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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 성공한 차이잉원과 대만의 길] 재선 불가능하다던 차이 총통 어떻게 압승하게 됐나 

 

홍콩 사태 지켜본 대만인… 중국에 대한 부정적 정서 확산이 표 몰아줘

▎지난 1월 11일 밤 대만 타이베이 민주진보당 당사 앞 행사장에서 차이잉원(蔡英文 가운데) 총통이 지지자들에게 당선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만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63) 총통이 1월 11일 총통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연임에 성공한 것은 양안 관계에서 새로운 변곡점에 해당한다. 차이 총통은 중국과 거리를 두자는 원중(遠中)파이고, 차이 총통에 패배한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62) 후보는 중국에 더욱 다가가야 경제적인 실익을 얻을 수 있다고 외친 친중(親中)파이기 때문이다. 차이 총통은 중국이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과 ‘일국양제 통일’에 부정적인 입장이고 대만이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인권을 더욱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뿐, 중국에 등을 돌리는 반중(反中)과는 거리가 있다.

우선 이번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말 그대로 차이 총통의 압승임을 알 수 있다. 차이 총통은 이번 선거에서 817만231표(57.13%)를 얻었다. 대만 총통 선거 사상 최다 득표 기록이다. 차이 총통은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지난 선거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 재선하면서 ‘사상 최다표’라는 훈장까지 추가한 셈이다. 동시에 진행된 입법원(국회에 해당) 선거에서 차이 총통의 민진당은 정당명부 투표에서 지난 2016년 총선 때보다 10.2%포인트 떨어진 33.9%를 득표했지만 전체 113개 입법위원(국회의원에 해당) 의석 중 61석을 차지했다. 의석수가 68석에서 7석 줄었지만 과반수를 확보했다. 대만 입법위원 선거는 113명 입법위원 중 소선거구에서 73명을, 정당명부 투표로 비례대표 및 해외화교를 대표하는 34명을 각각 선출하는 한편, 평지 원주민 3명과 산지 원주민 3명을 별도로 뽑는다.

제1야당인 국민당은 정당명부 투표에서 2016년 총선 때보다 6.4% 포인트 늘어난 33.3%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3석 늘어난 38석에 그쳤다. 2019년 8월 6일 타이베이 시장인 고원저(柯文哲·60)가 창당한 대만민중당은 11.2%를 득표하고 첫 선거에서 5석을 확보했다. 이로써 차이 총통은 오는 5월 시작되는 두 번째 임기에도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총통 선거는 사실상 양자 대결로 진행됐다. 중국과 관련한 사안이 총통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했다.

차이 총통의 연임은 ‘중국에 대한 승리’ 평가

차이 총통 당선에 영향을 준 요인은 다양하지만, 우선 경제 성적표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만의 지난해 3/4분기 경제성장률은 2.9%로 과거 ‘아시아의 네 마리용’으로 불렸던 한국(2.0%), 싱가포르(0.1%), 홍콩(-2.9%)보다 좋았던 점도 차이 총통에 표를 몰아준 배경으로 꼽힌다. 2016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이 당선한 뒤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2017년 3.1%, 2018년 2.6%. 2019년 2.0%(추정치)를 기록했으며 올해 1.9%를 예상한다. 대만 전체 실업률은 3.8%(추정치)로 이론상으론 완전고용이다. 대만의 2019년 1인당 GDP는 2만4827달러로 1만98달러를 기록한 중국의 거의 2.5배에 해당한다. 중국은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어섰다. 눈 여겨 볼 점은 대만 경제의 중국 의존도다. 2016년 통계상 대만의 무역 상대는 중국이 26.3%로 1위, 홍콩이 13.7%로 2위다. 둘을 합치면 40%가 된다. 미국이 12%, 일본이 7%, 유럽연합(EU)이 8.8%로 뒤를 이었다. 수입은 중국이 19%, 일본 17.6%, 미국 12.5%, EU 10.6%, 한국 6.3% 순이다. 2017년 기준 대만은 3498억 달러를 수출하고 2690억 달러를 수입했다. 대만은 중국에 수출해 얻은 무역 흑자로 번영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그동안 중국의 압박과 홍콩 사태를 지켜본 대만 민심을 그대로 보여준 선거 결과로도 평가된다. 민진당과 차이 총통은 중국과 거리를 두자는 입장이고,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당의 한 후보는 중국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눈여겨 볼 점은 투표율이다. 2016년 총통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역대 최저인 66.2%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 총통 선거에선 74.9%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에 쏠린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이번 총통 선거의 유권자는 1931만 명이었는데 이번에 처음 투표하는 유권자는 118만 명에 이르렀으며, 20~35세의 젊은 유권자가 약 500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이번 선거는 외국에 나가 있던 대학생이나 직장인도 대거 귀국해 투표에 참여하면서 뜨거운 정치 참여 열기를 보여줬다. 그럼 점에서 해외 유학생들이 투표를 위해 귀국했던 지난 11월 홍콩의 구의원 선거 때와 많이 닮았다. 홍콩도, 대만도 중국의 압박에 분노한 젊은 유권자들도 투표장에 대거 몰렸다. 말 그대로 대만의 ‘앵그리 영 제네레이션’이 총통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차이 총통이 연임에 성공한 것은 중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선거의 진짜 패배자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지난 6월 초 홍콩 시위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차이 총통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대에 그쳤다. 반면 국민당 소속인 한궈위 가오슝 시장의 지지율은 45% 수준으로 고공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당시로선 없어 보였다. 1993~2002년 입법원 의원을 세 차례 지낸 뒤 정계에서 밀려났던 한궈위는 2018년 11월 대만 제2의 도시이자 민진당의 아성인 남부 항구 가오슝(高雄) 시장에 당선하면서 전국적으로 주목 받는 인물이 됐다. 민진당이 20년간 시장 자리를 도맡았던 민진당의 텃밭인데 한궈위가 그 자리를 되찾아오면서 국민당에서 ‘지방선거의 영웅’이 됐다.

