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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아울렛 20년 개척자,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 ‘슈퍼마리오’의 디자인은 계속된다 

 

‘까르뜨니트’로 일군 패션 외길 40년… 위기에 역발상으로 국내 아울렛 시장 개척

▎ 사진:전민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7월 30일 발표한 ‘2020년 상반기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체 유통업계가 소폭 상승을 이어가는 가운데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편의점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역성장했다. 특히 패션 쇼핑의 주요 채널인 백화점(-14.2%)은 대형마트(5.6%)보다 타격이 컸다.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유통업계는 온라인 쇼핑 강화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홍성열(66) 마리오아울렛 회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오프라인에 없는 상품만 온라인에서 팔라”고 주문했다. “발품 팔아 마리오아울렛을 찾은 고객들에게 온라인과 똑같은 상품을 팔 순 없다”는 것이 홍 회장의 지론이다. 마리오아울렛은 2016년 아울렛 최초로 전용 온라인몰을 오픈한데 이어 자체적인 관리 플랫폼을 개발,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듬해엔 모바일 앱 오픈으로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옴니 채널을 더했다. 온라인 유통을 강화하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췄음에도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오프라인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이유가 뭘까. 7월말 서울 가산동 마리오아울렛에서 그를 만났다.

“패션은 독특한 업종입니다. 일반적인 제품과 달리 패션 상품은 획일적인 기준으로 구매를 결정하지 않아요.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알 수 있는 소재의 특성과 디자인 디테일 등을 온라인으로 보여주는 데엔 한계가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업계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해외에서 패션 쇼핑을 즐기던 고객들이 국내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고객의 시선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 꺼진 구로공단이 ‘기회의 땅’으로


▎ 사진:전민규 기자
이 같은 홍성열 회장의 역발상은 국내 최초의 아울렛인 마리오아울렛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그가 패션 사업에 뛰어든 건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제들에게 빌린 200만원으로 편물기 4대를 산 홍 회장은 서울 대방동에 작은 니트 공장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의류업체 대부분이 외국 바이어들이 시키는 대로 제품을 만드는 ‘삯바느질’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나만의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 순 없을까.’ 패기 넘치던 20대 젊은 사장은 남다른 디자인의 니트를 생산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다, 그 결과 1985년 패션 브랜드 ‘까르뜨니트’가 탄생했다.

“일본 바이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니트 사업가의 길로 접어들게 됐어요. 1989년 일본 게이오백화점에 까르뜨니트를 론칭한데 이어 국내 백화점에도 25개의 매장을 냈죠. 니트는 추운 겨울에만 입는 옷이란 통념을 깨고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만든 발상의 전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밀려드는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구로공단에 공장과 사옥을 짓고, 스웨터 내수 판매와 수출에 주력했습니다.”

당시 일본 바이어들은 홍 회장을 ‘슈퍼마리오’라고 불렀다. 일본 닌텐도사가 1985년 개발한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가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바이어들 사이에서 “마리오 제품을 수입하면 다 팔린다”는 평이 나왔다. 홍 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문 약속을 지키고, 제품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일본까지 직접 찾아가 해결하는 성실함으로 신뢰를 받았다. ‘여름 니트’로 패션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의 역발상은 그저 패션 아이템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울렛’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 척박한 서울 구로공단에 정통 패션아울렛을 세우겠다는 결심은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이었다. 20년 간 패션업에 종사하던 그가 공장 부지를 알아보러 구로공단에 발을 들였을 때는 IMF 외환위기 직후였다. 경제 한파가 들이닥친 후 문을 닫은 공장이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해가 지면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다. 폐허나 다름없는 공장지대에 패션아울렛을 만들겠다는 홍 회장을 주변 사람들은 모두 뜯어말렸다.

당시 패션업계와 시장 상황은 어땠나.

“1987년 수해로 인해 서울 대방동에 있던 지하실 공장에 물이 들어찼다. 수출을 앞둔 옷들이 모두 망가져 어려움에 처했다. 앞으로는 무조건 높은 지대에 공장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 IMF 사태가 일어나며 망하는 회사가 줄을 지었다. 당시 우리 회사(까르뜨니트) 매장도 전국 60개 중 12개가 문을 닫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구로공단도 마찬가지였다. 봉제·섬유공장의 80%가량이 문을 닫아 매물이 넘쳤다. 90년대 말 구로공단 거리는 하루 10명도 채 지나다니지 않을 만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지만 나에겐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패션업을 하며 넓은 공장과 매장을 갖는 게 꿈이었던 내게는 지금이 공장 부지를 살 수 있는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렛 설립을 결심한 배경은.

