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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뉴딜, 배터리 ‘탈한국’ 못 막는다]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에 재생에너지 기반 無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해외서 RE100… “탄소 중립 목표 정해야” 지적

▎전기차에 탑재되는 중대형 배터리팩
정부가 ‘그린 뉴딜’을 발표하며 한국 경제를 이끌 ‘포스트 반도체’로 지목한 전기차 배터리가 실상 한국을 떠나고 있다. LG화학·SK이노베이션·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일제히 국내가 아닌 해외 투자에 힘을 쏟고 나섰다. LG화학은 올해 폴란드와 중국 설비를 증설해 생산 능력을 100기가와트시(GWh)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를 중심으로 증설을 진행,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을 20GWh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삼성SDI는 미국 디트로이트 배터리팩 공장 건설에 약 6000만 달러를 들였고, 헝가리 제2공장 증설을 확정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배터리 생산 ‘탈한국’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정부 주도의 국내 전기차 시장이 성장을 멈췄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전기차 6만5000대 보급을 목표했지만, 지난 1~6월까지 국내에 신규 등록된 전기차는 2만4164대에 머물렀다. 목표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팔린 전기차는 4만6966대에 불과했다.

RE100 여파, 해외 공장 아니면 수주 불가


반면 배터리 3사가 설비 투자를 늘리는 유럽 지역에서의 전기차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유럽 전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약 56만대로 전년대비 45% 증가했다. 특히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독일과 영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5%, 192% 급증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주요국 대부분이 2018년 12월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승용차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37.5% 감축하기로 정하고 전기차를 대안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영국은 2035년 내연기관차 생산 전면금지를 발표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유럽은 물론이고 국내 배터리 3사가 설비 확충을 진행하는 미국, 중국 등에서도 전기차 의무판매제 등을 도입하는 등 전기차 시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그러나 그린 뉴딜을 발표하고 연간 10만대 규모 전기차 시장 구축 계획만 선언할 뿐, 의무판매제와 같은 실질적인 시장 확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배터리 3사의 전기차 배터리 약정 수주액이 250조원이나 되지만, 정작 생산 공장 등 시설은 해외에 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배터리 3사는 해외 공장 가동이 아니면 수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몰렸다. 국내 배터리 3사로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받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재생가능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에너지 소비 방식을 전환하기로 정하고, 납품받는 배터리 생산에까지 재생가능에너지 소비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예컨대 BMW는 지난해 부품 조달과 영업 등 기업 활동 전체를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기로 정했다. 이후 LG화학에 전기차 배터리의 재생가능에너지 생산·납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LG화학은 BMW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계약을 포기했다. 기업이 국내서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직접 발전소를 구축하는 수밖에 없어서다. 아울러 국내에는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가 적고, 기업이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따로 구매해 활용하는 제도인 전력구매계약(PPA) 제도도 없다. BMW 외에 테슬라, 폴크스바겐, 볼보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기업 활동 전체를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는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선언한 것과 대조된다.

결국 국내 배터리 3사는 해외를 택했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해 볼보와 전기차 배터리 납품 계약을 체결하며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제품만을 납품하기로 했다. 국내 공장 대신 재생가능에너지를 구매해 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LG화학은 이미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가동 중인 폴란드 브로츠와프 배터리 공장 설비를 올해 말까지 60~65GWh로 늘린다는 방침을 정했다. 지난해 말 브로츠와프 공장 생산 능력이 40GWh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년 사이 60% 넘게 규모를 키우는 셈이다.

LG화학은 중국 공장 생산능력 역시 기존 15GWh에서 20GWh로 확대했다. 대신 한국 공장 규모는 유지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친환경 전기차는 생산 과정도 환경친화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배터리에도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한 제품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생산 능력을 갖춰 수주 물량을 확보해 시장 장악에 나서야 하는 국내 기업들은 당연히 해외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헝가리 코마롬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재생가능에너지 100% 생산 구조를 적용, 설비 확대에 나섰다.

재생에너지 설비는 제조업 경쟁력 기반

문제는 국내 기업의 제조 기반 ‘탈한국’ 움직임이 배터리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업계는 2018년 해외 공장만의 RE100 선언을 진행했다. 애플·구글 등이 RE100을 선언, 공급 사슬 전체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운영하겠다고 정했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 세계 메모리반도체 2위인 SK하이닉스는 2020년까지 한국을 제외한 해외 반도체 공장 소비 전력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조달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4개월 앞서 한국 외 미국, 유럽, 중국 사업장을 202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를 확충해 제조업 성장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 연구위원은 “스웨덴에서는 철강회사까지 수소에너지를 찾는다.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생가능에너지 인프라부터 깔고 봐야 한다”며 “15GW 규모로 현재 허가된 풍력·태양광 발전시설이라도 빨리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 “명확한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해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CS윈드와 같이 재생에너지 설비 부문 세계 1위인 국내 업체마저 한국을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44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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