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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미국 대선과 경제] “뽀인트는 감세와 일자리야” 트럼프식 홍보 마케팅 

 

‘경기부흥=대선승리’ 아는걸까… 오롯이 경제 치적 앞세워 유세 주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21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유세 때 지지자들 앞에서 춤을 추며 코로나19를 앓았던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1932년 이후 미국에선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경기 후퇴를 겪지 않은 이상 재선에 실패한 적이 없다.” JP모간자산운용 글로벌 시장전략가 마리아 파올라 토스치의 말이다.

토스치의 말대로 경제와 미국 대선은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현직으로서 재선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은 제럴드 포드(공화·1974~77년 재임), 지미 카터(민주·1977~81년), 조지 HW 부시(공화·1989~93년)가 있다. 제럴드 포드는 1973년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의 사임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에 지명됐다. 미국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는 대통령이 지명하며, 부통령이 임기 중 궐위돼도 대통령이 후임을 지명한다. 포드는 이듬해인 1974년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을 피하기 위해 사임하면서 대통령에 올랐다. 미국 역사상 대선을 거치지 않고 부통령·대통령을 모두 맡은 유일한 인물이다.

포드가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미국은 경제 침체를 겪었다. 경제성장률이 1974년엔 -0.54%로 전년에 비해 -6.19%포인트를 기록했다. 1975년에는 -0.21%로 0.34%포인트가 회복됐을 뿐이다. 선거가 치러진 1976년 경제성장률은 5.39%로 전년도에 비해 5.59%포인트가 나아졌으나 국민이 이를 체감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이미 지친 생태였다. 경제 위기를 치료하지 못한 것이 포드 재선 실패의 주요 원인이 된 셈이다. 게다가 워터게이트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공화당 정권이 이를 극복하고 민주당의 새 인물인 지미 카터를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카터는 50.1%의 지지율로 297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으며, 공화당의 포드는 48.0%의 지지율로 240명을 확보했다. 주 원인은 낮은 경제 성적표다.

포드를 이은 지미 카터도 재선에 실패했다. 카터는 흔히 1979년 이란 혁명에 이어 발생한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 해결에 실패하는 바람에 재선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은 미국인 50여 명이 1979년 11월 4일부터 1981년 1월 20일까지 444일 동안 테헤란의 미국대사관 등에 인질로 잡혀있던 사건이다. 미국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카터는 구출작전을 시도했지만 헬기 추락 등으로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만일 구출이 성공했다면 카터가 재선할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역사에서 가정은 없는 법이다.

카터는 1980년 대선에서 41.0%를 득표해 50.7%를 얻은 로널드 레이건(1981~89년 재임)에게 패배했다. 확보 선거인단 차이는 더욱 커서 489명 대 49명이었다.

포드·카터·부시 줄줄이 낙선 원인은 마이너스 경제

카터는 사실 경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란 혁명과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이 없었더라도 유권자들이 외면했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카터의 임기 첫해인 1977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4.62%로 전년도에 비해 -0.76%포인트를 기록했다. 경제가 뒷걸음친 셈이다. 1978년에는 5.54%로 전년도에 비해 0,91%포인트가 나아졌지만, 1979년 3.17%로 전년도에 비해 -2.37%포인트를 기록했다. 경제가 계속 뒷걸음질한 셈이다. 심지어 카터가 재선을 위한 대선을 치르던 1980년에는 -0.26%로 숫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3.42%포인트라는 임기 중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았다. 재선에 실패한 카터의 초라한 경제 성적표는 미국 대선과 경제와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재임 1993~2003년)에 밀려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 부시’ 조지 HW 부시(1989~93년)도 경제 문제에 발목이 잡힌 경우다. 아버지 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1989년)의 부통령으로 있다가 그의 뒤를 이어 공화당 정권 연속 3기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임기 내내 경제 성적표가 영 신통치 않았다. 1989년 3.67%로 전년도에 비해 -0.50%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해인 1990년에는 1.89%로 -1.79%를 기록했다. 인기 셋째 해인 1991년에는 -0.11%로 숫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전 년도보다 -1.99%포인트를 기록했다.

