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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혁신의 서포터, 김창섭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전통 제조업 혁신·유지해야 성공적 탄소중립” 

 

탄소중립은 산업 정책… 전통 제조업 집약된 울산의 혁신이 중요

▎김창섭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울산의 제조업 혁신이 탄소중립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진:전민규 기자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파리 기후협약 복귀를 천명하면서 탄소중립(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일본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등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각국의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제 탄소중립은 가야만 하는 길이 아니라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평가한다. 우리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건 상태다.

12월 18일 만난 김창섭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우리 제조업을 혁신시켜 유지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성공적 탄소중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에선 탄소 중립을 위해 석유화학, 철강 등의 전통 제조업을 포기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며 “지역경제·일자리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통 제조업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린 전환’을 꾀하는 것이 탄소중립의 본질이자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건 조성되면 제조업의 에너지 전환 가능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탄소 배출에 일종의 관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하는 등 탄소중립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월 1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탄소중립은 어려운 과제이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김창섭 이사장 역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이견이 없는 최종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이사장은 “일부에선 203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불가능한 목표”라며 “2050년 탄소중립은 비가역적으로 설정된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특수한 사정이 있으니 탄소중립 목표치를 줄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탄소중립 목표치를 지켜야 하느냐는 논란이 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로 설정된 탄소중립을 벗어나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더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탄소중립의 본질은 제조업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한국은 제조업으로 먹고 사는 제조업 국가인데, 제조업의 상당수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라며 “문제는 고(高)탄소 체제라는 이유로 제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당장 탄소중립을 위해 휘발유 자동차를 퇴출시킨다면 수십조원에 달하는 유류세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결국 우리 제조업을 향후 30년 동안 저탄소 체제로 어떻게 전환시킬 것이냐가 탄소중립 정책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또 “산업이 자발적으로 탄소를 줄이는 수준으로는 우리가 약속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보이는 손’인 정부가 적극 나서 제조업 혁신을 유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 제조업의 역동성이 여전히 살아있고 제조업 경쟁력 또한 인정받고 있어, 정부가 여건만 조성해주면 제조업의 에너지 전환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의 지적처럼 대표적 고탄소 산업인 정유·석유화학업계에선 “현 상황에선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비전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다. 에너지 전문가들 역시 “정유업계가 정부가 제시한 탄소중립 목표를 이행하려면 공장을 멈춰 세우는 것 말곤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평가한다. 고탄소 제조업에서 걷히는 세금을 이들 산업의 에너지 전환 혁신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이사장은 “결국 탈탄소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전기요금과 세제를 얼마나 정상화했냐는 것”이라며 “한국전력이 최근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1월부터 연료비 등락을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한다.

김 이사장은 탄소중립을 위한 제조업 혁신과 관련해 “과감하게 말해 울산이 바뀌면 다 바뀔 수 있다”며 울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19년 에너지공단 본사가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김 이사장은 에너지공단 울산시대의 첫 이사장이 됐다. 김 이사장은 “정유·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전통 제조업이 집약된 도시인 울산이 제조업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 한국 탄소중립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울산 제조업이 바뀌면 대한민국 탄소중립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울산 제조업 혁신의 중요성 등을 감안해 직제 개편을 통해 울산 중심의 지역 전담팀을 신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에너지공단은 야전부대, 인력·예산 탓 안해

탄소중립이 당위가 아닌 실천의 영역으로 진입한 만큼, 국가 에너지 효율 등을 총괄하는 에너지공단의 책임도 무거워지고 있다. 에너지업계 일각에선 에너지공단의 업무 확대에 맞춰 인력이나 예산 등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이사장은 “에너지 전환을 실행하는 에너지공단은 일종의 야전부대”라며 “야전군이 병력이 적다, 탄환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수용할 정도로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단 우리 직원들 하나하나를 정예요원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지금 에너지공단은 숙제는 많고 힘은 약한 상태라 겸손하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결국 탄소중립을 실행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에너지 대전환 시기에 접어들면서 에너지 효율뿐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복지 등 탄소중립을 둘러싼 분야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이들 분야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생태계는 조성돼 있지 않다”며 “취임 후 지금까지 ‘KEA 에코 시스템’ 구축을 강조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KEA 에코 시스템은 기술 혁신형 에너지 효율 강화 시책과 인센티브, 인프라 지원 수단 등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국가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인터뷰 내내 에너지공단 직원들을 ‘후배’라고 부른 그는 에너지공단 출신 첫 이사장이다. 에너지공단을 떠난 이후 한국산업기술대, 가천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에너지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에너지 대전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그는 에너지공단의 첫 에너지 창작 뮤지컬인 ‘쏠라맨과 펑펑마녀’ 홍보를 위해 단역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67호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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