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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드론 vs 미사일 정치 전쟁] 트럼프와 로하니는 왜 한 발짝 물러섰나 

 

대선 앞둔 트럼프, 경제난 이란 모두에게 부담… 군사적 조치 아닌 정치적·상징적 행동 선택

▎이란 혁명수비대가 1월 8일(현지시간) 새벽 미군이 주둔하는 이라크 군기지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진은 미사일 공격직후 이란 혁명수비대가 공개한 폭발 장면. / 사진:연합뉴스
2019년 말과 2020년 초입에 전 세계를 긴장에 몰아넣으며 숨 가쁘게 진행되던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일단 파국을 면하고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8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이 전날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공격한 것과 관련해 군사력 사용을 원치 않는다고 한 발짝 물러서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상자가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군사적 재보복 대신 즉각적인 대이란 추가 경제제재 방침을 밝혔다. 이로써 중동 지역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가 이날 이란에 강온 양면 메시지를 동시에 보냈다는 점이다. 이란과 새로운 핵 합의를 추진하겠으며 이를 받아들이면 이란에 위대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말을 했다. 트럼프는 이이란과 맺은 핵합의에서 2018년 5월 8일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앞서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트럼프는 이날 2013년이라고 말실수를 함) 7월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독일 6개국(P5+1)과 손잡고 이란과 핵합의에 동의한 바 있다. 이후 트럼프는 이란 핵사찰 범위를 이란 전역으로 확대하고, 탄도미사일도 규제하며, 2025년 10월 18일까지 대이란 경제제재를 모두 푼다는 규정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그 뒤 대이란 경제제재를 재개해 이란과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으며, 갈등은 갈수록 증폭됐다.

IS 퇴치에 협력하다가 미국 핵합의 탈퇴로 대립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갈등의 폭발점은 지난 1월 3일 이라크의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이 숨진 사건이다. 쿠드스군은 정규군과 더불어 이란이 운영하는 2개의 군대 중 하나인 혁명수비대 산하 조직이다. 중동 내에서 해외 정보 수집과 파병, 친이란 민병대 훈련 등을 주로 맡고 있다. 아랍어로 쿠드스, 이란어로 고드스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루살렘 수복을 노린다는 의미로 읽힌다. 쿠드스군은 이름대로 반미와 반이스라엘 해외 작전을 총괄한다. 그동안 시리아 정부군,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인 하마스, 예멘의 후티족 반군,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을 훈련하고 지원해왔다. 이 조직들은 하마스를 제외하고는 이슬람 시아파 조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란은 쿠드스군의 활동을 통해 이란에서 중동 시아파 지역을 연결해 지중해 지역까지 잇는 ‘시아파 초승달’ 벨트를 만들려고 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로는 적은 비용으로 차량을 공격할 수 있는 급조 폭발물(IED)을 이라크 민병대에 대량으로 공급해 미군을 괴롭혔다. IED는 이라크에서 미군 사망의 가장 큰 요인이 됐다.

이런 쿠드스군을 1997~98년 무렵부터 이끌어온 솔레이마니는 핵합의가 이뤄진 2015년부터 정보·군사 분야에서 미국에 협조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거점 정보를 제공하고 이라크에서 미군 및 이라크군과 함께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에 병력을 보냈다. 미국과 이란이 공동의 적인 IS 퇴치를 위해 협력한 것이다.

