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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트럼프 카오스에 빠진 미국] 트럼프는 왜 계속 ‘정치적 악수’를 둘까 

 

코로나19·경제난에 반인종차별 시위까지… 대통령은 통합 대신 표심 챙기기에 몰두

▎시민들이 6월 4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근처에서 경찰에 구금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경제난과 실업 증가, 그리고 인종차별 항의 시위까지 겹쳐 지도력을 의심받고 있다. 11월 3일 대선일까지 5개월 남짓 남았을 뿐인데 지지율이 하향곡선이다. 정치 공학적으로 분석해도 재선 가능성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와 경제난, 그리고 인종문제는 트럼프 개인의 문제를 넘어 미국이라는 거대 패권국가의 운명과도 관련이 크다. 이를 하나씩 따져보자.

코로나19 대란으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냈다. 6월 3일 기준으로 확진자가 192만3049명에 이른다. 이날 하루에만 신규 확진자가 2만1266명 추가됐다. 사망자는 11만138명으로 이날 하루에만 996명이 세상을 떠났다. 미국이 제아무리 넓고 강한 나라라고 해도 이 정도의 확산세라면 미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상당히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능력도 덩달아 의심받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실업률이 치솟기 시작했다. 미국의 4월 실업률은 14.7%에 이르렀다. 나라가 흔들릴 정도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누그러지지 않았음에도 전국 각 지역에 봉쇄를 풀고 경제활동을 재개한 이유다.

이 두 가지 문제만 해도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벅찬 과제인데 여기에 더해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까지 터져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조지 플로이드(46)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릎으로 목을 계속 눌러 결국 숨지게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이 불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시위대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 등이 적힌 패널을 들고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고통을 받는 동안 외친 말이다. 이 말은 21세기 앞으로 미국 민권운동의 상징이 될 전망이다.

잠잠했던 인종 차별·격차 다시 수면 위로


▎시위대가 6월 4일 워싱턴DC 백악관 근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시위대는 단순한 항의를 넘어 미국의 근본적인 시스템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외침은 미국을 넘어 글로벌 사회로 번지고 있다.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 동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는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서 #I can’t breathe #Black Lives Matter #No Justice, No Peace 등의 해시태그를 붙이는 운동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봉쇄조치와 경제 둔화, 대규모 실직사태로 좌절한 미국인들이 플로이드 사건을 맞아 불평등과 관련한 고통을 표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의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과 소득불평등 등 다양한 분노와 좌절이 이번 시위에서 분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편승한 일부 무법자들이 상점을 약탈하고 방화를 하면서 사태가 악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통합을 호소하는 대신 군대 동원까지 거론하며 법과 질서를 부르짖으면서 새삼 지도력을 의심 받고 있다. 트럼프는 국민적 통합을 추구하는 대신 대립과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치공학적’ 행동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어느 발언에서도 통합과 상처 치료를 말하지 않고 오로지 ‘법과 질서’만 주장할 뿐이다. 하지만 상황은 트럼프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의 인종별 격차 문제를 대대적으로 소환했다. 잠시 잊고 있던 인종차별과 인종격차가 새롭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인종차별은 각종 데이터가 생생하게 말해준다. 먼저 미국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망률부터 인종별 격차가 뚜렷하다. 미국 공공라디오 프로그램 제공사인 ‘미국 공공미디어(APM)’가 2017년 설립한 리서치 회사인 APM리서치랩이 지난 5월 27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은 인종별로 차이가 상당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의 사망률은 카프카스계 미국인(백인)보다 2.4배, 아시아계 미국인이나 라틴계 미국인(히스패닉)보다 2.2배 높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에서 흑인은 54.6명, 라틴계는 24.9명, 아시아계는 24.3명, 백인은 22.7명으로 각각 나타났다. 흑인은 확진자 1850명당, 라틴계는 4000명당, 아시아계는 4200명당, 백인은 4400명당 1명이 각각 숨진 셈이다. 이와 함께 미국 원주민의 사망률도 격차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나바호족 거주지역이 있는 뉴멕시코 주와 애리조나 주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사망률은 백인에 비해 각각 8배와 5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데이터는 APM 리서치랩이 지난 5월 19일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약 9만9000건의 코로나19 사망자의 89%에 해당하는 워싱턴DC와 40개 주의 사망자 인종을 조사한 결과다.