부시의 초라한 경제성적표는 대선에서 민주당이 대선에서 화력을 집중한 급소가 됐다. 클린턴 선거본부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를 선거구호로 내세웠다. 대선이 치러진 1992년 미국 경제는 전년도보다 3.63%포인트 높은 3.52%의 성장을 이뤘지만 때는 늦었다. 클린턴의 선거구호는 유권자의 심리를 자극해 정권 교체를 이끈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부시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몰아낸 걸프전(1990년 8월~1991년 2월)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군사외교의 우등 성적표가 경제의 낙제점을 벌충하진 못했다. 부시의 지지율은 걸프전 승리 직후인 1991년 3월 90%에 이르렀지만 경제가 나아지지 않으면서 1992년 8월 64%로 떨어졌다. 1992년 대선에서 클린턴은 43.0%, 부시는 37.4%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선거인단은 각각 370명과 168명을 확보했다.

후버 낙선과 루스벨트 당선 가른 경제 대공황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 10월 18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토스치가 말한 1932년은 미국 대선에서 경제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해로 기록된다. 대공황(1929~39년) 때문이다. 이 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45년 재임)가 대통령에 첫 당선한 선거를 치렀던 해다. 민주당의 루스벨트는 193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현직 대통령이던 허버트 후버(1929~33년 재임)를 물리치고 당선했다. 후버 대통령은 미국 역사는 물론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최대 경제위기였던 대공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재선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 등으로 대공황에 성공적으로 대응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수공업 붐을 바탕으로 미국 경제를 다시 살려낸 인물이다. 2차대전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개인적인 정치·정책 능력을 바탕으로 그는 미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4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를 상징하는 간판 경제정책인 뉴딜은 1933~39년의 1차와 35~36년의 2차로 나뉜다. 1차 뉴딜 정책에서 루스벨트는 금융개혁, 긴급안정 자금, 일자리 안정, 농업 보조, 국가경제회복기구(NRA)를 통한 산업개혁, 연방 차원의 복지 정책을 펼쳤다.

금본위제와 금주법을 폐지한 것도 뉴딜 정책의 물결 때문이다. 금주법은 술의 제조와 판매는 물론 운반과 무역도 금지한 엄격한 법으로 미국 개신교계의 압력으로 1919년 이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8조를 미국 의회가 비준하면서 발효됐다. 의료용 알코올과 가톨릭 미사에 쓰이는 포도주 정도만 남게 됐다. 스페인계 주민이 이뤘던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등의 전통적인 포도주산업도 붕괴를 맞게 됐다.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법으로 막을 수 없었다. 금주법은 술의 불법 제조와 유통, 비밀 술집의 번창, 그리고 지하에서 이를 관리한 범죄 조직인 마피아 세력의 팽창을 가져왔다. 결국 1933년 이를 폐지하는 수정헌법 제21조가 생기면서 금주법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 당시 주류 불법 거래로 막대한 자금력을 확보하고 조직을 확대한 마피아와 갱 조직은 금주법 이후 마약으로 눈을 돌려 오늘날 미국이 마약으로 고통 받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금본위제는 통화가치를 안정시키지만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나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의도적인 화폐가치 평가절하가 곤란한 면이 있다. 미국이 대공항 시기에 이를 폐지한 이유다.

2차 뉴딜에서 루스벨트는 공공사업진흥국(WPA)을 설치해 850만 명을 고용하는 대규모 건설 공공사업을 펼쳤다. 관청·도서관·학교 등 공공건물과 도로·다리·댐 등 공공 기반시설이 이 시기에 건설됐다. 여성들은 도서관 사서와 재봉사로 고용했다. 예술가들을 고용해 공공 미술과 공연 등을 활성화했다. 사회보장 확대, 노동조합 지원, 보조금 지급 등은 이후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일부에선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별 효과가 없었으며, 2차대전의 덕을 봤을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뉴딜 정책은 루스벨트 하면 떠오르는 가장 강력한 이미지로 남았다. 대공황에 대처한 경제정책은 루스벨트의 대선 연속 승리를 이끈 견인차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역사적인 교훈을 잊지 않고 있거나, 경제와 선거와의 관계에 대해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입원 끝에 열흘 만인 10월 12일 선거운동을 재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정열적인 유세를 계속하고 있다. 공격적이었고 날카로운 현장 연설은 트럼프가 표를 모으는 가장 강력한 그물 노릇을 한다는 평이다. 트럼프가 연설 막바지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선거구호를 외치면 참석자들이 일제히 연호하면서 유세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다.

