은 최근 달러당 105엔대를 오르내릴 정도로 강세다. 이에 따라 일본 경제의 성장세도 주춤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5월 21일 올해 일본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0.7%로 하향 조정했다. 3월 0.8%로 예측한 데서 0.1%포인트를 낮췄다. 중국 경제의 감속과 일본의 수출과 생산의 감소 등을 반영한 결과다. 전 세계의 성장률도 무역 증가세가 급속히 둔화하면서 3월보다 0.1%포인트 줄어든 3.2%로 전망됐다. 일본이 성장률이 연속 0%대에 그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베노믹스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엔고로 일본 경제 타격 받아


미중 무역전쟁은 일본 경제를 시름에 빠지게 한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앞서 8월 1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부터 3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발동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물론 일본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마찰 제4탄이다. 트럼프는 7월 30~3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12차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별다른 양보 없이 버티자 기존에 부과한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더해 3000억 달러 규모의 상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무역협상 재개 이전에 경고했던 25%보다는 낮다. 하지만 트럼프는 무역협상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할 경우 25%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고 중국에 경고했다. 12차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은 지난 6월 29일 일본에서 개최된 G20(주요 20개국) 회의장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협상 재개에 합의하면서 열렸다. 그 뒤 8월 13일 트럼프는 3000억 달러의 60% 정도에 해당하는 소비자 가전 등에 대해서 추가 부과를 12월 15일까지 연기할 방침을 밝혔다. 미국 소비자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중국은 8월 15일 이에 대해 보복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에서 양국은 4차례 강펀치를 주고받았다. 9월부터 중국산 수입품에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무역마찰 제4탄에 해당한다.

4탄까지 오기에는 불과 1년1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AP통신과 CNN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과 중국은 2018년 7월과 8월 이후 각각 상대국가에서 들여온 수입품 340억 달러와 160억 달러 등 500억 달러에 25%의 추가관세를 상호 부과하고 있다.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다음날부터 중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한 결과다. 7월에 추가 관세가 부과된 중국 수출품에는 산업용 로봇과 반도체가, 미국 수출품에는 콩과 쇠고기가 포함됐다. 8월부터 추가 관세를 물게 된 중국 수출품은 광섬유와 화학제품 등이, 미국 수출품에는 석탄 의료장비 등이 들어있다.

9월엔 미국이 2000억 달러 중국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때리자 중국은 다음날 미국 수입품 600억 달러에 5%~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상품에는 가전제품과 과일이, 미국 상품에는 액화천연가스, 식품 등이 포함됐다. 미국의 대중 수입 규모는 5500억 달러를 넘지만 중국의 대미 수입은 1100억 달러 정도이기 때문에 중국이 같은 액수의 상품에 보복관세를 물릴 수 없기에 생긴 비대칭 조치다.

올해에는 5월 초 11차 고위급 협상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자 트럼프는 5월 10일 2000억 달러의 중국 상품에 대해 관세율을 25%로 올렸다. 제3탄에 포함됐던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30%로 인상한 것이다. 중국은 사흘 뒤 600억 달러의 미국 상품에 대한 관세율을 10%~25%로 인상했다. 역시 제3탄에 포함됐던 미국 제품이 대상이다.

중국은 미국 수입품의 관세처리 절차나 무역금융 면허 발부 과정에서 시간을 질질 끄는 방식으로 미국에 보복을 가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중국의 비무역장벽이다. 트럼프가 9월부터 3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의 제재 관세를 물리기로 한 것은 미중 무역전쟁 제4탄에 해당한다.