경제적으로도 인종별 격차가 선명하다. 미국 센서스 결과에 따른 2018년 인종별 가계소득 중앙값은 아시아계가 8만7194달러가 가장 많았고 백인이 7만642달러, 라틴계가 5만1450달러였으며 흑인이 4만1361달러로 가장 작았다.

미국의 실업률은 항상 흑인-라틴계-백인 순으로 높았다. 민간 통계기관인 스테이티스타 조사에서도 2019년 미국의 인종별 실업률은 흑인이 5.6%로 가장 높았고, 푸에르토리코계 5%, 멕시코계 4.4%, 라틴계 4.3%의 순이었다. 이들은 미국 평균 실업률인 3.4%보다 높았다. 아시아계는 2.4%로 평균보다 낮았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실시한 2020년 1분기 16세 이상 실업률 조사 결과 전체 평균이 4.1%(2019년 동기 4.1%)였는데 백인은 3.6%(3.7%), 흑인은 6.6%(7.1%), 아시아계는 3.3%(3.1%), 라틴계는 5.4%(5.1%)로 나타났다. 1분기 실업률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에 반영되기 전의 데이터다. 1분기 동안 1·2월과 3월 초순까지 미국 경제는 코로나19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3월 11일 1000명에 이른 이래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해 3월 19일 1만 명을, 3월 27일 10만 명을 각각 넘었다. 4월 1일 20만 명, 4월 10일 50만 명, 4월 27일 100만 명을 각각 넘어섰다. 5월 16일 150만을 넘었고 6월 3일 기준으로 192만3049명에 이른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통계를 보면 미국의 경제적 타격은 3월 중순 본격화해 2분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심각해졌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 마비는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2분기 실업률은 1분기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심각해질 전망이다. 당장 미국의 지난 4월 실업률이 14.7%에 이르렀다. 인종별 실업률을 따지면 흑인들의 2분기 고용 문제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문제 하나만 해도 해결이 벅찬데 흑인의 실업률 해결은 더욱 요원하다.

비판 여론 확산 투표서도 인종간 대립·분열


▎11월 3일 대선에 나올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있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민주당의 조 바이든. / 사진:AFP=연합뉴스
인종별 투표 성향은 차이가 더욱 분명하다. 오는 11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가장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데이터다. 영국 조사기관 유거브와 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오늘 투표한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으로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백인의 51%는 공화당의 트럼프를, 41%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을 지지했다. 흑인 유권자들은 트럼프보다 바이든에 쏠렸다. 둘의 격차가 72%포인트에 이른다.

퀴니피액대가 조사한 결과 바이든은 50%, 트럼프는 39%의 지지율을 나타냈다고 정치매체인 더힐이 5월 20일 보도했다. 지지율 차이가 11%포인트에 이른다.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의 조사 결과 바이든 46%, 트럼프 38%의 지지율로 격차가 8%포인트에 이르렀다.

하지만 연방국가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가 주별 선거인단에 투표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메인 주와 네브래스카 주를 제외하고는 주별 선거인단 승자독식(해당 주의 승자가 배당된 모든 선거인단 차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6년 대선에선 공화당의 트럼프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비해 득표수에서 2%포인트에 해당하는 286만표 뒤졌다. 하지만 트럼프는 전체 538명의 선거인단 중 304명을 확보해 227명을 얻은 클린턴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이번에도 투표자 지지율에선 다소 뒤지더라도 선거인단을 더 확보해 승리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여론의 비판에도 핵심 지지층만 결집하는 독특한 정책과 발언을 계속한 이유다.

하지만 지지율에서 8~11% 포인트의 격차는 선거인단 확보라는 독특한 대통령 선거제도를 감안해도 트럼프에게 충분히 위험한 수준이다. 미국의 비정파 조사기관인 270투윈(270towin)의 전국 판세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민주당이 확보할 것으로 보이는 선거인단 숫자는 확실 183명, 유력 35명, 유망 14명 등 모두 232명이다. 공화당이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인단은 확실 125명, 유력 18명, 유망 61명으로 모두 204명이다. 102명의 선거인단이 경합주 소속이다.

