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지역’ 확대는 곧 ‘풍선효과’ 확산… 작동원리 파헤쳐 연쇄작용 끊어야
▎정부가 6·17 부동산대책에 이어 7·10 대책을 발표했다. 이틀 뒤인 12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아파트 단지 내 부동산중개업소 게시판.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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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출범 3년 만에 21번째인 6·17 부동산대책을 내놨다. 풍선효과 근절, 규제지역 확대, 갭투자 차단, 재건축·법인 투기 근절 등을 위해 규제지역에서 대출·처분·전입 조건을 강화했다. 이에 부동산시장의 원성이 높아지자 이를 보완하는 22번째 7·10 대책까지 발표했다.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전방위적으로 부과한다는 조치다.부동산 가격 급등을 강력 규제하는 조치이지만 동시에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론 눈치를 보며 무리하게 정책을 강행하거나 수요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로 소급 적용해 정책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시중엔 20·30대는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고, 40대는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꿈을 포기하고, 50대는 세금 폭탄에 울고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우스갯소리로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수요·공급 불균형이 부작용 초래해어떤 정부든 집값이 급등할 때 급한 불을 끄려고 급히 규제 대책을 내기 바쁘다.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즉각적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규제 중심이다. 용역·재화 등 가격결정 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무시하다 보니 가격안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부동산은 일반 재화와 다르게 수요는 탄력적이지만 공급은 비탄력적이다. 그 이유는 부증성(부동산의 자연적 특성 중 하나로, 토지의 물리적 양을 임의로 증가시킬 수 없는 성질)과 개별성 때문에 공급이 대체 가능한 범위 내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부동산 공급은 준비기간뿐만 아니라 건설기간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지난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3년에 시작된 집값 상승 국면이 정부의 지속적인 부동산 대책에도 아랑곳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07년까지 대책들을 계속 발표했고 이 때부터 시장이 조금씩 침체되며 대량 공급을 위축시켰다. 공급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무분별한 신도시 공급보다는, 택지 개발과 재건축 등을 통해 아파트 공급량을 늘리고 동시에 다주택자 등이 기존 주택을 매매할 수밖에 없는 정책들을 내놔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두 가지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그렇다면 수요는 어떨까? 투기가 과열된 서울에는 무주택자와 공동주택 외 시설에 거주하는 수요가 상당하다. 규제가 강한 지역에서 발생한 풍선효과가 규제가 약한 지역의 집값을 무차별적으로 상승시킨다. 정부 규제가 강화될수록 투기과열 지역의 집값은 빨대효과처럼 상승하는 것이다.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모두 집값 상승이 높았던 곳을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선정했다. 정부는 풍선효과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집값 상승이 없었거나 낮은 지역까지 규제 대상으로 묶어 해당지역의 민심이 요동쳤다. 아파트 분양권의 경우, 조정대상과 투기 지역으로 전환되면서 전매 제한과 중도금 대출 규제로 입지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선 미분양이 대량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기존 25개 조정대상지역이 69개로 늘어 사실상 경기도 전역이 규제지역이 되면서 비규제지역과 경기도 김포·파주·양평 등은 벌써부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아 정부의 풍선효과 차단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올해 입주물량이 많지만 수요가 몰리면 내년부턴 공급물량이 따라가지 못해 집값이 오를 것이고 이것이 바로 풍선효과가 되는 것이다. 실질적인 문제점을 파악하지 않고 현재 상황만 제압하려는 대책들은 시장을 혼란에 빠트리며 그로 인한 풍선효과는 뜨거운 감자로 남을 것이다.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가장 큰 부동산 문제는 저금리와 유동성이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책만 추진되다 보니 시중의 풍부한 자금이 부동산 매수를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사상 최저 수준인 제로금리가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오고, 이는 경기침체와 소비침체를 주도했으며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가치상승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출이자 부담을 낮춰 자기자본이 충분한 투자자들로 하여금 이미 급등한 보유 주택 가격을 더 상승시키도록 여지를 준다. 코로나 사태로 신용보증기금·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은 기업 또는 개인에게 생계용 대출을 많이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용도를 제한하지 않는 대출로 발생한 돈이 전통자산(주식·채권) 또는 대체투자(부동산 등)에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코로나 사태로 기준 금리가 인하되자 4월 말부터 주택 매매가는 물론 전셋값까지 상승하고 있다. 동시에 주택거래량이 수도권을 기준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재건축단지도 가격 상승 조짐을 보인다. 재건축단지들이 풍부한 유동성을 등에 업고 추진을 밀어붙이는 이유다. 유동성과 인플레이션을 잡는 방법 중 하나가 금리 인상이지만, 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금리를 쉽게 인상하지 않을 것이다. 가계대출 이자 부담의 증가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저금리·유동성이 집값 급등 부추겨정부는 이번에도 갭투자 대응책을 발표했다. 투기꾼을 잡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좀 더 뜯어보면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악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타인자본(대출) 없이 자기자본으로만 집을 구입하라는 얘기인데,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현금을 갖고 있는 자산가들만 집을 구입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에서 청와대 사회수석을 연임한 김수현 전 수석은 저서에서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하면 보수 성향으로 바뀐다”고 언급했다. 진보정권은 궁극적으로 서민들이 중산층으로 바뀌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읽힌다. 실업급여 확대, 청년수당 확대 등 수많은 수당들을 주며 개천에서 영원히 살아가라는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으니 붕어·개구리·가재로 평생 살라는 것인가?어떤 사람들은 집값 상승의 원인을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신도시 공급 위주 정책, 신규 아파트 공급을 차단하는 정책, 중과세 정책으로 다주택자들이 전·월세 공급을 하지 않는 현상 등도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시장은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가 민심, 즉 지지율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정권 교체시점에 남 탓해버리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 필자는 상업용부동산 관리 서비스 기업인 백경비엠에스 투자자문 본부의 컨설팅 팀장이다. 정부 공공기관의 부동산 투자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부동산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부동산자산관리사(CPM)와 상업용부동산중개자문자격(SIOR)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