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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국민 분열 조장하는 미국 대선] 미국 대선, 축제에서 정쟁으로 바뀌다 

 

화합의 용광로에서 분쟁의 전쟁터로 변모… 깊어진 민심분열 치유 선거 후 숙제로 남아

▎뉴욕 경찰들이 10월 21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 중 반항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2020년 미국 대선은 이 나라의 분열상을 노출하는 또 하나의 행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은 인종별, 지역별, 거주지별, 수입별, 학력별로 심각한 분열 상태다. 미국에서 선거는 전통적으로 이런 갈등을 드러내면서 한바탕 경쟁을 한 뒤 서로를 이해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정치적인 축제 역할을 해왔다. 대선은 갈등이 아닌 화해의 촉매제였다. 그러던 것이 수 차례 대선을 거치면서 미국은 분열의 나라로 변모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선 그 수위가 특히 심하다.

프랑스의 국제 채널인 프랑스24는 미국이 이번 대선에서 정치인은 물론 커뮤니티와 심지어 가족 간에도 심각한 정파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갈등이 끓어 넘치고 있다고 표현했다. 미국은 왜 이렇게 갈등의 나라가 됐으며, 이번 대선 후 어떻게 이를 치유해야 할까.

미국은 오랫동안 다양한 인종과 배경,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녹이는 ‘용광로’로 불렸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민주주의·인권·상호존중·기회균등·시장경제의 가치 아래 다양한 집단을 한 나라로 묶어왔다는 이야기다. 다름을 하나로 묶으면서 시너지를 발휘했다는 평가다. 그러다 융합보다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공존하는 ‘샐러드’로 변화했다. 서로 융합까지는 않더라도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공존공영을 모색하는 사회라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미국은 지지하는 대선 후보나 정당이 다르면 서로 얼굴을 맞대기도 싫어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서로 증오하고 혐오하는 ‘정쟁의 나라’로 변하고 있다. 서로 배경이나 생각이 다른 상대를 이해와 소통, 대화와 융합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적이나 다름 없이 여기고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진영 “우편투표 불신” 개표 혼란 우려

프랑스24는 올해 대통령 선거운동이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간, 또는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대결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도시와 농촌, 흑인과 백인, 가난한 사람과 부자, 심지어 마스크 대 비마스트 간의 대결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좌파와 우파, 리버럴(민주당 성향)과 보수 간의 간격이 이번 대선만큼 선명한 적이 없었다는 평가다.

퓨 리서치센터가 등록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10월 1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그 심각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투표소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고 안전하게 운영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79%(매우 33%, 상당히 47%)에 이르렀다. 그런데 트럼프 지지자는 91%(매우 53%, 상당히 38%)가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바이든 지지자는 70%(매우 17%, 상당히 53%)여서 차이가 21%포인트에 이르렀다.

‘미국인들은 이번 대선 결과를 선거일 하루 이틀 안에 알게 될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전체의 50%(매우 15%, 상당히 34%)가 그럴 것이라고 답했는데 트럼프 지지자는 48%(매우 16%, 상당히 32%)가, 바이든 지지자는 50%(매우 15%, 상당히 35%)로 차이가 2%포인트에 지나지 않았다. 대선 개표에선 정파와 무관하게 미국 행정력의 공정성과 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평가한다는 의미다.

‘모든 개표가 끝난 뒤 어떤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했는지가 분명해질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의 66%(매우 22%, 상당히 44%)가 그럴 것이라고 답했는데 트럼프 지지자는 55%(매우 13%, 상당히 42%)가, 바이든 지지자는 76%(매우 30%, 상당히 47%)로 차이가 21%포인트에 이르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번 대선 뒤 결과에 대한 승복을 두고 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우편투표로 송부된 투표지가 시간에 맞춰 개표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의 52%(매우 13%, 상당히 39%)가 그럴 것이라고 답했는데 트럼프 지지자는 33%(매우 7%, 상당히 26%), 바이든 지지자는 67%(매우 18%, 상당히 49%)로 양 후보 지지자 간의 차이가 무려 34%포인트나 됐다. 우편 투표에 대한 우려가 양 진영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는 조사 결과다.