“직접 패션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상품 재고와 유통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공단에 입주한 봉제업체 창고에는 재고가 쌓이고 있는데 반해 소비자들은 유통 채널에 한계가 있으니 백화점 등에서 비싼 가격에 제품을 사는 구조였다. 업체는 재고를 처리할 수 있고, 소비자는 싼 값에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통로가 절실했다. 해외 조사를 통해 체험한 아울렛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규제에 묶인 15년, 차별화 기회로 삼아


▎ 사진:전민규 기자
모두가 몸을 사리던 때에 홍 회장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 밀어붙였다. 홍 회장은 1999년 당시 공동화 현상을 보이던 구로2공단 내 효성물산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 산업단지공단과 입주계약을 체결했다. 주변의 위태로운 시선 속에 2001년 6월 마리오아울렛 1관이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4년, 마리오아울렛 2관을 오픈했다. 입점을 희망하는 브랜드가 많아진 데다 1관에 선보이지 못했던 신규 카테고리를 들여오기 위해서였다. 기존 건물인 1관 일부는 아울렛 형태로 운영하고, 바로 옆에 2관 건물을 지어 니트를 생산하고, 본사 제품을 판매했다. 이어 2012년 3관까지 오픈하며 불 꺼진 구로공단을 패션타운으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마리오아울렛엔 평일 10만명 이상, 주말엔 20만명의 고객이 찾고 있다. W몰에 이어 현대아울렛 등 대기업까지 이곳에 진출하면서 연매출 1조원 규모의 ‘가산패션단지’를 형성했다. 그 사이 서울 독산동, 가산동, 구로동 일대는 첨단IT·패션유통단지로 탈바꿈했다. 몸집만 커진 것이 아니다. 내실을 다지며 꾸준히 성장한 마리오아울렛은 지난해 매출 3300억원을 기록했다. 2001년 첫해 500억원이던 매출 규모가 20년 만에 6배 이상 커진 것이다.

사업이 순조롭게만 나아간 것은 아니다. 패션타운을 완성하기까지 “공장 지대에 유통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는 정부 규제로 기나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마리오아울렛의 역사는 그야말로 홍 회장이 맨땅에서 하나하나 일궈나간 개척의 역사다. 홍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고비를 넘으면서 깨달은 점은 속임수를 쓰지 않는 ‘정도경영’이 결국엔 정법이라는 것”이라며 “고객과의 약속은 결국 품질로 나타나고, 이는 마리오아울렛이 20년 동안 성장한 비결”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나.

“20년간 구로공단에서 사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이 일대를 패션타운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1960년 대 만든 국가산업단지법이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다. 공장 지대에 유통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는 정부 규제 탓에 1관부터 3관을 짓는 데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렸다. 심지어 ‘마리오 입주 계약 해지됐으니 마리오와 거래를 중단하라’고 산업단지공단이 5개 은행에 공문을 보낸 일도 있다. 심지어 (동일 건물 내에서 제조한 것만 판매해야 한다는 법 때문에) 내 제품을 내 건물에서 팔수도 없었다. 낡은 규제와 싸우느라 15년 간 산업단지공단과 실랑이를 벌일 때마다 힘이 빠진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새로운 길이 났는데, 옛 길로 돌아가라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일 아닌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규제로 인해 3~4년이면 될 일을 15년에 거쳐 하다 보니 그 사이에 패션 트렌드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각 관마다 차별화를 시도했다. 1관은 여성·캐릭터, 2관은 스포츠·아웃도어, 3관은 복합몰 형태를 띠고 있다. 내 본업이 패션이다 보니 좋은 브랜드를 더 좋게 만들어 소비자에게 합리적으로 제공하는 게 아울렛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오아울렛의 가장 큰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질 좋은 상품을 착한 가격에 구매하려는 가치소비 성향도 커진다. 요즘같이 어려울 때 이 같은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

마리오아울렛은 2018년 4월 대대적인 리뉴얼을 마치고 그랜드 오픈했다. 1·2관은 마리오아울렛, 3관은 마리오몰로 새로 단장했다. 특히 마리오몰 면적의 28%를 여가 문화 관련 콘텐트로 채우며 아울렛으로는 드물게 도심 속에서 입고 먹고 즐기는 ‘원데이 스테이(one-day-stay) 공간’을 추구했다. 서점과 VR게임장, 락 볼링장, 메디컬 키즈 카페를 더했다. 도심형 아울렛 최초로 아울렛에 몰을 더해 토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 것이다.

