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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환율 상승기, 기업의 고민] 달러만? 결제 통화 다변화 필수 

 

환위험 분산 차원에서 바람직한 대응… 결제 통화 수시로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환율 상승기가 이어지며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나들 때마다 달러화 결제 비중이 큰 기업들은 난관에 봉착한다. 달러화를 결제하는 데 평소보다 더 많은 자금이 지출되다 보니 자금 운용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평소 환율 상승에 대비해 환헤지를 적극적으로 해왔던 기업들도 더 많이 헤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인데, 헤지를 전혀 하지 않았던 기업들의 후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미 시스템을 갖추고 환헤지 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회사는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환헤지 비율이 증가하도록 구조를 설정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경영진 입장에서는 추가 헤지 여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중국과의 거래에서는 달러화 결제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결제 통화 일부를 위안화로 대체할 것인지의 고민도 커진다.

중국과 거래 국내 기업의 달러 결제 비중 너무 높아


그렇다면 기업이 달러화에 집중된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는 것이 좋을까? 미국 달러화의 가치에 고정된 통화가 아니라면, 달러화에 집중된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는 것은 환위험 관리 차원에서 장려된다. 홍콩 달러화처럼 달러화 가치를 그대로 추종하는 통화의 경우에는 달러화에서 결제 통화를 변경해 봤자 환위험이 분산되지 않는다. 사실상 달러화에만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달러화에 대한 고정환율제 적용 통화가 아니라면 환위험 분산 효과가 생긴다.

중국에 소재하는 기업들이 국제 거래에서 여전히 위안화보다는 달러화를 결제 통화로 선호하다 보니, 한국의 중국 수출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은 2018년 4분기 기준으로 6%에 불과한 반면, 달러화 비중은 90%에 달했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달러화 결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같은 기간에 위안화 비중은 4%에 불과했고 달러화 비중은 91%에 달했다. 중국과 거래하는 기업이 결제 통화가 달러화로 일원화되어 있다면, 일부는 위안화로 대체하는 것이 환위험 관리 차원에서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달러화가 하락 전환하더라도 이미 다변화시킨 결제 통화를 다시 달러화로 일원화시킬 필요는 없다. 통화가치 변화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율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적시에 결제 통화를 변경할 수 있겠지만, 환율을 매번 예측하면서 결제 통화를 수시로 변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거래 상대방도 수시로 결제 통화를 변경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달러화로 결제해야 하는 기업은 환율이 높아진 이 시점에라도 헤지를 시작하거나, 헤지 비율을 더욱 높이는 것이 좋을까. 환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필히 고민하게 되는 문제이지만, 그러한 결정에는 위험이 수반된다. 환율의 추가 상승을 막기 위해 헤지를 결정했으나, 이후 환율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환율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나서야 환헤지를 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환율을 예측하고, 눈부신 헤지 효과를 거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망과 전략은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 불확실한 전망을 전략으로 연계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무리 유능한 시장 전문가라도 전망치는 물론이고 방향성 예측도 절반은 틀린다고 봐야 한다.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IB)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전망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 손익의 변동성을 줄이는 차원에서 헤지를 접근해야 한다. 환율이 이미 한쪽 방향으로 상당 기간 움직인 이후에야 헤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시장 상황에 무관하게 적절한 로직을 세우고 꾸준히 헤지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적절한 대응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헤지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한국은행에서 조회되는 선물환 잔액과 관세청에서 조회되는 수출∙수입 금액을 토대로 추산하면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우리 나라 기업들의 헤지비율이 수출에 대해서는 14%, 수입에 대해서는 17%가 산출된다. 그런데 추세를 보면 수입에 대한 헤지비율은 20% 안팎(2005년 이후 분기별 13~22%)에 형성된 반면, 수출에 대한 헤지비율은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2008년 1분기에는 헤지비율이 52%에 달했으나, 2018년 평균은 14%에 그쳤다.

환율 전망과 헤지 전략은 별개

이는 조선업의 업황과 무관하지 않다. 2008년까지 호황을 구가했던 조선업은 선박 수주시 대규모 외화가 일시에 유입되는 특성 때문에, 환율 하락 위험에 대비한 헤지비율이 상당히 높은 산업이다. 그런데, 조선업 업황이 과거만 못하다 보니 한국의 수출 총액에서 조선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했다. 결국 조선업의 매출이 감소한 영향으로 한국 기업 전체의 수출 헤지 비율이 감소한 것이다.

다만, 자료를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집계 대상이 되는 개별 수치가 비교적 좁은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면, 평균치가 그 집단의 수준을 잘 대변하겠지만 지나치게 넓은 범위에 분포되어 편차가 크다면 정보로서 평균치의 가치는 다소 떨어질 수 있다. 기업들의 헤지 사례가 그렇다. 외화 포지션을 100% 헤지하는 기업도 있지만 전혀 헤지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 또 수출 포지션과 수입 포지션의 헤지 비율은 차이가 클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들의 평균적인 헤지 비율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기업들이 헤지를 할 때,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한국의 내외 금리차다. 기업들이 헤지할 때 기본적으로 널리 활용하는 선물환은 특정 미래 시점의 결제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현재 결제할 때 적용될 환율과는 다른 환율이 적용된다. 결제 시점이 현재가 아니라면 시간이 개입되고 해당 시간 동안 그에 응당하는 대가인 금리가 요구되는데, 통화별로 적용되는 금리가 다르므로 현재 시점에 약정하는 미래의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미국의 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경우에는 미래 시점에 결제하는 선물환율은 현재 환율보다 낮게 형성되기 쉽다. 가령 1년 후 달러화에 가산되는 이자보다 원화에 가산되는 이자가 더 적으면 1년 후 한국 원화 원금과 이자의 합계 금액을 달러화 원금과 이자의 합계 금액으로 나눴을 때, 현재 환율보다 낮아지게 된다. 반대의 경우 선물환율은 현재 환율보다 높아지기 쉽다. 다만, 실제의 선물환율은 외화자금시장의 수급에 따라 가격 형성에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상당 기간 동안 미국의 금리가 한국의 금리보다 높았기 때문에 미래 시점에 대한 선물환율이 현재 환율보다 낮게 형성돼 있다. 수출기업들은 과거 한국 금리가 미국 금리보다 높았던 시기보다 선물환을 활용하기에 부담스러운 반면 수입기업들은 환헤지가 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한국의 내외 금리차의 변화는 지난 몇년간 수출기업의 헤지비율이 완만하게 감소한 배경이다.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01호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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