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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 “술은 신선식품” 수제맥주판 ‘마켓컬리’ 꿈꾼다 

 

콜드체인 유통구조 확립해 익일배송… “여러 주종 도전해 ‘동양의 와인’ 만들 것”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가 7월 15일 서울 성수동 매장에서 30여종의 수제맥주를 선보였다. / 사진:전민규 기자
수제맥주업체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지난해 CJ대한통운과 손잡고 전국 콜드체인 유통을 시작했다. 저온보관과 운송이 가능한 냉장차량으로 갓 생산한 맥주의 익일 배송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7월 15일 서울 성수동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브루펍에서 만난 김태경(41) 대표는 “술은 신선식품”이라며 “우리 맥주는 양조장에서 출고부터 점포에서 소진하는 데까지 3주가 채 걸리지 않아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수제맥주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2010년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부터다. 그는 그곳에서 100여 가지가 넘는 세계 각지의 맥주를 접했다. 본격적으로 맥주를 즐기면서 미국에서 와인의 소믈리에 격인 맥주 자격증 시서론(Cicerone)도 따냈다. 귀국 후에 직장을 다니면서 ‘맥덕(맥주 덕후)’을 자처하던 그는 6개월 간 네덜란드에 순환 근무를 갔다가 아예 업을 바꿨다. ‘수제맥주 천국’인 네덜란드를 비롯해 벨기에·독일 등지의 맥주 양조장을 누비면서 ‘라거 한 종류만 팔고, 마시는 우리나라 주류 시장을 바꿔보자’고 결심했다.

서울 성수동에 2016년 브루펍을 낸 것을 시작으로 5년째 사업을 펼치고 있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지난해 약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 규모로는 업계 10위권에 드는 성적이지만 시장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수제맥주를 유통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록 기준으로 40여종이다. 현재 이곳에서 만든 제품은 전국 150여개 수제맥주 매장에서 팔고 있다. 직영점에선 매일 자체 레시피로 만들거나 위탁 생산을 통해 공급받은 맥주 20여종과 외부 브루어리 제품 10여종을 마실 수 있다.

이 같이 다양한 수제맥주를 선보이는 것은 ‘수제맥주는 다양해야 한다’는 김 대표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곳에서는 사람손이 가는 홈브루잉 방식의 수제맥주 제조를 고수한다. 도심형 다품종 소량생산 맥주 브루어리의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회사 모토가 맛과 취향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 ‘테이스트(Taste)’다”라며 “뜻 그대로 맛과 취향 두 가지를 모두 잡으려면 우선 다양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어탭에서 갓 따른 수제맥주. / 사진:전민규 기자
수제맥주 시장에서 다양성이 왜 중요한가.

“회사에 다니던 사회초년병 시절, 회식을 할 때면 늘 기네스 맥주를 시켰다. 그때마다 동료들에게 ‘왜 그렇게 비싼 맥주를 왜 시키냐’는 핀잔을 들었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듯 술에 관한 취향도 모두 다른데 왜 유독 술만은 ‘소맥’으로 통일해야 하나. 국내에선 대기업이 주류시장을 꽉 잡고 있었던 탓이 크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사람들은 어차피 맥주 맛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맥주 맛을 모르는 게 아니라 똑같은 맥주만 파니까 제대로 된 맥주 맛을 모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대기업이 만드는 라거 맥주를 출시한 이유는.