트럼프는 이번 유세 과정에서 “우편 투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왔는데, 지지자들도 그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 조사 결과는 현재 미국 대선에서 뜨거운 이슈의 하나가 되고 있는 우편투표 제도에 대한 양 진영의 생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노동자·젊은층 참여 높일 우편투표 선거쟁점 점화


▎시위대가 9월 29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대통령 토론회장 앞에서 흑인 인권 보호를 외치며 트럼프 대통령에 항의하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우편 투표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이 투표할 것을 우려한 주장일 뿐이라는 게 민주당 지지자들의 평가였다. 우편투표는 국토가 넓어 자동차를 타지 않고는 투표장에 가기 힘든 지역이 많은 미국의 특성을 감안한 제도다. 자동차가 있어도 이동 약자인 노약자는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람을 위해 마련된 것이 우편투표다. 이에 따라 과거에 이뤄진 우편투표자 성향 조사에서는 특별 정파에 대한 선호도가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투표하기 힘든 사람을 위한 순수 행정 서비스의 성격이 강했다.

게다가 걷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투표장에 접근하기가 수월한 대도시 지역에는 오히려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편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큼지막한 주택에 여유롭게 거주하는 교외지역이나 땅이 넓은 농촌 지역은 공화당 텃밭이다. 우편투표의 원래 취지나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만 보면 트럼프가 예민하게 나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우편투표가 원래 취지대로만 활용되지는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누구나 우편투표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표 당일 현장에 가는 대신 자기 시간을 갖거나 딴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 근무 시간에 자리를 비우기 힘든 노동자들도 이를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편투표는 젊은이나 노동자들이 활용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돕게 됐다. 선거운동이 격화하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투표하자는 운동이 뜨거워지는 상황에서 우편 투표는 노동자와 젊은층의 높은 투표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미국 대선에서는 투표하는 방식이 크게 세 가지다. 선거일 이전에 투표하는 부재자 투표와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보내는 우편투표, 그리고 선거 당일 현장 투표다. 부재자 투표와 우편 투표는 사전투표에 해당한다. 미국의 상당수 주는 선거일 이전에 사유를 밝힐 필요 없이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다. 일부 주에서는 명확한 사유를 밝히고 미리 신청해서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다. 미국에는 지역마다 투표 제도가 다르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투표 제도가 바뀌는 곳이 많다.

트럼프는 지난 24일 자신의 주소지인 플로리다 주에서 사전 투표를 했다. 자신의 골프 클럽이 있는 웨스트팜비치의 투표장에서 투표한 뒤 자신에게 한 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해 주소지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부동산 사업 중심지인 뉴욕에서 자신 소유의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로 옮겼다.

트럼프, 2016 대선서 역전승 선물한 플로리다로 이사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10월 21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행진하는 동안 반대 시위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여기에는 정치적인 배경도 있다. 알려진 대로 플로리다는 미국의 주요 경합주 가운데 선거인단 숫자가 29명으로 가장 큰 주다. 538명으로 이뤄진 미국 대통령 선거인단은 주별로 보면 캘리포니아주가 55명으로 가장 많고, 텍사스주가 38명, 플로리다주와 뉴욕주가 각각 29명으로 그 다음이다. 일리노이주와 펜실베이니아주가 각각 20명이며, 오하이오주가 18명, 조지아주와 미시간주가 각각 16명, 노스캐롤라이나주가 15명의 순이다. 이 가운데 캘리포니아주는 1992년 대선 이래 줄곧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텍사스주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한 1980년 이래 공화당만 지지한다. 트럼프의 고향인 뉴욕주는 1988년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만 지지해왔다.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는 1964년 이후 1988년까지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1992년 민주당으로 선회한 뒤 지난번 2016년 대선까지 한결 같이 민주당만 지지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1992년 이후 6차례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로 돌아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오하이오도 마찬가지다. 조지아주는 1996년 대선 이래 공화당만 밀어온 공화당 안정주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밀렸다. 하지만 선거운동 막판에 트럼프가 플로리다와 함께 우세를 회복해 뉴스를 탔다.

