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중국 일대일로 발목 잡은 바이러스] 중국 세계패권 야욕, 코로나19에 꺾일까 

 

유라시아 집어삼킬 일대일로 프로젝트, 중동 전략 요충지 이란서 길을 잃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마스크를 쓰고 외출한 이란 테헤란 시민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對一路) 프로젝트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대일로는 중국이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로 건설과 지역개발을 결합해 유라시아 국가들과 연결하고 협동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인프라 정비를 통해 교역과 투자, 그리고 자금의 왕래를 촉진하는 프로젝트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을 완성 목표로 잡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중동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진행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단이 난 대표적인 나라가 하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중동 교차로인 이란이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전략의 지정학적·정치적·경제적 중추에 해당하는 이란이 코로나19로 혼란을 겪으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으로 이란의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중국의 글로벌 전략인 일대일로의 차질과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먼저 나온 나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란 관영 IRNA 통신 웹사이트에 따르면 2월 27일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26명에 이르렀다. 사망자 숫자가 중국 다음으로 세계 2위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이란 전문 매체인 카이한은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란 당국이 2월 28일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여러 도시에서 금요 예배를 취소했다고 이란 국영TV를 인용해서 보도했다. 카이한은 영국 런던에서 영어와 이란어로 발행하는 매체다.

무슬림(이슬람 신자)은 하루 다섯 차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는 기도 외에 금요일에 모스크(이슬람 사원)나 마스지드(학교가 딸린 모스크)에 모여 손발을 깨끗하게 씻는 우두 의식을 치른 뒤 단체 예배를 보는 것이 의무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무슬림이 기도 의무를 다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슬람 세계의 안식일인 금요일에 모스크에 모여서 드리는 금요 예배는 이슬람 공동체에서 종교적·사회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의식이다. 금요 예배는 모스크에 가로세로로 줄지어 서서 ‘이맘’(종교 공동체 통솔자)의 인도에 따라 코란을 암송하고 메카 방향으로 경배를 드리는 방식이다. 이슬람 수니파는 일반 신도 중에서 덕망 있는 인물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한다. 하지만 이란 국민의 대부분이 따르고 있는 이슬람 시아파는 성직자로서 이맘이 별도로 있어 이들이 예배를 인도한다. 이란에서 시아파 이맘은 지역 사회의 종교와 사회 지도자로서 군림한다. 이들이 금요 예배에서 하는 설교는 이란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수도 테헤란의 금요 예배를 이끄는 이맘은 상당한 권위를 지닌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금요일의 단체 예배를 취소한 것은 자칫 코로나19를 전파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건국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주요 도시에서 금요 예배가 중단된 것은 대사건이다.

로이터 통신은 2월 27일까지 이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245명에 이르렀으며 여기에는 고위 공직자도 여러 명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고위 공직자 확진자 중에는 마수메 에브테카르 여성·가족 담당 부통령이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에브테카르 부통령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입원도 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코로나19 관련 행정을 책임지는 이라지 하리르치 보건부 차관도 확진자에 포함됐다. 하리르치 장관은 방송에 나와 코로나19 관련 발표를 하면서 손수건으로 이마와 얼굴의 땀을 닦고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인 뒤 검사를 받고 확진자에 포함됐다. 이란의 키아누쉬 자한푸르 보건부 대변인은 이날 국영 방송에 나와 “24시간 동안 10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며 “불필요한 국내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란, 감염 확산에도 검사장비 부족해 사망률 1위


▎하산 루하니(왼쪽) 이란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사진:연합뉴스
이란 관영 IRNA 통신은 이란 당국이 중국 국적자의 이란 입국을 금지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란 외교부의 아바스 무사비 대변인은 중국 적신월사에서 지원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기구 2만 세트가 2월 28일 도착한다고 발표했다. 이란이 중국이 지원한 코로나19 검사기구는 흔쾌히 받으면서도 중국의 입국은 차단하는 조치를 동시에 취한 셈이다. 이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자 이란과 맞닿은 터키와 파키스탄이 황급히 국경을 닫았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에서도 2월 26일 코로나19 첫 사례가 나왔다. 중남부 나자프라는 도시로 이슬람 시아파의 주요 성지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의 무덤이 있는 도시다. 알리는 시아파에서 초대 이맘으로 치는 성인이고 그의 무덤이 있는 나자프는 이란인을 비롯한 시아파 순례자가 많이 찾는 곳이다. 알리의 아들인 이맘 후세인의 무덤이 있는 중부 카라발라와 함께 이라크 내 시아파 핵심 성지다. 이란은 고립되고 있다.

이란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인 것은 물론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10% 이상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란은 2017년 기준 인구가 8116만 명의 대국이다. 이처럼 이란의 코로나19 사망률이 비상하게 높은 이유에 대한 의문이 증폭됐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검사를 받지 못한 잠재 감염자가 많은데도 검사 장비나 기구가 부족해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란에서만 유독 확진자 사망율이 유독 높은 이유를 이것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증상이 미약한 사람에 대해선 검사를 하지 않아 생긴 것”으로 풀이했다.

