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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딜 브렉시트’ 대응 마련 나선 유럽] 세관 직원 늘리고, 검역소 짓고 

 

영국, 10월 31일 노딜 브렉시트 위기… 한국 수출입은 큰 혼란 없을 듯

아무런 합의 없이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럽 각국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교통, 주민 이동, 보건시스템, 에너지, 식품, 식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같은 나라로 대우해왔다. 하지만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를 감행하면 사회와 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불편이 불가피해 진다. 이런 불편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영국과 EU는 협상을 거쳐 2018년 11월 14일 탈퇴 합의안을 마련했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와 27개 EU 회원국이 만든 ‘소프트 브렉시트’ 합의안이다. 하지만 영국 하원은 이에 대한 비준안을 세 차례나 부결했다. 2019년 1월 15일 원합의안을 432대 202로 부결한 데 이어 2019년 3월 12일 수정안도 391대 242로 거부했다. 3월 29일에는 344대 286으로 세 번째로 부결했다.

알려진 합의안은 영국으로 이주한 EU 시민과 EU 지역에 살고 있는 영국인의 거주 권리, 국경, 분담금과 몇 가지 논쟁적인 문제에 대한 합의를 담고 있다. 영국 하원은 정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보수당 소속 테리사 메이 총리 시절 만든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재협상을 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EU 측은 메이 총리 시절의 합의안이 최종적인 것으로 재협상을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영국 하원과 EU 사이에서 길을 잃은 메이 총리는 결국 사임을 발표하고 7월 23일 물러났다.

길 잃은 메이 총리 결국 사임

다음날 총리에 오른 보리스 존슨은 브렉시트 재협상을 계속 추진하겠지만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하원이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법안 통과를 추진하자 의회를 9월 10일부터 10월 14일까지 정회했다. 이 조치는 스코틀랜드에서 휴가 중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가를 받아 즉시 시행됐다.

정회 조치는 존슨의 정치적 계산이 담겨있다. 영국은 유럽연합 헌장 50조에 따라 이탈 합의가 ▶의회에서 비준을 받지 못하거나 ▶협상을 연장하지 못하거나 ▶이탈 통보를 철회하지 않으면 10월 31일 ‘노딜’ 상황에서 EU를 떠나게 된다. 10월 14일까지 의회가 정회하면 ‘노딜 브렉시트 반대법’을 위한 토론을 할 수 없다. 결국 의회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10월 31일 영국은 노딜 브렉시트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EU의 법률과 기타 합의 사항은 영국과 EU 사이에서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물품 교역은 세계무역기구(WHO)의 최혜국 대우 수준에서 계속되지만 영국이 자랑하는 금융·법률·해양을 비롯한 서비스 분야는 그렇지 않다. 새로운 합의와 협정이 필요하게 된다. 영국과 비EU 국가와의 교역도 새로운 협정이 필요하게 된다.

영국은 이를 위해 다른 나라와 신규 교역협정을 추진해왔다. 영국은 한국과 8월 22일 한영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이날 영국 런던에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엘리자베스 트러스 영국 국제통상 장관이 협정문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양국은 한영 FTA를 기존 한EU FTA 수준으로 유지하게 된다. 영국이 10월 31일 노딜 브렉시트를 하더라도 한국과 영국 간 통상은 이전과 다름없는 조건으로 계속 유지된다. 한국은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를 하더라도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등 주요 수출품을 계속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영국과 FTA 체결


BBC 보도에 따르면 EU의 정책 집행기구인 유럽위원회(EC,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라고도 함)와 EU의 각 회원국들이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마련해왔다. EC의 경우 이미 지난 4월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항공 여행, 차량 운송, 금융 서비스 등 기본적인 업무는 이전과 변함없이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EU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적용하는 것으로 영국과 사전에 합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EU는 영국을 ‘제3자 국가’로 대우할 것이며, EU는 영국의 이탈 즉시 양측 사이의 국경에 EU의 규정과 관세를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아일랜드와 영국 간 육상 국경에는 어떠한 규정이나 관세가 적용될 것인지 언급하지 않았다.

