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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맛’ 시리얼이 출시된 사연] ‘B급 마케팅’ MZ세대 사로잡다 

 

황당한데 웃음 나와… 식품업계, B급 유머 유튜브 동영상 제작 나서

▎(위) 7월 1일 농심켈로그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첵스파맛 광고 영상. (아래) 웃음 코드를 담은 일명 ‘병맛노래’ 형태로 소개된 부라보콘.
“미안~ 미안해~ 너무 늦게 파 맛 출시해서 미안해~” 가수 태진아가 파를 연상시키는 초록색 정장을 입고 노래를 부른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대파를 들고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이는 지난 7월 1일 출시한 농심켈로그의 신제품 시리얼인 ‘첵스 파맛’ 광고 영상의 한 장면이다. 이 광고 영상은 8월 14일을 기준으로 조회 수 254만회를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상상하기 쉽지 않은 ‘파맛’ 시리얼에 왜 사람들은 열광하는 걸까. 여기에는 제품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B급 감성 마케팅’ 전략이 숨어있다.

첵스 파맛 시리얼 탄생의 시작은 2004년 농심켈로그가 진행한 온라인 이벤트인 ‘첵스 초코나라 대통령선거’에 있다. 당시 농심켈로그는 후보자로 밀크 초코 맛 ‘체키’와 파맛 ‘차카’ 캐릭터를 앞세워 투표를 진행했다. 회사의 예상은 당연 체키의 승리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소비자들은 이벤트를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며 파맛 ‘차카’에게 표를 몰아주었고, 차카의 당선이 유력해 보였다. 그러나 농심켈로그는 중복투표 등의 이유로 초코맛 ‘체키’의 당선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부정선거’라는 말이 나왔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20년 7월 농심켈로그가 뒤늦게 첵스 파맛을 출시하자 온라인 소비자들은 ‘민주주의 승리’라고 말하며, 신제품에 환호하고 있다. 농심켈로그가 과거 웃고 넘길 법한 온라인 이벤트 에피소드를 신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로, ‘B급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재미없으면 패싱’하는 요즘 소비자

B급 마케팅은 말 그대로 A급에 못 미치는 마케팅이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마케팅이 A급 마케팅이라면 이보다 촌스럽고 또 어찌 보면 이상한 느낌마저 드는 마케팅을 말한다. 이는 최근엔 ‘도른자 마케팅’으로도 불린다. 미치지 않고선 절대 생각해낼 수 없는 마케팅, 일명 ‘돌은 자’들의 전략이라고 해서 도른자 마케팅이라 이름이 붙었다. 2004년 온라인 선거 이벤트에 첵스 파맛에 단체로 투표한 온라인 소비자도 이상하지만, 이에 맞춰 실제 파맛 신제품을 낸 기업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평가 속에서 모두 웃음을 자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믹한 콘텐트 탓에 깊은 생각 없이 나온 마케팅 전략 같지만, B급 마케팅에도 특징은 있다. 우선 ‘유머’다. 제품의 상세한 정보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지다. 최근 빙그레가 인수한 해태아이스크림의 ‘부라보콘’ 역시 B급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부라보콘은 신조어 ‘병맛’을 활용했다. 처음 봤을 때 어이없지만 이유 없이 웃긴 것을 말한다. 부라보콘이 구독자 16만명이 넘는 유명 SNS 크리에이터 ‘빨간내복야코’와 협업해 공개한 ‘병맛노래-고백하는 날’ 영상은 공개한 지 한 달도 안 돼 조회 수 60만회를 넘겼다. 영상 속 주인공이 이성에게 고백하려고 꽃다발을 꺼내려는 데 갑자기 부라보콘이 나오며 ‘광고주가 솔로라서 방해하는 거 아니다, 솔로 탈출 하지 마라!’ 등의 코믹한 노래가 배경에 갈린다. 영상에는 제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다. 그저 황당한 상황에 웃음만 나올 뿐이다.

홈플러스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홈플러스더클럽’ 계정 역시 B급 마케팅을 활용해 인기를 끈 사례다. 팔로워 수 3만5000명을 지닌 이 계정에서도 역시 판매하는 제품의 정보는 볼 수 없다. 노골적인 상품 홍보글도 없다. 상품을 의인화해 만든 이야기를 글로 보여주거나 제품 이름과 관련한 유머를 내세울 뿐이다. 예를 들어 홈플러스에서 판매하는 딸기를 광고하는 게시물에 ‘딸기가 실직하면 뭔지 알아? 딸기 시럽!’ ‘딸기가 학교 땡땡이치면 뭔지 알아? 딸기잼!” 등 언어 유희적인 유머만 보여준다. 또 다른 예로 고구마 호빵 광고 게시물에는 호빵을 학생으로 의인화해, 속이 노란 고구마 호빵이 일반 호빵들에 놀림을 당하는 글을 올리는 식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디지털 정보 흡수에 익숙한 MZ세대(1980~2000년생인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4년 Z세대를 아우르는 말)는 콘텐트를 볼 때 정보의 유용성보다 재미를 최우선 가치로 둔다”며 “이들은 재미가 없으면 바로 패싱하기 때문에 유머에 집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특징은 ‘권위와 체면을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B급 마케팅은 논리적이지 않고 맥락 없는 콘텐트로 시선을 끈다. 이는 정확한 정보 전달과 도덕적인 태도를 중요시하는 공공기관에서도 파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교육방송 EBS가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를 활용해 펭수 캐릭터를 선보인 영상들도 이에 해당한다. 펭수는 김명중 EBS 대표의 실명을 거론하는 등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며 웃음을 만든다. 이는 기존에 딱딱한 교육방송이라는 EBS 이미지를 재미있고 유쾌한 방송이라는 이미지로 인식을 바꾸고 있다.

2018년 충주시청의 고구마 축제 포스터도 당시에 화제였다. 고구마를 든 캐릭터 골룸이 등장하고, 고구마로 형성화한 사람이 ‘호우! 축제 고우! 고날두!’라고 외치는 그림 등 체면을 내세우지 않는 B급 마케팅 전략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충주시청 고구마 축제는 전년 대비 방문자 수가 두 배가량 늘었다.

소기업의 스몰 브랜드 키울 마케팅 전략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기성세대는 어느 정도 검증되고 공인된 대기업의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는 영향이 크지만, 요즘 MZ세대는 소비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며 “어릴 적부터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 이들은 수동적으로 콘텐트에 노출되기보다는 ‘검색’을 통해 자신들이 흥미로운 콘텐트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믿을만한 기업의 브랜드냐가 중요하지 않다. MZ세대는 현재 자신의 기분을 띄우는지, 마음에 드는지 등이 주요 소비 기준”이라고 말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B급 마케팅은 더욱 소비자로부터 인기를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생존싸움’에 대한 인식이 강해졌다. 이 때문에 소비에서도 세련되고 고품격인 제품보다 촌스럽더라도 실용적인 것을 찾는 경향이 커질 것”이라며 “현재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B급 마케팅이 대세지만 앞으로는 소기업에서 운영하는 작은(스몰) 브랜드의 B급 마케팅도 주목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1550호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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