미국의 제재에 중국의존도 커진 이란 의료산업 취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중국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란의 또 다른 문제는 경제제재로 인해 의약품을 제대로 수입하지 못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기저질환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18년 5월 미국이 이란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경제 제재를 재개하면서 이란이 받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고통의 일부다. 특히 서방 국가들의 대이란 수출이 규제를 받으면서 이란은 의약품 수급에 상당한 차질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한국에 인도적 지원 형식으로 의약품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대이란 제재 위반이라는 미국의 주장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란에선 당뇨·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의료 취약국인 이란에 코로나19가 상륙해 맹렬히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제재는 코로나 19 확진을 위한 검사 장비나 키트의 수급에도 지장을 준 원인으로 지적된다. 한국이 이런 상황에 처한 이란에 의약품과 검사 장비·키트 등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하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런 이란은 사실 중동에서 중국 일대일로의 핵심 국가이자 중국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의존하는 친중 국가이기도 하다. 이란 경제는 중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의 에너지를, 이란은 중국의 제조업을 각각 탐낸다. 2018년 5월 이란에 대한 제재가 재개되기 전인 2017년 중국은 이란의 전체 수출액 1074억 달러의 31%를 차지했다. 2위인 인도(19%), 3위인 한국(13%)를 합친 것과 맞먹는 비율이다. 이탈리아(6%)와 일본(6%)이 뒤를 이었다. 중국은 이란의 수입에서도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2017년 이란의 전체 수입액 544억 달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37%로 2위인 한국(8.1%), 3위인 독일(6.5%), 4위인 터키(6.3%), 5위인 인도(6.2%)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이란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란은 미국이 2018년 5월 이란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미국과 서방 세계의 경제제재로 에너지의 수출도, 상품의 수입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이란 경제의 거의 유일한 활력소가 되고 있다. 중국과 이란은 교류가 활발하다. 이란에는 중국 대도시 직항 항공 노선은 물론 신장 위구르의 우루무치를 경유해 베이징까지 가는 저가노선도 있을 정도다. 중국과 소규모 무역을 통해 잡화를 수입하는 통로일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이란 인프라 건설에 코로나 비상


▎중국이 우호를 과시하기 위해 이란에 보낸 코로나19 예방 마스크 . /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지리적으로 의외로 가까운 이란의 철도 프로젝트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이란은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對一路) 프로젝트의 핵심 국가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을 잇는 혈맥이 이란이다.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위치한다. 이란은 동쪽으로 인도아대륙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북쪽으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서북쪽으로 카프카스 지역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서쪽으로 터키, 서남쪽으로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쪽으로 카스피해를 건너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오만·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와 마주보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그야말로 동서남북, 사통팔달의 교차로다. 실제로 이란은 오랫동안 문명의 교차로이자 용광로 역할을 해왔다. 시 주석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이란이 전략적인 중심국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이란과 국경을 맞댄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이란의 테헤란까지 잇는 철도 연결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태평양 지역 항구에서 철도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해 유럽까지 잇는 ‘유라시안 육로 교량’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태평양 항구에서 유럽까지 이어지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황단 철도를 뒤잇는 제2의 동서양 관통 철로다. 2016년 시험 운행 결과 중국 저장(浙江)성의 물류·상업 도시인 이우(義烏)에서 테헤란까지 14일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하이(上海)에서 테헤란까지는 12일이 걸렸다. 현재 화물이 해상을 통해 상하이 항구에서 내륙인 테헤란까지 가려면 30일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물류 운송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셈이다.

중국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이어지는 ‘5개국 철도 회당(Five Nations Railway Corridor)’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총연장 2100㎞에 이르는 철도를 건설하거나 기존 철로를 개량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으로 잇는 철길을 뚫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이 철로를 고속철도로 전환할 경우 이 지역의 경제발전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중국의 영향력이 극대화하게 된다.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그레이트 게임’으로 경쟁했던 이 지역에서 중국이 21세기의 패권국으로 등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은 2018년 5월 서부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우루무치에서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의 수도 테헤란까지 잇는 철도의 현대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철로는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지나는 노선이다.

이란은 외국이 투자하기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복잡하고 난해하며 자국민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경제법과 규제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꼽힌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난관을 뚫고 이런 이란에 발 빠르게 투자해왔다. 중국은 이란 동부와 서부에서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수도 테헤란에서 터키와 연결하는 철도 노선도 건설 중이다. 테헤란과 이란 동북부의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를 거쳐 남쪽 오만 만의 항구를 연결하는 철도도 부설 중이다. 중국 자금에, 중국 기술자와 노동자를 투입하는 프로젝트다. 이란 북쪽의 투르크메니스탄, 동쪽의 아프가니스탄과 연결하는 기존 교량을 새롭게 강화하고 있다.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서 진행 중인 거의 유일한 인프라 프로젝트다. 이란 내 중국인 노동자들의 격리나 철수 등으로 철도 프로젝트마저 일시 중단될 경우 일대일로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럴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24호 (2020.03.0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