게다가 플로리다주는 트럼프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막판 역전을 거둔 3개주 가운데 하나다. 당시 여론 조사 결과를 종합할 때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20명)에서 3.4%포인트, 미시간(16명)에서 3.4%포인트, 위스콘신(10명)에서 6.5%포인트 뒤졌지만 선거 결과 펜실베이니아 0.7%포인트, 미시간 0.3%포인트, 위스콘신 0.7%포인트를 오히려 앞섰다. 60명의 선거인단을 ‘역전승’으로 확보한 셈이다. 실제 득표율과 평균 여론조사와의 차이는 펜실베이니아 2.6%포인트, 미시간 3.7%포인트, 위스콘신 7.2%포인트에 이르렀다. 여론조사의 오류인지, 트럼프가 막판 유세와 선거운동으로 대세를 뒤집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는 ‘샤이 트럼프’나 ‘히든 트럼프’의 존재를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인용됐다. 트럼프가 플로리다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는 이 밖에도 애리조나 3.5%포인트, 노스캐롤라이나 3.7%포인트, 조지아 5.1%포인트, 오하이오 8.1%포인트, 아이오와 9.5%포인트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이들 주는 여론조사 평균치보다 트럼프의 실제 득표율이 높았다. 그 차이는 애리조나 0.5%포인트, 노스캐롤라이나 2.7%포인트, 조지아 0.3%포인트, 오하이오 4.6%포인트, 아이오와 6.5%포인트에 이르렀다.

플로리다주는 흑인들이 투표권을 확고하게 얻은 1964년 투표법 이후 처음 실시된 1964년 대선 이후 단 한 차례를 빼고는 모두 당선자에게 표를 몰아줬다. 일종의 족집게 주인 셈이다. 1992년 민주당의 신예 빌 클린턴 후보가 재선을 노리던 공화당의 현직 대통령 조지 HW 부시를 누른 선거가 유일한 예외다. 지난 2016년 대선 때도 트럼프의 손을 들어 줬다. 트럼프가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민심 분열 정파 갈등 심화 지난 대선 모습 반복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구성을 2016년 투표자 통계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미국은 무척 다양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인종별 인구 비율은 백인 70%, 흑인 12%, 아시아계 4%, 유대인(사실은 인종이 아닌 종교) 3%다. 종교를 보면 개신교 27%, 가톨릭 23%, 모르몬 1%, 기타 기독교 24%로 기독교를 모두 합하면 75%에 이른다. 이외에 유대교 3%, 기타 종교 7%, 무종교 15%가 있다.

정치 성향에 따라서 리버럴(진보) 26%, 중도 39%, 보수 35%로 나뉜다. 지지 정당은 민주당 37%, 공화당 33%이고 무당파가 31%다. 교육별로는 고졸 이하 18%, 대학 수학 32%, 대졸 32%, 대학원 이상 18%다. 가구별 연 수입은 5만 달러 미만 36%, 이상 64%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거주지는 도시 34%, 교외 49%, 농촌 17%다. 지역별로는 북동부 19%, 중서부 23%, 남부 37%, 서부 21%다.

문제는 미국 요인 별로 투표성향이 극명하게 분열된다는 사실이다. 2016년 대선에선 백인과 중도파, 기독교도, 중·고소득층, 중서부·남부 거주자, 농촌주민, 대학 재학 이하 학력자 등이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줬다. 비백인과 저소득층, 동부·서부·북부 거주자, 고학력자들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이런 성향은 이번 대선에서도 차이가 없다. 트럼프 4년을 경험한 미국은 별 바뀐 것 없이 원래의 이런 분열 성향을 다시 한 번 연출하고 있다.

미국에선 대선 뒤 ‘누가 되더라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분열의 상처는 깊다. 국가적, 아니 인류의 재앙인 코로나19 대응을 놓고도 정파끼리 분열되고 마스크를 쓰는 문제를 놓고도 분열과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 미국이다. 언제까지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과 재선을 위해 정략적으로 이를 유발한 것이라는 비난을 할 수 있을까. 미국 사회 어딘가에 고장이 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고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유권자들의 분열과 분노, 그리고 정파간 갈등과 증오의 목소리를 정책의 기준점으로 생각할 경우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런 미국의 정책은 미국 안에서 머물지 않고 국제 정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세계가 미국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2020년 대선을 마친 미국은 이제 분열을 봉합할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58호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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