영국과 유일하게 육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일랜드 공화국은 브렉시트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받을 나라로 예상된다. 아일랜드 섬은 북쪽의 영국령 아일랜드와 남쪽의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국경은 499㎞에 이른다.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머무는 동안 이 국경은 주민과 물자가 자유롭게 왔다갈 수 있는 단순 경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를 감행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가 국경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해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2018년에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는 EU에 머무는 것과 비교해 아일랜드의 경제성장을 7% 정도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됐다.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는 2019년 6월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2년 안에 아일랜드에서 5만5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장기적으로는 3만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탈에 대비한 준비를 해왔다. 노딜 브렉시트가 아일랜드 공화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공화국 의회는 올해 2월 노딜 브렉시트에도 연금과 다른 사회보장 보조금 지급과 국경을 지나는 철도와 버스 서비스를 계속해 국경을 지나는 국민이 지금과 똑같은 서비스를 누리게 하는 법률을 통과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공화국이 EU 회원국으로서 단일시장과 관세 동맹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합의 없이 여기에서 이탈한 영국과 이전처럼 국경의 자유로운 통과를 보장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국경 검사와 검역은 어떤 수준으로든 부활할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는 영국에 가까운 중동부 더블린과 중남부 로스래어의 항구 인프라를 확대할 계획을 마련했다. 영국에서 도착한 트럭과 살아있는 동물을 검사하거나 검역하는 시설이다. 이 일을 맡을 직원도 추가로 뽑을 예정이다.

프랑스, 국경 대책 마련에 분주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리암 폭스(Liam Fox) 영국 국제통상부 장관.
유럽에서 유일하게 섬나라 영국과 철도와 도로로 연결돼 있는 프랑스는 국경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프랑스와 영국은 150억 달러를 들여 1994년 완공한 채널터널(영불해협터널)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총길이 50.45㎞에 해저구간이 37.9㎞인 채널터널은 세계에서 해저 구간이 가장 길다. 영국의 포크스톤과 프랑스의 칼레 사이를 도버 해협의 지하를 지나는 3개의 터널을 통해 잇는다. 왕복 각 하나의 철도 터널과 예비용으로 이뤄졌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차로 이동하며 자동차는 기차에 실려 터널을 지나게 된다.

이 철도는 영국과 프랑스의 인적, 물적 이동성을 강화해준 반면 난민과 이주민의 이동로로 활용됐다. 프랑스에서 해협터널을 지나는 트럭이나 도버 해협을 지나는 선박 등에 몰래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칼레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2015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칼레항에서 가까운 칼레 동쪽 끝 지역을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임시 거주하면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를 ‘칼레 정글’이라고 부른다. 칼레 정글은 프랑스 정부가 인력을 투입해 텐트촌을 철거하고 저항하는 사람을 체포하면서 사라졌다. 프랑스가 영국과의 국경 경비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프랑스 정부는 2020년까지 700명의 세관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기로 결정하는 등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프랑스는 5000만 유로를 투입해 영국으로 향하는 여객선과 화물선을 담당할 추가 출입국 관리 직원과 세관원이 근무할 시설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국경 통과와 물품을 운반하는 트럭의 세관 통관이 이동 속도를 줄이지 않도록 정보기술(IT)을 동원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출입국 관리와 세관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신기술 교육도 진행 중이다.

만일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를 감행하면 프랑스는 국경을 지나는 식품, 식물, 살아있는 동물 등을 검사하고 검역하는 검사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EC가 4월 11일 새로운 검사와 검역에 대비하기 위해 7군데의 검사소를 새로 설치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EU 회원국끼리는 이런 검사와 검역을 하지 않아왔지만 영국이 별도의 합의 없이 노딜 브렉시트로 EU를 이탈하면 당연히 이런 검사와 검역이 부활하게 된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하더라도 이를 면제하는 합의를 하고 떠난다면 이런 검사 시설은 필요 없을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하더라도 교역이 지금처럼 원활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프랑스 의회는 이미 지난 2월 노딜 브렉시트가 벌어질 경우 행정부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비상 포고령을 발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인력과 물품의 국경 통과는 물론 프랑스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영국 국적자의 권리에 대한 정책도 행정부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독일, 이미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


EU의 맹주 격인 독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내각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영국과의 교역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관리할 관세청 요원 900명을 추가로 채용해 훈련 중이다. 사회보장, 세금,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한 새로운 법률의 제정을 정당 간에 이미 공식적으로 합의한 상황이다. 독일은 영불해협 양쪽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브렉시트 대비 정책에서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7월 31일 ‘브렉시트 거주·이전 법률’을 통과하고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즉시 적용할 계획이다.

