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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슬리포노믹스] ‘나폴레옹처럼 자다간 골병 든다’ 3조원 수면 시장 

 

‘푹 자고 잘 쉬기’ 위해 돈 쓰는 현대인… 업계선 IT 더해 ‘슬립테크’ 강화

“남자는 네 시간, 여자는 다섯 시간, 그리고 바보는 여섯 시간 잔다.” 프랑스 군인이자 황제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하루 서너 시간 잠을 자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현대인은 다르다.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일 정도로 현대인은 ‘제대로’ 그리고 ‘잘’ 자기 위해 애쓴다. 숙면을 위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면서 수면을 의미하는 ‘슬립(Sleep)’과 경제학을 말하는 ‘이코노믹스(Economics)’가 합쳐진 신조어 ‘슬리포노믹스’도 생겼다. 이는 침대, 침구, 의료기기 등을 포함한 수면 관련 산업을 전체를 말한다.

최근 슬리포노믹스는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면시장 규모는 2011년 4800억원에서 2015년 2조, 2019년엔 3조원으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수면 시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르며 성장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지난해 불면증 진료인원 63만명 넘어


슬로포노믹스가 성장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불면증 환자’의 증가가 한몫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불면증(질병코드 F510 비기질성불면증, G470 수면개시및유지장애)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16년 54만3183명에서 2017년 56만2419명, 2018년엔 60만명을 넘어 지난해 63만4074명으로 집계됐다. 매해 5% 이상씩 늘고 있다. 이처럼 수면장애를 겪는 현대인이 늘면서 덩달아 질 높은 숙면을 돕는 제품 시장도 커졌다.

숙면이 면역력 증진과 직결된다는 연구 결과도 수면 시장을 키웠다. 김혜윤 대한수면연구학회 홍보이사(가톨릭관동의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과장)는 “수면장애는 생체리듬을 깨뜨려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고, 우리 몸의 대사기능을 낮춘다”며 “대사기능이 떨어진 몸은 제대로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더불어 영양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해 면역력이 낮아진다. 또 수면 부족은 호르몬 분비에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수면학회는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성인이 하루에 적어도 6~8시간 잠을 청하기를 권고한다.

증가하는 수면 시장의 최근 트렌드는 ‘스마트’다. 과거 수면 시장은 침대, 이불, 베개, 매트리스 등 단순 침구 제품이 대다수를 이뤘지만 최근엔 IT가 더해졌다. 이는 수면을 뜻하는 ‘슬립(Sleep)’과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합쳐진 ‘슬립 테크’로 불리며 새로운 IT사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슬립테크 기기 중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는 ‘스마트워치’가 있다. 애플의 애플워치, 삼성전자의 갤럭시워치, 갤럭시 핏은 제품을 착용한 사람의 심박수를 체크해, 자는 동안에 얼마나 숙면을 취했는지 등을 수치로 보여준다. 이 기술을 시계에 장착하기 위해 애플은 2017년 핀란드 수면 추적 센서 제조업체인 베딧을 인수했고, 삼성전자는 2015년 이스라엘 IT 헬스케어 기업 얼리센스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해 현재 갤럭시워치에 탑재한 수면 추적 기술을 개발했다.

침대도 변했다. 기존 매트리스에 모터를 달아 버튼 하나로 자유자재로 모양이 변하는 ‘모션 베드’로 진화했다. 이전에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일부 매트리스에만 이 같은 기능이 있었는데 최근엔 가정용 매트리스로 확대됐다.

글로벌 매트리스 브랜드 템퍼, 씰리를 비롯해 국내 브랜드 라클라우드, 슬로우 등이 모션 베드를 선보이고 있다. 슬로우의 마케팅 담당자는 “매트리스에 IT가 더해지면서 30~40대 남성의 소비가 늘었다. 기계적인 느낌이 더해진 모션 베드가 편안한 잠자리를 원하는 남성 소비자 취향에 딱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0’에도 슬립테크 제품이 대거 소개됐다. 슬립넘버의 스마트 침대, 메텔의 스마트 베개, 필립스의 스마트 조명 등이다. 슬립넘버는 매트리스 위에서 자는 사람의 체온을 파악해, 매트리스 온도를 자동으로 바꾸는 스마트 침대를 내놨다. 메텔은 베개에 누운 사람의 경추 상태를 감지해 최적의 베개 높이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스마트 베개를 내놨다. 이 베개는 잘 때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코골이나 무호흡 증상을 최소화하는 높이로 각 개인에 맞춰 변화한다. 필립스는 잠이 들기 좋은 밝기의 조명을 각 환경에 맞춰 제공하는 스마트 조명기를 선보였다.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를 최소화시키는 제품군 매출 증가도 이전 수면 시장과 달라진 부분이다. 코골이 방지용품, 수면 안대와 같은 호흡·수면 관리 용품의 최근 2년(2018년 4월 1일~2020년 3월 1일) 매출액이 직전 2년(2016년 4월 1일~2018년 3월 1일) 매출액보다 G마켓에선 141%, 옥션에선 67% 신장했다. 같은 기간 동안 위메프 매출을 보면 수면 안대가 74.44%, 수면 귀마개가 88.51% 늘었다.