“우리 경쟁상대는 수제맥주 업체가 아니라 대기업, 정확하게는 모든 주류회사다. 대기업이 생산하는 맥주가 라거에 집중돼 있어 소비량 역시 가장 많다. 대량생산하는 라거보다 비싸더라도 더 맛있고, 신선한 제품으로 승부를 보려고 출시했다. 다만 직영점에서 라거의 판매 비중은 10~15%에 불과하다. 대표제품인 ‘첫사랑IPA’가 30% 정도고, 나머지가 10% 내외로 비슷하다. 라거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맥주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다고 본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국내 맥주 업계 최초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한 업체다. 본엔젤스와 알토 스벤처스 등에서 투자를 받아 서울 성수동, 건대입구, 잠실과 송도 등 직영점 확장에 집중했다. 2018년에 받은 후속 투자로 지난해 이천에 연간 500만 리터 규모의 양조장을 설립하기도 했다. 올 초에도 한 차례 투자를 받았다. 경영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일했던 김태경 대표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일궜다. 스스로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를 ‘맥줏집’이 아닌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한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유통채널을 확장하는데 유독 적극적이다. 김 대표가 지난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수제맥주 배달전문점을 낸 것도 그 일환이다. 브루펍 대신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혼맥족’이 증가하는 트렌드를 반영했다. 배달점포에선 ‘첫사랑IPA’ 500㎖ 캔을 4900원에 팔았다. 직영점에선 300㎖ 잔에 담아 같은 가격에 팔린다. 술만 배달하지 못하는 법규상 치킨과 배달했다. ‘치맥전도’된 수제맥주 배달점포의 전국 프랜차이즈화를 꿈꿨다. 그러나 지난달 배달점포 사업을 모두 접었다. 매출이 부진해서가 아니다. 약 1000만원의 투자비용을 들인 논현동 배달 점포에서는 월 500만원을 웃도는 매출이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7월 1일부터 시행된 ‘주류 규제 개선방안’이 발목을 잡았다. 규제 혁신 차원에서 마련된 새로운 제도에 따르면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음식값을 넘지 않는 수준까지 술을 주문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1만5000원짜리 치킨을 시킬 경우 맥주도 1만5000원까지 함께 주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배달점포 고객 대부분이 맥주 서너 캔을 시키는데 치킨 가격은 2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며 “새로운 규제 하에서는 배달 방식으론 수제맥주를 팔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점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1년 만에 배달전문점이 실패로 돌아갔다.

“수제맥주 제조업체의 본질에 집중하는 차원에서 후퇴했지만 수제맥주 배달전문점은 충분히 시장성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업자가 뛰어들면 우리 맥주를 납품하는 형태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가장 큰 난관은 결국 유통채널의 문젠가.

“그렇다. 현재로선 소매점을 제외하곤 수제맥주를 팔 수 있는 채널이 편의점밖에 없다. 한때 수십 가지의 수제맥주를 진열하던 대형마트마저 쪼그라들었다. 창업 당시만 해도 다른 건 몰라도 농수산물·정육과 같은 신선식품 구입에서 만은 대형마트 채널의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조차 마켓컬리나 쿠팡과 같은 온라인 채널에 뺏겼다.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주류도 결국엔 신선식품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온라인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돼있다. 신선한 맥주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편의점 채널만으로는 한계가 있나.

“정확히 말하면 ‘네 캔에 1만원’이라는 판매방식에 한계가 있다. 편의점에서 한 캔에 2500원 이상인 수제맥주가 설 수 있는 매대가 없다. 우리 제품 중에선 그 가격에 팔 수 있는 맥주가 없어 홉 함유량을 낮추는 방식으로 편의점 전용 상품을 내놨을 정도다. 아무리 고가의 원료를 쓰고, 품질을 높여도 왜곡된 가격정책으로 인해 제 값을 받을 수가 없다. 수제맥주의 프리미엄화를 막는 최대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물도 브랜드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왜 유독 맥주만 한 캔에 2500원을 강요하는가.”

국내 판로 개척과 동시에 해외 진출도 서두르고 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최근 싱가포르 온라인몰을 통해 수출을 시작했다. 김태경 대표는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한류 영향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동남아시아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김 대표는 “스페셜티 커피의 경우 유럽에선 케냐원두가, 미국에선 남미 원두가 우세한 이유가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신선하고 질 좋은 원두를 공급받기 때문”이라며 “맥주도 커피처럼 신선식품이라는 점에서 우수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동남아 지역을 우선적으로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시작으로 동남아 시장 진출


▎전국 150개 소매점과 편의점 등에 공급하기 위해 캔맥주 형태로도 생산한다. / 사진:전민규 기자
맥주 외에도 다양한 주종에 도전할 계획이다. 직영점 매장에서 판매 중인 ‘알콜 스파클링’은 술이 들어간 탄산수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최근 몇 년 간 큰 인기를 끈 ‘하드셀처’라는 술로, 탄산수에 알코올을 섞고 향미를 첨가했다”고 설명했다. 맥주와 비슷하고, 와인보단 낮은 5%대의 도수가 특징이다. 이처럼 새로운 주종을 출시하는 것은 물론 탁주와 전통주 등 다양한 브랜드와 브랜드 라이선스(판권) 방식으로 협업해 유통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술맛 자체보다 음식과의 궁합이 좋은 술을 찾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와인처럼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 수제맥주가 늘면서 선택의 폭도 넓어졌고요. 마시고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닌 각자의 취향을 즐길 수 있는 맥주를 꾸준히 생산할 겁니다. 비단 맥주에 그치지 않고, 여러 주종에 도전해 ‘동양의 와인’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544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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