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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사무소’ 합법화로 문 열었더니] 산업정보 필요한 기업들 관심 나타내 

 

경찰·변호사업계는 위법 조장 우려로 반대… 가이드라인 마련 시급

▎탐정교육기관의 교육 모습. / 사진: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
'중국판 스타벅스’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중국 커피 프랜차이즈 ‘루이싱(瑞幸)’이 지난 6월 상장 폐지돼 나스닥에서 쫓겨났다. 한때 세계적인 큰손들에게 수 조원을 투자받아 승승장구했지만 회계 부정으로 하루아침에 일장춘몽이 됐다. 미국 투자조사기업인 머디 워터스 리서치와 미국 헤지펀드 머디 워터스 캐피탈이 루이싱의 허위 매출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보자의 보고서를 토대로 루이싱 매장을 약 1만 시간 분량의 비디오로 촬영했다. 이를 분석해 하루 상품 판매량과 평균 판매가를 비롯해 주문고객, 영수증 발행, 메뉴 포장 봉투 등의 개수를 계산해 매출액을 추산한 것이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한국판 루이싱’ 사건이 종종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탐정업을 신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규제 완화를 논의하고 있어서다. 탐정 업무가 활성화되면 외국처럼 국내에서도 기업 뒷조사가 흔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탐정 민간자격증 우후죽순 생겨나 혼란 가중

8월 5일 탐정사무소의 공식 오픈이 시작되면서 기존 민간조사(탐정) 업계와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흥신소·심부름센터·기획컨설팅 등으로 불리던 음지의 업체들이 공개적으로 ‘탐정’ 간판을 내걸고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수면 밑에 도사리던 기업 잠재수요가 꿈틀대고 있다.

관련법 개정안은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제40조의 마지막 금지조항으로 불리는 두 항목을 8월 5일부터 신용정보회사에만 적용하기로 개정한 것이다. 바로 제4호(특정인의 소재와 연락처를 알아내는 행위)와 제5호(정보원, 탐정, 이와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는 일)다.

바꿔 해석하면 신용정보회사가 아닌 업체(업자) 누구나 탐정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특정인의 위치와 전화번호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일은 아니다. 흥신소·심부름센터 업체들이 전부터 했던 일이다. 그간 불법으로 취급받다가 이번에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는 앞서 2018년 6월 ‘탐정 업무에 속하지만 금지하지 않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른 것이다. 이에 경찰청도 2019년 6월 ‘사생활 침해, 주거지 침입, 통신 보호 등의 개별법을 침해하지 않는 탐정업은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탐정업 민간자격증 등록을 허용했다.

이후 자격증 등록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민간자격 정보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6월말 기준 등록된 탐정 민간자격증은 27개에 이른다. 2017년 전까진 PIA민간조사사, 여론정보분석사, 탐문학술지도사만 있었다. ‘탐정’ 명칭 사용을 금지한 법 때문에 표현을 살짝 비튼 것이다. 이후 법 개정과 경찰청의 허용으로 2019년에 14개, 올해 10개가 새로 등록했다. 짧은 시간 안에 우후죽순 생기다 보니 탐정학술지도사·실종자소재분석사·자료수집대행사·생활정보지원탐색사·탐정물창작지도사·민간정보조사원·사설정보관리사·사실확인분석사·PIA민간조사원·PI민간조사원·민간조사사·사설정보수집대행사·특수정보조사원·사실조사분석사 등 명칭이 제각각이어서 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탐정업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여론은 대체로 우호적이다. 검찰·경찰이 인력·예산 부족을 이유로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나 중범죄에만 매달리다 보니 개인적 민·형사 피해는 늘 공권력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청소년·성인 실종사건만 해도 단순가출로 우선 판단해 경찰이 즉각 대응하지 않거나 사건이 장기화되면 손을 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를 보완할 해법으로 탐정업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경찰 수사구조 개혁 방안으로 탐정 활동의 영향을 연구한 이창훈 한남대 교수(경찰학)의 분석에 따르면 탐정이 협조할 경우 경찰 수사 전 단계인 13개 업무에 소요되는 392명 약 3323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수사 전 단계 업무는 증거자료 수집, 특정인 소재 파악, 탐문 조사, CCTV·신원·가출 정보 확인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활동이 대부분”이라며 “이를 탐정이 대행한다면 업무 유형에 따라 1인당 월 평균 8.5시간이 절약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분석했다. 이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사건 해결을 바라는 의뢰인이 개인 맞춤형으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고, 경찰의 눈치를 보며 속 끓이지 않아도 되는 수사 환경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쟁사분석·비리감찰 필요한 기업수요 증가


▎탐정교육 모습.
탐정 합법화에 기업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거나, 하더라도 몰래 했어야 했던 기업정보 사냥에 나설 수 있어서다. 탐정업체가 세무서에 정식사업자로 등록돼 기업 입장에선 의뢰와 거래를 투명하게 할 수 있게 된 점도 장점이다. 흥신소·심부름센터·기획컨설팅은 건달·깡패·전과자가 운영한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여전해 기업들도 아직은 조심스러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규제 완화 후 상담을 요청하는 기업 문의가 확실히 늘었다는 것이 탐정 업체들의 반응이다.

