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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 불행은 시작된다 

 

‘정인이 사망 사건’… ‘자기기만’, ‘계획오류’가 인간을 괴물로 만들 가능성 높아져

▎ 사진:pixabay
새해 한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사건 중 하나는 입양아 ‘정인이 사망 사건’이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사건이지만 연초 한 방송사의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통해 자세한 사연이 알려졌다. 많은 이들을 경악과 분노로 이끌었다. 나는 여기서 그들의 심리에 대해서 말할 생각이 없다. 이 사건에 관해서 이미 알려진 것 이외에 내가 더 아는 것도 없고 굳이 덧붙이고 싶지도 않다. 이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들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부부가 지난해 2월 입양 결정을 내리기 전, 자기들이 아이를 입양하면 그 아이를 보살피기는커녕 계속 학대하다가 결국 죽일 것이며 그 결과 지금처럼 사회적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릴 것을 예상했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이들은 자기들이 아이를 제대로 보살필 태도나 심성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이 선행과 자선으로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부부는 화목한 입양 가족 사례를 보여주는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 자랑스레 출연하기도 했다.

“큰딸(친딸)은 10달을 기다려 만났다면, 작은딸(정인)은 몇 년을 기다리고 기도해서 만난 아이다.” “입양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축하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기만’으로 자신의 허물 덮어

이번 살인의 공범 양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아이의 얼굴에 비비탄 총을 쏴댄 인간이다. 이 부부는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학대가 분명한 행동을 아이에게 저지르면서도 이를 별로 숨기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SNS에도 자랑하듯 학대 사실을 올렸다. 그 와중에 다른 아동학대가 벌어진 시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만약 자신들이 어떤 인간인지, 그래서 앞으로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았다면 입양을 그렇게 자랑스레 떠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부는 결코 자신이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걸 모르니 자기들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 결과 가만히 있었으면 그저 주변에 소소한 피해나 입히고 지냈을 인간들이 결국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들은 감방에 들어가는, 자멸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지능이 낮아서일까? 이들은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다. 적어도 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할 수 있는 수준의 지능은 갖추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남자는 괜찮은 직장에서 별문제 없이 일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수준의 상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들은 극히 일부 요소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자들이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는 점은 우리도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엘리엇 애런(E.Aronson)은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모든 동물보다 거의 유일하게 뛰어난 능력이 거짓말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생활은 거짓말로 점철되어 있다. 어찌나 거짓말을 잘하는지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이를 흔히 자기기만(self deception)이라 부른다. 자기기만의 대부분은 자아를 지키고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남들이 뽑은 복권보다, 내가 뽑은 복권의 당첨 확률을 더 높게 평가한다. 무작위로 결정되는 일에서조차 나는 남들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여기는 거다. 의견 충돌이 벌어지면 상대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보다 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여긴다. 자기기만은 우리가 부당한 행위를 당당히 저지를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부정적인 미래 예상하지 못하는 청소년 범죄 저질러

주변을 둘러보라. 직장에서 하급자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상사들이 그걸 학대라고 생각하던가. 조직을 위해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나섰을 뿐이라거나, 하급자에게 선배로서 따끔한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던가. 서비스 사업장에서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리는 자들도 자신이 지금 진상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헌신하는 시민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자기기만은 그런 옳다는 믿음의 근간이다.

자기 행동의 결과를 예측 못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이 직면할 현실의 장애들은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서 논문을 준비하는 심리학과 학생들에게 자신이 논문을 완성하는 데 걸릴 시간을 예측하게 했다. 이때 논문이 최고로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그냥 평균적으로 진행될 경우, 그리고 모든 일이 꼬이는 최악의 경우로 나누어 예상해보도록 했다. 그리고 실제 그 학생들이 논문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서 비교했다.

그 결과, 학생들이 논문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들이 예상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평균 7일 이상 더 길었다. 이런 경우를 ‘계획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부른다. 청소년 범죄를 연구한 심리학자 하젤 마커스(H.Markus)는 부정적인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어처구니없는 범죄를 저지르곤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지금 저지를 일로 인해서 자기 인생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산재 사망자를 만들어내기로 계획하는 사업장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매년 900명 이상이 그런 사업장에서 죽어 나간다. 결국 참혹한 버전의 계획오류인 셈이다.

끔찍한 짓을 저지른 부부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누구든 저지르는 자기기만이나 계획 오류가 잘못된 상황이나 잘못된 상대를 만나 선을 넘으면 우리도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제도나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경제 규모에서 이탈리아를 넘어서고, 문화적으로도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코로나19를 통해서도 한국의 시스템이 가진 강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 두 지표는 사회에서 약자의 생명과 그들의 미래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여전히 갇혀있는 어두움이 무엇인지, 왜 벗어나야 하는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해준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69호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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