IS는 이슬람 수니파로만 이뤄진 극단주의 무장조직으로 시아파 국가인 이란에 적대적이다. 이들은 기독교도나 아지드교 등 중동 내 소수종파 신앙인, 서양인들과 함께 시아파 무슬림(이슬람 신자)도 무참히 살해해왔다. 아프가니스탄 다수 종파인 수니파(약 80%)의 파슈툰족이 주축인 탈레반도 자국 내 이슬람 소수 종파인 시아파(약 19%)를 따르는 서북부 하자라족을 탄압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IS와 탈레반에 관해서는 이란은 미국과 협력할 공간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2018년 미국이 핵합의에서 단독으로 탈퇴하고 대이란 경제제재를 재개하자 양국은 협력 대신 대립의 길을 걷게 됐다. 급기야 이란은 지난해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에서 카타이브 헤즈볼라를 비롯한 친이란 민병대를 동원해 미군 시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27일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공군기지에서 미국인 민간군사요원 1명이 사망하고 미군 여러 명이 부상하면서 사태가 악화됐다. 미군은 미국인 사망자가 나온 데 대한 보복으로 12월 29일 이라크 내 카타이브 헤즈볼라 기지를 공습하고 이 과정에서 민병대 29명이 숨졌다.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12월 31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을 에워싸고 시위와 방화를 했으며 일부는 담을 넘어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들의 미국 대사관 진입 시도 장면은 미국인에게 불쾌한 기억을 소환했다. 1979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대학생들이 미국대사관 담을 넘어 내부로 진입해 66명을 인질로 잡고 444일간 버틴 사건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결국 1월 3일 미국의 솔레이마니 공격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이란 갈등이 화근이 된 이란 핵합의는 공식명칭이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으로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이란 경제제재를 푼다는 내용이다. 트럼프가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경제제재를 복구하면서 한국의 이란산 석유 수입도 중지됐다. 트럼프는 이날 “이란이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합의를 통해 더욱 큰 위협이 됐다”며 전임자를 강력 비난하고 자신의 합의 파기가 정당함을 역설했다. 아울러 솔레이마니가 수많은 미군의 목숨을 빼앗은 인물이고 추가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공격한 조치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란에 대한 일련의 대응이 올해 11월로 예정된 대선에서 재선을 염두에 둔 조치임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정치·경제적으로 전쟁 치를 형편 안되는 이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에 대한 미사일 발사로 솔레이마니 사망에 대한 보복을 사실상 정리했다. 보복을 이렇게 간단히 마무리한 배경은 경제난으로 도저히 확전을 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핵합의가 가동해 일부 경제제재가 풀렸던 2017년 3.8%이던 경제성장률은 2018년 추정치가 -4.9%로 악화했으며 2019년 추정치는 -8.7%로 더욱 떨어졌다. 물가도 40% 정도 올랐다.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특히 의약품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이처럼 이란은 경제가 심하게 뒷걸음치는 상태에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국가 재정도 충분하지 못해 확전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비 마련조차 어려울 전망이다.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원유 매장량이 3위인 산유국인데다 중동에서 드물게 자동차 생산까지 가능한 산업국가다. 하지만 오랜 제재로 경제적 활기가 떨어진 데다 화폐가치도 떨어져 국민 생활이 힘들고 정부 재정도 충분하지 못하다. 이란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려고 지난해 11월 1일 석유 보조금을 전격 삭감했으며 이로써 석유 값이 L당 1만 리알(약 100원)에서 1만5000리알(약 150원)로 50% 인상됐다. 그러자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1월 3일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에서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이란 정부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담은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 동시에 왔을 것이다. 정치적인 부담은 미국의 솔레이마니 공격에 대한 이란 국민의 반응이다. 사실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혁명수비대에 들어가고 1990~88년 벌어졌던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솔레이마니는 국내 정치판에서 강경파에 속한다. 학생 시위가 벌어지면 혁명 수호를 내세우며 정부에 강경 진압을 주문해왔다. 지난해 발생한 시위에서는 진압과정에서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서방 보도가 나왔는데, 그 배경에 솔레이마니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 솔레이마니의 인기는 하락세였는데, 그러나 미국 공격으로 숨지면서 분위기가 역전됐다.

솔레이마니 사망 직후인 1월 4일 그의 집을 찾아 유족을 만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누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느냐”는 딸의 질문에 “모든 이란 국민”이라고 대답했다. 이 장면은 이란 국영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됐다. 솔레이마니 복수가 국가적인 과제가 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그의 장례식에 모인 군중의 규모와 “미국에 죽음을”을 외치며 복수를 요구하는 열기도 뜨거웠다. 특히 1월 6일 테헤란의 어저디(자유) 탑에는 당국 추산 100만이 넘는 군중이 모였다. 이곳은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시민이 모여 군주제 폐지를 외쳤던 민주화 성지다. 현대 이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다. 복수를 요구하는 군중 앞에 이란 당국은 신속히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미루면 대중의 분노가 언제 지도층으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란의 보복 공격은 대국민 메시지 효과 노린 것

여기에는 이란 만의 속사정도 있다. 이란은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 위에 시아파 사제가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하고 통치하는 신정체제다. 이슬람혁명 당시 민주화세력이 종교 세력을 끌어들이면서 탄생한 독특한 체제다. 체제의 상층부에서 기득권층을 이루며 특권을 누려왔던 종교 세력은 최근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국민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했다. 그런 상황에서 강경 조치를 주도해 비난을 받았던 솔레이마니가 사망하자 이란 당국은 그를 순교자로 만들어 유족과 국민에 대응하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1월 5일 이란 서부에 도착한 솔레이마니의 유해는 이날 동부의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를 거쳐 6일 북부의 수도 테헤란과 시아파 순례지인 쿰을 돌고 7일 안장을 위해 고향인 동남부 케르만에 옮겨졌다. 이란을 한 바퀴 도는 일정에 가는 곳마다 군중이 모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강경파 군인 술레이마니는 이란과 이슬람 시아파의 ‘순교자’가 됐다. 일종의 상징 정치다.