미국의 대중 공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8월 5일에는 미국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했다. 미국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날 “중국은 최근 상당한 외환보유고액을 유지하면서도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조치를 취했다”라고 지적하고 “이런 행위로 만들어진 중국의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제거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8월 5일 미국 달러화 대비 위안화의 가치가 11년 만에 7위안대로 떨어졌다. 7위안은 시장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마지노선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이를 두고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수입품에 무거운 관세를 부과해왔는데,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관세를 상쇄할 수 있는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국이 환율을 조작함으로써 자국 상품을 비교적 싼값에 외국에 팔 수 있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미중 무역전쟁도 일본에 불리하게 작용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함으로써 미중 무역전쟁은 관세를 넘어 환율 분야까지 확전 일로다. 미국이 특정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은 국제무역시장에서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를 조사해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환율보고서를 발표해왔다. 올해 4월 보고서에서 중국은 ‘환율관찰대상국’이었으나 이번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다. 환율 조작국 지정 기준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연간 대미 무역 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인 경우, 둘째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를 초과하는 경우, 셋째 정부가 외환을 순매수하는 외환시장의 개입 규모가 GDP의 2%를 초과하거나 6개월 이상 순매수할 경우의 3가지다. 3가지에 모두 해당하면 환율조작국으로, 2가지만 해당하면 관찰대상국으로 각각 지정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정부는 1년의 시간을 주고 환율 시정을 촉구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미국 기업의 해당국 투자 제한과 해당국 기업의 미국 조달시장 진입 금지 등 조치를 취한다. IMF를 통한 압박을 포함한 제재 조치도 취할 수 있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것은 중국에는 물론 일본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갈 데 없는 국제자금이 비교적 안정적인 엔화로 몰리면서 엔화 가치가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일본인의 해외 여행이나 유학, 외국 상품 수입에는 유리하지만 수출에는 불리하다.

일본 경제에 영향을 끼칠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미중 무역 전쟁 와중에 일본이 미국과 추진하고 있는 무역협상이다. 아베 총리를 누르는 주요 경제 현안이다. 사실상 자유무역협정(FTA)에 해당하는 미일 무역협상은 9월 합의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새로운 미일 무역협정을 둘러싸고 8월 1~2일 워싱턴에서 각료급 회의를 했으며 8월 안에 재협의를 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경제재생상은 8월 2일 로버트 라이트 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담하고 “미일 양측에 좋은 성과를 조기에 실현하기 위한 논의를 상당히 진전시켰다”며 “정상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요미우리는 양국이 9월 합의를 목표로 이달에 실무자 레벨에 이어 각료급 협의를 잇따라 열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모테기 장관의 말처럼 미일 무역협상이 쉬울지는 가봐야 안다. 미일 협의의 핵심이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농산물과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주요 분야 중에서 양국 간 의견 차이가 가장 심한 분야다. 양국 간 경쟁력 차이가 가장 큰 분야가 농업 분야다. 미국은 쇠고기 등의 수출 확대를 노리고 협상 과정에서 일본을 압박해 최대한 양보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일본은 농가 보호를 위해 쇠고기 시장 개방을 최대한 늦추거나 줄인다는 방침이다. 이는 정치적인 계산이 걸려 있다. 농촌 지역 유권자의 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그동안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험난한 교섭을 계속해왔다. 시작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임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의 통합을 목표로 추진하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이탈한다고 발표했다. TPP는 공산품·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고 자유화하는 것은 물론 정부조달·지적재산권·노동규제·금융·의료 등 모든 부문에서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TPP에서 이탈한 것은 물론 2018년 3월 중국은 물론 유럽과 일본에 대해서까지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제재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그해 4월 미국과 일본은 정상회담에서 통상 문제를 협의하고 각료급 협의체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5월 들어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한 제재관세 부과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주요 대미 수출품이다.

그러자 일본의 모테기 경제재생상은 8월 미국 워싱턴에서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와 미일 각료급협의(FFR)을 열었다. 9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양국이 무역교섭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용어를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했다. FTA 대신 물품무역협정(TAG: Trade Agreement on goods)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했다. 아베 총리는 그해 11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물품’이라는 단어를 넣은 TAG라는 축약어에 “농산물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우리의 협상 자세가 담겨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측에선 TAG 대신 미일 무역협정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만큼 미일 무역교섭에서 일본 측이 농산물과 관련해 초조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미일 협상에서 농산물·자동차 분야 의견차 커

USTR은 2018년 10월 미일 무역협정과 관련해 협상 개시를 의회에 통보했다. 공식적인 미일 무역협정의 시작이다. 협상은 올해 4월 미국의 라이트 하이저 USTR 대표와 일본의 모테기 경제재생상이 첫 협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두 사람은 8월까지 각료급 협의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8월 24~26일 프랑스 서남부 해변휴양도시인 비아리츠에서 G7(주요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일본은 미일 정상회담을 열고 미일 무역협정에 대한 정상급 논의를 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9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어떤 경우에나 아베 총리로서는 큰 정치적 부담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498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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