이 법은 독일에 거주 중인 영국 국민에게 거주하고 취업할 수 있는 권리를 노딜 브렉시크 이후 9개월간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영국인은 이 기간에 새로운 거주 허가를 신청할 수 없도록 했다.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과 독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전망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독일은 이미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1%에 이르면서 경기 침체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 EU 경제를 이끈 기관차이자 돈주머니 역할을 해온 독일 경제가 휘청거릴 경우 EU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를 감행해 EU와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할 경우 가뜩이나 독일 경제를 덮고 있는 검은 구름을 더욱 두텁게 할 수 있다.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보는 벨기에도 노딜 브렉시트 대책 마련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국 동남부의 도버항 등은 벨기에의 항구도시인 오스텐드, 제브뤼허 등으로 가는 정기 여객선을 운영한다.

특히 유명한 관광도시인 브뤼허의 북쪽에 자리 잡은 제브뤼허는 항구 이용자의 45%가 영국인이다. 벨기에는 브렉시트에 대비해 모두 368명의 세관원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인데 8월까지 이미 268명을 신규 채용했다. 벨기에 연방식품안전청(AFSCA)은 노딜 브렉시트 상황에서 영국에서 오는 식품을 검사할 직원 300명을 뽑을 예정이다. 벨기에는 자국에 거주하는 영국인에 대해 2020년까지 거주와 세금 관련 권리를 인정할 예정이다.

벨기에의 이웃 나라로 교역국가인 네덜란드도 대비책 마련이 분주하다. 2018년 네덜란드 정부는 900명 이상의 세관원과 검역을 담당할 145명의 수의사를 추가로 채용할 방침이다. 이들은 네덜란드에 있는 유럽 최대 항구인 로테르담에서 영국에서 온 물품의 검사와 살아있는 동물의 검역을 맡게 된다. 네덜란드 외교부는 이미 노딜 브렉시트가 혼란과 문제를 수반할 것이라는 내용의 노딜 브렉시트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영국에서 네덜란드에 입국하는 사람들을 담당하기 위해 321명의 입국 심사원과 14명의 국경경비 직원을 배치했다.

네덜란드의 관문인 스키폴 공항도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100명의 세관직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공항 측은 노딜 브렉시트 이후에는 영국 여권 소지자는 혹독한 검사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항은 매년 영국인 1050만이 드나들고 있다. 영국의 이탈 이전에 네덜란드에 살아온 영국 국적자와 가족들은 그 뒤에도 임시 거주 허가를 통해 15개월 동안은 계속 거주하고, 공부하며 일할 권리를 보장받는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4만5000명의 영국인과 가족이 거주하며 이 가운데 2만 명 정도는 네덜란드에서 직업을 갖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후폭풍 예고

특이한 점은 학비다. EU 회원국들은 같은 회원국가의 학생들에게 자국민과 동일한 싼 학비를 적용해왔다. 하지만 비EU 국가 학생들에겐 비싼 추가 등록금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 당국은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 이전에 이미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는 영국 학생은 계속 싼 학비를 적용받지만, 그 뒤에 입학하는 학생은 비EU 학생에게 적용하는 비싼 학비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영국 학생이 굳이 비싼 학비까지 내고 네덜란드에 유학 가는 경우는 드물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양국 간 인적 교류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럽 대륙에서 영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국가가 스페인이다. 기후가 온화한 스페인에는 30만 명 이상의 영국인이 살고 있다. 마요르카 등 지중해의 스페인 섬에 거주하는 영국인 은퇴자도 상당하다. 이비자 섬은 영국인의 휴가지로 유명하다. 스페인은 공항과 항구에서 영국인과 영국에서 오른 물품을 조사하고 검사할 인력을 추가로 860명 확보할 예정이다. 스페인은 자국에 거주하는 영국인이 노딜 브렉시트 이후에도 그대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3월 1일 통과했다. 다만 스페인 거주 영국인들은 2010년 12월 31일 이전까지 ‘외국인 신분증’을 신청해야 한다. 영국인이 스페인에서 쓰는 돈을 놓칠 수는 없다는 것이 스페인의 입장으로 보인다. 노딜 브렉시트가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00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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