한때 지방선거 패배로 재선 불가 여론 팽배


▎대만인들이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뜻에서 다섯 손가락을 펼쳐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 국민당에선 누구도 가오슝 시장 후보로 선뜻 나서지 않았다. 한궈위는 거의 버리는 카드로 국민당의 가오슝 시장 후보가 됐다. 국민당도 별반 기대를 하지 않고 지원을 등한히 했다. 하지만 한궈위는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바탕으로 청년층 공략에 나서는 전략을 구사했다. 입법원 의원을 끝으로 2002년 중앙 정계를 떠난 그는 ‘목에서 힘을 뺀’ 소탈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18년 여름 가오슝에 폭우가 내리자 바리를 걷어 올린 채 수행원도 없이 홀로 우산을 쓰고 침수 현장을 다니며 피해 주민을 직접 만나 위로했다. 대중 정치인 한궈위의 새로운 탄생이다. 머리 숱이 거의 없는 그는 지난해 지방선거 마지막 날 유세에서 대머리 지지자 227명을 모아 ‘가오슝 빛내기’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서민적’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는 “민진당이 젊은이들이 가오슝을 떠나게 했다. 나는 낡고 가난한 가오슝을 대만 최고의 부자 도시로 만들겠다”는 내용을 SNS에 올리면서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었다. 민진당 텃밭인 가오슝에서 한궈위가 불러온 폭풍은 대만 전역으로 번졌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은 22개 현·시장 중 15개를 차지했다. 한궈위는 국민당을 살린 공신으로 평가 받으며 일약 대권 주자가 됐다. 한궈위는 ‘한류(韓流’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대만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반면 민진당은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차이 총통의 재선이 불가능하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차이 총통이 이런 비관적인 분위기를 딛고 급부상할 수 있었다. 홍콩 사태로 대만에서 일기 시작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핵심이었다. 중국은 차이 총통을 압박하려고 단체 관광객 송출 금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을 가해왔는데 오히려 역풍이 불기도 했다. 눈길이 가는 것은 대만인의 정체성과 관련한 조사다.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각각 ‘대만인’과 ‘중국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15년 59.5%와 3.3%에서 2019년에는 83.1%와 1.1%로 각각 나타났다. 자신을 대만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크게 늘고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지는 분위기다. 특히 10대인 고교생 중에서 자신을 ‘중국인’으로 답한 비율은 0.8%에 불과했다.