철 지난 해외 브랜드 대신 ‘싱싱한’ 국내 브랜드로 승부

최근 알뜰형·실속형 소비가 유행하면서 교외형 프리미엄 아울렛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7% 급증했고,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 역시 두 자릿수의 매출 신장률을 나타냈다. 롯데 교외형 프리미엄 아울렛도 매출이 5% 늘었다. 업계에선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들이 여유자금으로 명품이나 고가 해외 패션을 구매하기 위해 아울렛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프리미엄 아울렛이 명품에 대한 수요로 실적을 내고 있다. 마리오아울렛 역시 명품매장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마리오 1관을 오픈하면서 다른 프리미엄 아울렛과 마찬가지로 버버리·겐조 등 명품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적이 있다. 그러던 중 한 프리미엄 고가 브랜드에서 가품이 섞여 들어온 게 적발됐다. 유통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였지만 이를 계기로 명품 매장을 대부분 철수시켰다. 사실 패션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국내에 들어오는 해외 고가 브랜드 대부분은 출시된 지 한참 지난 물건이다. 패션은 디자인과 품질이 생명인데 오래된 제품은 아무리 명품이라 해도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린 돌고 돈 해외 고가 브랜드보다는 ‘싱싱한’ 국내 프리미엄 브랜드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프리미엄 아울렛과의 차별점은.

“1관 건물 전면 광고에 써놓은 글귀가 있다. ‘코리아 넘버원 패션 브랜드’가 그것이다. 해외에 나갔다 오면 아울렛에서 쇼핑하는 게 자랑할 만한 일인데 국내에선 아울렛에서 사는 걸 부끄러워하는 분위기다. 철 지난 해외 명품을 헐값에 산 걸 숨기고 싶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울렛이 가장 질 좋은 해외 고가 브랜드를 갖고 있진 않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는 모두 모아놨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교외형 아울렛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고,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점도 우리가 가진 경쟁력이다.”

지방이나 해외 출점 계획은.

“지방 대도시 대형 패션몰에서 마리오아울렛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손을 내밀 건 사실이다. 중국 시장 진출 역시 마찬가지다. 현지 기업으로부터 돈을 투자할 테니 마리오아울렛 브랜드를 달고 직접 경영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동안 많은 유통기업들이 준비 없이 지방에 진출했다가 위기를 겪는 모습을 봐왔다. 마리오아울렛이 이곳에 들어선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완벽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를 제대로 못하면서 둘을 욕심내진 않으려고 한다.”

지방 출점은 시기상조… “하나부터 제대로”

홍 회장은 인터뷰 내내 “나는 패션인”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울렛 시스템을 선구적으로 도입해 성공적으로 이끈 ‘유통업의 대가’지만 여전히 그 뿌리는 패션에 있음을 강조했다. 패션인으로서 작게는 가산 패션타운을, 크게는 국내 패션유통산업을 디자인한 홍성열 회장이 그리는 미래를 물었다.

“까르뜨니트를 창업한 시절부터 디자인부터 생산·경영까지 모두 다 내 힘으로 했습니다. 남과 다르게 하고 싶어 늘 새로운 걸 시도했습니다. 아울렛 사업에 뛰어든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사업 초창기에 일본 수출을 하면서 일본인이 가장 까다롭다고 생각했는데 이 업을 20년 동안 해보니 우리나라 고객만큼 관찰력과 센스가 뛰어난 곳도 없어요. 국내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마리오만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특색 있는 아울렛을 디자인할 것입니다.”

[박스기사] ‘대통령의 부동산’은 지금 -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매입해 화제…‘허브빌리지’는 새단장 중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은 ‘화제의 부동산’에 투자한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을 사들였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로 다음날 주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그는 “탁월한 위치에 비해 시세가 저렴해 매입했을 뿐 박 전 대통령이나 친박계 의원들과 접촉한 적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앞서 2015년 12월에는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 약 5만7000m²(1만7000여 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허브 농장 ‘허브빌리지’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곳은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소유였으나 검찰이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미납 추징금 환수 차원에서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2009년엔 전 전 대통령 부부가 5공화국 시절 고위관리들을 초청해 결혼 50주년 연회를 열었고, 검찰의 압수 수색 과정에서 고가의 미술품이 다수 발견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를 마리오아울렛이 118억원에 사들였다.

허브빌리지는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홍 회장은 “품격 있고 여유로운 가든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라며 “국내는 물론 전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가든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를 위해 홍 회장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 지휘를 할 정도로 열의를 갖고 있다.

홍 회장의 자연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마리오아울렛 매장 내·외부 공간에 마리오가든, 마리오 동물농장 등 자연공간을 조성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고향인 충남 당진에서 20년 전부터 개인농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고향에서 직접 농사지은 쌀을 고객들에게 증정하는 등 자연과 고객을 연결하는데 애정을 쏟는다.

홍 회장은 “호텔이나 펜션 같은 시설물은 오래되면 보수가 필요하지만 가든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하는 법”이라며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에서 방문객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완벽히 재단장해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547호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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