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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이 기후위기 부추기나] 인기몰이 SUV, 세단보다 CO₂ 11% 더 배출 

 

이대로면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행 어려워 … “SUV 판매 마케팅 중단해야” 지적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기후 파괴자가 타고 있다'는 뜻의 현수막을 들고 SUV 차량이 수송선에서 내리지 못하게 막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그린피스
인류 최고 발명품으로 이동의 편의를 담당해 온 자동차가 21세기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최대 적(敵)이 됐다. 온실가스에 따른 지구 온난화가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제자리걸음 하고 있어서다. 특히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 증가에 따라 최근 증가세로 돌아섰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지구 기온 상승 1.5도 제한 목표 실현에도 자동차 산업이 걸림돌로 떠올랐다.

온실가스 감축 실패한 자동차 산업


자동차는 연간 8600만대씩 전 세계 곳곳으로 팔리며 생산과 운용, 폐기 전 과정에서 매년 엄청난 CO₂를 뿜어내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낸 ‘무너지는 기후: 자동차 산업이 불러온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 CO₂ 48억톤(t)을 방출했다. 유럽연합(EU)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41억t)을 넘어서는 양이다. 영국 석유회사 BP가 지난해 전 세계 CO₂ 배출량이 336억8500만t이라고 밝힌 것을 고려하면 전체의 14.2%가 자동차 산업에서 나왔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기후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제 사회는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을 체결 CO₂ 등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합의했다. 이번 세기말(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도(°C)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고 1.5°C 선을 유지하게 최대한 노력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에 전력생산·농업·건설 등 대부분 산업군은 꾸준한 감축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은 2015년 이후로도 정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 산업이 배출하는 CO₂ 양은 최근 들어 오히려 늘고 있다. SUV의 등장으로 연비 개선이 멈춰 섰기 때문이다. 앞서 완성차 업체는 연비를 개선을 통해 CO₂ 배출량 저감을 이루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EU에 등록된 28개국 승용 자동차 신차의 ㎞당 평균 CO₂ 배출량은 2015년 이후 감소폭이 급격히 둔화, 지난 2년간 오히려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EU에 등록된 승용 자동차 신차의 CO₂ 배출량은 120.4g/㎞로 전년과 비교해 2g/㎞ 증가했다.

미국 시장에서 신규 판매된 자동차의 평균 CO₂ 배출량은 EU보다 심각했다. 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기업평균연비(CAFE) 기준 충족 여부 조사를 위해 집계한 공식 연비 자료에 따르면 신차 1대당 평균 CO₂ 배출량은 이미 2013년부터 연평균 감소폭이 ㎞당 1g 수준으로 제자리걸음 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미국 시장은 SUV 및 픽업트럭 인기가 일찍 시작, 지난해 차량 1대당 CO₂ 배출량은 ㎞당 216g으로 2013년부터 정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SUV 인기가 자동차 산업 CO₂ 배출량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와 시장분석업체 자토 다이내믹스(JATO Dynamics)는 2016년 이후 소비자 선호가 더 무겁고 연비가 낮은 SUV 차량으로 바뀌면서, CO2 배출량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실제 유럽환경청(EEA) 연비 및 CO₂ 배출량 조사에 따르면 SUV의 평균 CO₂ 배출량은 133g/㎞로 같은 기간 등록된 전체 차량의 평균 CO₂ 배출량 120g/㎞보다 13g(10.9%)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SUV 판매 확대에 대당 CO₂ 배출량 증가

SUV가 일반 승용차 대비 13g/㎞의 CO₂를 더 배출한다는 사실(EU 기준)은 해당 차량 수명주기 동안 CO₂ 배출량도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1년 평균 주행거리가 1만2000㎞임을 감안하면 SUV는 일반 승용차보다 매해 156㎏ 더 많은 CO₂를 배출한다. 교체 주기 10년을 고려하면 1560㎏ 많은 CO₂가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SUV는 중량이 무겁고 공기역학적 측면에서 불리해 CO₂가 동급 세단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완성차 업체가 CO₂ 배출량을 등한시한 채 SUV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완성차 업체는 세단이 힘을 잃은 시장에 SUV를 내놓으며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 현대차 엑센트, 기아차 프라이드, 한국GM 아베오가 이끌었던 소형차 시장이 대표적이다. 소형 세단이었던 엑센트, 프라이드, 아베오는 월평균 판매량이 1000대에도 못 미쳤다. 여기에 기아차는 소형 SUV 스토닉을 출시하며 소형차 구매 수요를 SUV 신차로 끌어들인 바 있다.

기아차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SUV를 세단과 대등한 형태로 변화, 초소형부터 대형까지 SUV로 차급을 확장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침체하는 가운데 똑같은 차종을 세대만 달리하며 판매 상승을 이뤄내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면서 “세단 차체를 SUV로 전환하면서 연비는 떨어졌지만, SUV라는 이름의 신차를 내놓는 게 완성차 업체가 침체된 시장을 살리는 쉽고 유용한 재료가 됐다”고 했다.

유럽자동차제조자협회(ACEA)가 발표한 신차 등록 통계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SUV 점유율은 8%(2008년)에서 32%(2018년)로 4배 증가했다. 미국은 SUV 판매 증가가 더 빠르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 판매된 차량 중 SUV 판매 비중은 사상 최대인 70%에 육박했다. SUV보다 적은 CO₂를 배출하는 세단 등 승용차는 2000년 이래 약 50% 점유율을 유지해오다 지난해 31%로 급감했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팔린 차량 2대 중 1대가 SUV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국 정부가 나서 자동차의 CO₂ 배출량 규제 및 친환경차 의무 판매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효과는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산업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동차 산업 입김에 밀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보다 확실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한국 정부는 저공해차의 최소 의무 판매량을 법적으로 할당해 CO₂ 배출량을 낮추는 ‘저공해차 보급 목표제’ 도입을 검토만 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에서 2020년 시행을 앞둔 ‘CO₂ 배출 목표 규제’가 그나마 CO₂ 배출량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꼽힌다. CO₂ 배출 목표 규제는 2020년부터 신규 등록 차량의 CO₂ 배출량을 ㎞당 95g으로 맞춰 출시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구 기온의 평균 상승폭을 1.5°C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25년까지 순수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를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린피스 벨기에 사무소 의뢰로 독일 항공우주센터(DLR)가 수행한 자동차 부문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지구 기온의 평균 상승폭을 1.5°C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25년까지 순수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를 중단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완전 중단에도 지구 기온 상승 억제 가능성은 66%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DLR은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도 2028년까지 중단해야 온도 상승 1.5도 억제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 작고, 가벼운 차 판매 늘려야”

한편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체들이 CO₂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는 “지난해 10월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할 정도로 기후 위기는 심각한 상태”라면서 “완성차 업체는 환경규제에 반대하는 로비나 SUV 차량 구매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보다 작고, 가볍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차량의 개발과 판매 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01호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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