전문가들을 보유한 탐정업체들은 개인 의뢰보단 기업 의뢰를 더 선호한다. 개인 의뢰는 불륜, 사생활, 특정인의 소재·연락처, 도·감청, 보험 피해 등에 대한 조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기업 의뢰는 부동산 거래에서, 인수·합병, 채권·채무 현황, 지식재산권 피해, 산업기밀 유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를 통해 탐정업체는 경력을 쌓고 전문성과 활동영역도 넓힐 수 있어서다.

김두현 명탐정 대표는 “직원 공금 횡령이 발생하면 경찰에 알리기보단 탐정에게 의뢰해 소송까지 가지 않고 변상·징벌 등으로 내부에서 조용히 해결하고 싶은 게 기업의 생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시나 법인등기부에 나오지 않는 기업 정보나, 프랜차이즈 매매와 관련한 의뢰도 많다”며 “인수·합병을 앞두고 거래금액을 산정할 때 업체가 제시한 매출이 뻥튀기가 아닌지 조사해달라는 의뢰”라고 말했다.

기업도 적합한 경영과 마케팅 전략을 찾기 위해 탐정업체를 이용하는 편이다. 현재 기업들의 의뢰는 경쟁사의 현황이나 계약을 앞둔 상대 기업의 매출·채무·평판 파악, 내부 임직원의 부정·비리 감찰, 해외 도피 사범 추적, 해킹 등 사이버 피해 조사 등이 주를 이룬다. 탐정업체는 외국 교민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해 경쟁사의 해외 동향을 파악해주기도 한다. 기업의 보안활동 강화 등에 탐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해온 박상진 세한대 교수(경찰행정학)는 탐정에 대해 “법률팀을 꾸릴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영세한 벤처·중소기업이 부정·비리를 감독하고 기밀유출 등의 사고를 예방하는 데 있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 업계는 사생활 침해와 업무영역 중첩을 이유로 탐정 합법화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대형 법무법인(로펌)은 이미 탐정 출신 전문가를 영입해 기업 정보 조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법원이 심판에 필요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조사관을 두는 것과 같다. 임대료·직원고용 부담을 덜기 위해 홀로 활동하는 개인 변호사들도 탐정업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변호사가 사무원을 직접 고용·지시·감독해야 한다는 법규에 가로막혀 당장의 활용 가능성은 미지수다.

업계 자정·관리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탐정학 석·박사 과정을 처음 도입한 동국대의 강동욱 법무 대학원장은 “지금도 전문조사관을 채용하는 대형 로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역할이 탐정 업무인데 변호사 업계가 탐정 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탐정이 훗날 고용·피고용 관계를 벗어나 협력관계로 정착한다면 증거 조사는 탐정에게, 법률 판단은 변호사에게, 범죄 억제는 경찰에게 맡겨 치안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정부가 탐정 명칭을 허용했지만 업계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찰청이 ‘개별법 위반’과 ‘소송 중인 사건에 대한 증거 수집’을 각각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서다. 경찰청이 탐정업계를 관리하는 주무관청이지만 탐정 활동의 손발을 묶어 업체들이 불평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청 내부적으론 경찰력의 전문성 향상, 치안 사각지대 보완, 은퇴 후 준비를 명분으로 지난해부터 경찰들이 탐정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권장하고 있어 이해충돌을 보이고 있다.

탐정업체들은 실질적인 탐정법 도입을 원하고 있다. 지금은 신고만하면 누구나 탐정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전과자가 흥신소를 탐정으로 간판만 바꿔 달면 된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막기 위해 탐정업계는 전과자·정신이상자 차단, 건강한 자격을 선별하는 면허제 도입, 다양한 전문가를 위한 토대 마련, 법률 위반 행위 단속, 인허가제 도입, 의뢰인 비밀 보장 등을 담은 탐정법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호주에서 탐정자격을 취득한 유우종 한국민간조사중앙회장은 “호주엔 보증인 제도가 있어 탐정이 법을 위반하면 자격증을 뺏고 보증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며 “선진국처럼 국내도 기업들이 탐정에게 연간 관리비를 주고 경영활동을 정기 감독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v

1550호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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