이 조사기관의 이름인 270투윈은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면 과반수를 차지해 대선에서 이긴다는 의미다.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보이는 후보는 아직은 없는 셈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자가 많은 공화당 안전 주와 민주당 지지층이 두터운 민주당 안전 주, 그리고 두 정당 사이를 오가는 경합 주로 나뉜다. 텍사스, 미시시피, 앨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남부 주들은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공화당 안전 주다. 중서부의 와이오밍, 유타, 아이다호도 공화당의 표밭이다.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동부의 뉴욕, 버몬트, 매사추세츠, 코네티컷과 서부의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그리고 중북부의 일리노이 등은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538명의 대선 선거인단 가운데 민주당 안전주인 캘리포니아가 55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공화당 안전주인 텍사스로 38명이다.

트럼프 강압 정치에 등돌리는 참모진과 민심

안전 주와 달리 선거 때마다 표심이 변화하는 지역을 경합 주 또는 전장 주(Battlefield States)라고 부른다. 남부의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중북부의 미시간, 미네소타, 위스콘신, 동부의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뉴햄프셔, 중서부의 네바다, 콜로라도, 아이오와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대선 선거전은 아무래도 이들 경합 주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경합주 가운데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있는 주가 플로리다로 29명이다. 펜실베이니아는 20명, 미시건은 16명의 선거인단을 가진 중간 주다.

그런데 207투윈이 대표적인 경합주 6곳의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는 트럼프를 더욱 초조하게 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지지율은 미시간(선거인단 16명) 40대 48, 위스콘신(10명) 43대 46, 펜실베이니아(20명) 42대 49, 애리조나(11명) 43대 50, 노스캐롤라이나(15명) 44대 47, 플로리다(29명) 44대 48로 모두 트럼프의 패배가 예상된다.

바이든이 민주당 지지 주의 선거인단 232명에 경합주의 선거인단 102명을 모두 확보하면 334명으로 당선에 필요한 ‘매직 넘버’인 270명을 거뜬히 넘어선다. 물론 선거일까지는 아직 5개월 가까운 시일이 남아있어 11월 3일의 대선일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단정하긴 이르다. 문제는 이런 조사 결과를 본 트럼프가 초조한 나머지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11월 3일의 선거에는 임기 4년의 대통령은 물론 임기 6년인 상원의원의 3분의 1과 임기 2년인 하원의원 전원도 뽑게 된다. 트럼프는 물론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도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지지율 하락이라는 썰물에 자신들의 의원 자리도 함께 쓸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물론 공화당 정치인과 지지층도 초조해할 수밖에 없다. 최근 나온 여론조사는 한결같이 불길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와 트럼프의 잇딴 실수와 황당한 발언과 행동으로 인해 백악관은 물론 상원에서의 우위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공화당을 휩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맞아 국민을 설득하고 진정시켜야 할 트럼프 대통령이 항의 시위대를 폭도로 부르고 군 동원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국가인 미국에서 시민 시위를 군으로 무력 진압하겠다는 발상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실체도 뚜렷하지 않는 ANTIFA(반파시즘운동)라는 네트워크 단체를 시위의 배후라고 주장하며 이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겠다고 말했다. 정치 지도자로서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트럼프의 말과 행동은 심각한 역풍을 부르고 있다. 6월 3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브리핑에서 시위 진압에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군 동원은 마지막 수단”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이날 “내 인생에서 미국인을 통합하려고 시도하지도, 심지어 그런 시늉도 내지 않은 첫 대통령”이라며 “트럼프는 미국을 분열시키려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버락 오바마를 시작으로 빌 클린턴, 조지 HW 부시는 물론 95세의 지미 카터까지 민주·공화 할 것 없이 살아있는 모든 전직 미국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하고 국민 통합을 호소했다. 오는 11월 3일의 대선에서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이 어떤 모습인지를 이들이 잘 말해준다고 하겠다. 트럼프와 미국은 코로나19와 경제난, 인종차별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이다. 세계가 미국을 걱정하고 있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38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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