수면 보조제 시장, 미국 10억 달러로 팽창


▎슬립테크 기기로 'CES2020'에 소개된 메텔의 스마트 베개 '제레마'와 슬립넘버의 '스마트 베드.' / 사진:각 사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수면보조제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의 수면보조제 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으로 10억3400만 달러에 달하며 전년 대비 10% 성장했다. 유로모니터는 수면보조제 시장이 향후 5년간 평균 5%씩 상승해 2024년에는 13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중국 역시 수면보조제 시장이 팽창하고 있다. 2018년 중국 수면 보조제 매출액은 전년 대비 9% 상승한 12억900만 위안을 기록하고, 2019년엔 13억 위안을 넘어섰다.

해외에서 판매하고 있는 수면보조제 대부분은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성분을 첨가한 제품으로 미국에서는 P&G사의 ‘지퀄(ZzzQuil)’이 선두이고, 중국에서는 제약회사 ‘지린아오동’이 시장의 절반 이상 점유하고 있다. 수면 보조제 시장이 커지면서 뛰어드는 제약회사도 늘고 있다. 비타민을 주로 제조하던 미국의 ‘올리(Olly)’는 2018년부터 수면보조제인 수면껌을 성인용, 어린이용으로 출시했는데 시장성을 인정받아 2019년 4월 영국과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인수됐다.

국내는 광동제약, 한미약품, 알리코제약 등에서 수면유도제를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규모다. 헬스케어 빅데이터 기업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국내 수면유도제 시장은 18억2000만원 규모에 그쳤다. 김혜윤 홍보이사는 “과거엔 밤낮 없이 일하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불면증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국가간 시차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글로벌 시대 들어 불면증 환자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잠을 잤는지 보다 얼마나 일정하게 잠을 청하고 깨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기사] 면역력 높이는 안마의자 등장 - 바디프랜드 ‘파라오’… 냉·온풍 자유자재로 선택


슬리포노믹스가 성장하면서 안마의자도 진화하고 있다. 최근엔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방재활의학과, 내과, 정신과 등 전문의가 참여해 면역력 증강을 돕는데 초점을 맞춰 제작된 안마의자까지 나왔다.

대표적으로 바디프랜드의 ‘파라오’ 제품이다. 이 제품에는 ‘림프마사지 프로그램’이 탑재됐다. 제품에는 일반 안마의자와 달리, 겨드랑이 또는 목과 같은 림프절을 주무를 수 있는 특수 에어백이 달렸다. 또 이 제품은 림프절 주변으로 림프액이 정체되지 않도록 심장에서 먼 부위부터 마사지 기능이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조수현 바디프랜드 메디컬R&D센터장은 “면역력을 높이려면 체내에서 면역체계를 전담하는 림프계 역할이 중요한데, 림프계가 손상돼 림프순환이 느려지게 되면 부종이 생기고 바이러스에 맞서는 전투력이 약해져 감염에 취약하게 되므로 림프순환의 활성화가 중요하다”며 “심장의 펌프작용으로 순환하는 혈액과는 달리 림프액은 운동이나 스트레칭, 마사지 등 물리적인 외부 자극이 있어야 원활하게 흐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마를 받으며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는 ‘온열마사지’ 프로그램도 더해졌다. 바디프랜드는 안마의자 등 부위와 종아리 부위에 열선을 깔아, 각 부위의 온도가 최대 60℃까지 올라가도록 했다. 내과 전문의인 김태윤 바디프랜드 메디컬 R&D실장은 “기초체온이 떨어지면 혈관이 수축돼 혈액순환이 둔화되고 면역세포 생산량도 줄어들게 돼 바이러스에 노출시 감염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며 온열마사지 기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외에도 냉풍과 온풍을 각각 3단계로 조절해 최저 16도에서 최고 50도까지 바람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냉온풍 시스템’도 개발했다. 바디프랜드 ‘파라오2 COOL’은 안마의자의 허리, 옆구리, 엉덩이 부분 시트 구멍에서 시원한 바람 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도록 해서 사용자가 마사지를 받는 동안 춥거나 더위를 느낄 때 스스로 바람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1531호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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