이는 홍콩 사태를 지켜보면서 중국이 주장한 일국양제의 민낯을 확인한 대만인 사이에서 ‘홍콩의 비극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며 대만인들이 불안해하며 중국을 불신하게 된 것이 선거 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중국이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외면하고 힘으로 주민들을 제압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확인한 대만인들은 총통과 입법원 선거를 통해 의사를 표현한 셈이다. 차이 총통이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한궈위를 누르고 역전승한 원동력은 중국에 있는 셈이다. 특히 계속된 중국의 대만에 대한 압박이 대만인에게 상처를 주고 부작용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중국은 지난해 1월 대만에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하면서 무력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는 대만인의 가슴에 중국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감을 동시에 심어준 계기가 됐다. 게다가 지난해 중국 전투기들이 1991년 이후 20년 만에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넘어 대만 전투기들과 대치했다.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하듯 둘러싸면서 벌인 강도 높은 훈련 횟수도 부쩍 늘었다. 이런 군사적 압박도 대만에선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중국은 차이 총통 취임 뒤 대만을 상대로 강력한 외교 공세도 동시에 벌였다. 그 결과 차이 총통 취임 뒤 7개 나라가 대만과 단교해 현재 대만의 수교국은 15개국에 불과하다. 본토인의 대만 단체 여행에 이어 지난해 8월부터는 자유여행도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대만에 연간 1조 원대의 경제적 타격을 가했다. 차이 총통 정권은 이를 동남아와 무슬림 관광객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중국도 집요했지만 대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차이 총통의 현실적인 대중 정책도 유권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민진당 출신으론 처음 대만 총통에 오른 천수이볜(陳水扁·69, 2000~2008년 재임)은 급진적인 독립노선을 추구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강한 반발을 유발한 것은 물론 대만 여론을 분열시키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달리 차이 총통은 ‘현상 유지’를 주장하면서 중국의 거듭된 요구에도 92공식(대만과 중국이 `하나의 중국`임을 인정하되, 명칭을 각자 사용하기로 한 1992년도 합의)에 모모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중국이 무력 사용으로 위협하자 단호하게 일국양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에 대해 유연할 때는 유연하게,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대응한 것이 차이 총통이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은 요인으로 평가 받는다. 차이 총통은 선거 유세 중 중국에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투표를 앞두고 “1월11일(선거일) 우리는 일국양제와 92공식을 선택해 청년의 미래로 도박을 할지, 아니면 민주와 자유를 선택해 계속 우리의 주권을 수호해 나갈지 결정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92공식 두고 중국 “하나의 중국” VS 대만 ‘각자의 표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30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 축하 리셉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중국이 92공식을 근거로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음을 강조하며 홍콩이나 카마오처럼 일국양제 통일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해왔다. 반면 민진당은 ‘각자의 표현에 따른다’는 부분에 방점을 둔다. 양안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에서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차이 총통은 2016년 당선 이래로 ‘92공식은 여러 선택 가운데 하나일 뿐 유일한 선택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대신 현상 유지를 강조하면서 ‘중국과 소통’ ‘도발 자제’ ‘정책 투명성’을 양안관계 3원칙으로 제기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계속 92공식 수용과 일국양제 통일을 강조하자 “92공식은 중화민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차이 총통은 2019년부터 “대만은 중국이 요구하는 일국양제 통일 방안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이 총통은 당선 소감에서 “대만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을 때 대만인은 결의를 더 크게 외치리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며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절대로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안 관계와 관련해 “평화와 평등, 민주, 대화가 양안 관계를 회복하는 핵심”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양안 국민의 거리를 좁히고, 상호 이해와 이익을 추구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대만을 대등하게 존중하고 평화적인 태도로 나서면 양안 관계를 개선해 나갈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자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12일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이 차이 총통의 당선을 축하하자 “대만 선거는 중국 지방의 일”이라며 “이들 국가의 행동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중국은 이에 강력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하며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며 반발했다. 사실 2016년 1월 16일의 대만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이 56.1%를 득표해 31% 획득에 그친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에 압승을 거뒀을 때도 중국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전방위적으로 경제 압박에 나섰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일국양제 통일’을 받아들이라는 정치적 압력이다. 특히 중국 관영 매체들은 노골적으로 대만을 위협했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빼놓고 침체된 대만 경제를 바꿀 수 없다”며 “독립 노선을 추구하면 죽음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대놓고 차이 총통을 압박했다. 차이나데일리도 사설에서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92공식을 수용해야 민진당과 대화할 것”이라며 “대만이 독립을 추진하는 것은 전쟁을 의미한다”라고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중국 관영매체의 이러한 압박에 차이 총통은 단호한 자세를 취해왔다. 차이 총통은 “대만 국민은 대만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정부를 선택했다”며 “어떤 형태의 압박이든 양안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맞섰다. 그는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하며, 지속 가능하고, 대등한 양안 상호관계를 구축하겠다”며 “대만의 민주주의 제도와 국가 정체성은 반드시 존중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대만이 대등한 관계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선의는 불변하고, 약속도 불변하며, 대결의 옛길을 걷지 않을 것이나, 압력에는 굴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맞섰다. 중국과 대화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되 정치적인 압박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차이 총통은 이번에도 같은 대응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19호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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