그 뒤 6일 ‘순교자 솔레이마니’라는 작전명으로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에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보복 조치를 취했다. 미사일 발사 시간도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 공항에서 피습 당한 새벽 1시에 맞췄다. 군사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란은 이라크에 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려줬다. 이라크 측이 미국에 이를 알려 기지 내 미군이 미리 대피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란이 솔레이마니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다급하게 미사일 발사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은 전면전까지 염두에 둔 치밀한 선제공격이라기보다 다분히 정치적인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란 당국이 신속한 보복을 결정한 배경은 결국 국내 정치적인 압박으로 보인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장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이니가 국가최고위원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상응하는 보복을, 미국의 국가이익이 걸린 곳에, 이란이 직접 한다는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며 “이번 공격은 이런 지시에 맞춰 이뤄진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이란이 미국에 대응할 물리적 능력은 없다”고 지적했다. 안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란 당국이 민심과 반미 정서를 위무하기 위해서 반격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이번 공격은 국제사회나 워싱턴에 보내는 것이라기보다 대국민 메시지 효과가 더 크다”고 풀이했다.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미국이 반격하면 다음 표적은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나 이스라엘의 북부 도시 하이파가 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물론 이란은 여기까지 날릴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UAE나 이스라엘은 패트리엇 미사일 등 촘촘한 방공망을 설치하고 있고 보복 수단도 다양하다. 두 나라에 대한 공격은 전면전이라는 불을 향해 섶을 지고 뛰어드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엄포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발언이다. 이란의 입을 보거나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이란이 처한 땅바닥(경제와 정치 현실)을 보는 것이 정세 판단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군비 절감’ 외쳤던 트럼프에게 확전은 이율배반

눈여겨 볼 점은 막강한 군대를 보유한 미국이라고 이란을 군사적으로 쉽게 유린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MSNBC에 따르면 이란 주변 국가인 아프가니스탄(1만4000명)·카타르(1만3000명)·쿠웨이트(1만3000명)·바레인(7000명)·이라크(5200명)·아랍에미리트(UAE·5000명)·요르단(2795명)·시리아(2000명) 등에 현재 7만 명 가까운 미군이 주둔한다.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USCENTCOM) 산하 해외 파병 병력이다. 여기에 사태 직후 신속대응군인 82공수사단의 일부 병력 등 5000명 이상이 추가로 중동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정도 병력으로 전면전은 어림도 없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 12만 명과 영국·호주·폴란드 등에서 모두 14만 명의 원정군과 7만 명의 쿠르드족 민병대가 참전했다. 주한미군에서도 전차와 아파치 헬기 등 전투장비와 헌병을 주축으로 하는 병력을 차출해갔다. 미국이 현재의 2배에 이르는 병력을 중동에 보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게다가 트럼프는 엄청난 비용이 드는 전쟁에는 줄곧 반대 입장을 해왔다.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군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파병 비용을 절약한다고 외쳐왔던 트럼프가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전면전으로 뛰어드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재선에 도움은커녕 거짓말을 일삼고 세금을 마구 쓴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탄핵 문제가 걸려 있는 트럼프가 미 의회의 개전 동의나 전쟁 예산을 얻기는 쉽지 않을 상황이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전쟁 예산에 선을 그었다.

전쟁을 치르려면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심리적으로 동맹국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8년 이란 핵합의에서 홀로 탈퇴하면서 독일·프랑스·영국의 반발을 샀다. 지난해엔 프랑스 등 나토 동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에서 미군을 돕던 쿠르드족을 방치하고 병력을 철수했다. 그런 트럼프가 서방 동맹국에게 파병을 요청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교적으로 고립무원이 되는 게 급할 때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황이다. 이란과 미국은 계속되는 갈등과 정치적 미봉으로 외교와 군사 분야의 세계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전 세계를 잔뜩 긴장시키면서 말이다. 2020년 새해 벽두에 벌어진 미국과 이란 사태는 미봉됐을 뿐 화근이 제거되지는 않았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18호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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