경제논쟁으로 바이든에 연타 날리는 트럼프 유세

트럼프는 1시간 가까이 계속되는 유세 연설에서 크게 3가지를 외친다. 가장 강조하는 것이 경제 업적이다. 트럼프는 ‘세금’과 ‘일자리’를 계속 강조하며 자신의 감세 정책과 일자리 문제 대처를 자랑한다. 감세는 중산층의 표를 모으는 최대 흡인 요인으로 평가된다. 트럼프는 연일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집권하면 세금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표까지 만들어가면서 바이든의 증세 증책으로 인한 주별 ‘피해’ 전망을 보도한다. 트럼프의 세금 논쟁에 밀렸는지 민주당은 부랴부랴 “연수입 40만 달러 이상만 세금이 오를 뿐 그 이하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해명자료를 내기에 이르렀다. 세금을 줄이니 복지를 늘릴 수가 없다.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오마바 케어는 조만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트럼프의 정치다. 일자리도 트럼프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일자리 숫자가 다시 반등하면 모두 자신의 치적이라고 자랑한다. 트럼프식 홍보 마케팅이다.

트럼프 선거 유세에서 또 다른 단골은 상대 후보인 민주당의 바이든이 집권하면 좌파 정책, 사회주의 정책을 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좌파나 사회주의에 알러지를 가진 사람이 많은 미국 유권자를 자극하는 발언이다.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규제와 통제가 많은 유럽식 사회주의 정책을 펼 것이라고 유권자엑 압력을 준다.

트럼프의 유세 연설을 들어보면, 바이든 후보를 “급진적이며, 좌파이고, 병들었으며, 관념론자(Radical, left, sick, ideologist)”라고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바이든을 “사회주의자(Socialist)”, “역대 최악의 후보(Worst candidate ever)”라고 맹비난한다. 아예 바이든을 “미친 조(Crazy Joe)”, “졸린 조(Sleepy Joe)”라고 조롱한다.

아킬레스건 코로나19 정책, ‘근자감’으로 포장

트럼프가 연설에서 셋째로 강조하는 사항은 자신의 아킬레스건일 수 있는 코로나19 문제다. 그는 이를 거론하며(코로나19를 양성 판정을 받고 입원했던) 자신이 지금 “기분이 좋고 수퍼맨처럼 기운이 넘친다(I feel so good, feel superman)”이라고 강조한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지지자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가 터져 나오기 일쑤다. 이어 곧 치료제가 나올 것이라며 “내가 여기 있다(I’m here)”라는 것을 증거로 제시한다. 트럼프 유세를 보면 미국에서만 2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19는 더는 문제가 아닌 듯하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는 경찰력 유지를 강조한다. 트럼프 유세장 곳곳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경찰들(Cops for Trump), ‘법 집행 지원(Support for law enforcement)’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트럼프는 그들을 향해 “여러분들이 민주당에 권력을 준다면 급진주의자 바이든은 경찰을 무력화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당지지 지역에서 경찰 예산을 삭감한 것을 지적한 발언이다. 트럼프가 바이든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면 지지자들은 “우리는 당신을 원한다(We want you)”라는 구호를 연호한다.

트럼프는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문제에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을 주는 듯한 자신의 정책이나 조치가 유권자를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유세에선 미·중 무역전쟁을 별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경제 문제는 큰 요인이지만 글로벌 경제보다 국내 경제 문제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트럼프 임기중 경제성장률은 2017년 2.22%로 전년 대비 0.65%포인트 성장, 2018년 3.18%로 전년 대비 0.97%포인트 성장, 2019년은 2.33%로 전년 대비 -0.85%를 기록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상당한 뒷걸음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57호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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