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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혁신 돕는 딥테크 강자들] 박성재 엑셀로 대표 

극한 제철소에서 견디는 IoT 기술 

스마트폰으로 자동차 문을 열고, 가전제품도 작동하는 세상. 하지만 제철소는 IT 소외지다. 고온의 쇳물이 오가고 쇳가루가 날리는 탓에 버텨낼 하이테크 기기가 거의 없어서다. 엑셀로는 제철소 첨단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엑셀로는 쇳물 등 뜨거운 물질을 받는 내화물에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적용하는 기업이다. 박성재 대표는 “제철소가 쇳물 정보를 통제하는 순간 고급강 생산도 늘리고, 생산시설 투자비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지난 3월 9일 중국 최대 국영 철강회사 바오우강 그룹 산하 제철소 고로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중국 매일경제 등에 따르면 전날 밤 10시 22분(현지시간) 상하이 바오산(寶山)구에 있는 바오강(寶鋼) 제철소의 제4호 고로에서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당국은 고로 내부의 관이 손상돼 고온 기체가 분출하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 2017년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후판 공정에 스마트 인더스트리 플랫폼 ‘포스프레임’을 도입했다. 포스프레임은 공정 곳곳에 카메라와 센서를 가동해 고로의 출구, 연소대, 원료 상태, 온도 등 여러 데이터를 모은다. 유해가스, 소음, 온도 등 현장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작업자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모든 데이터는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생산 공정을 최적화한다.

두 가지 상황이다. 제철소는 원료를 녹이는 거대한 가마솥 격인 고로, 1600도가 넘는 쇳물,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담는 320t짜리 통인 래들(ladle) 수백 개가 오가는 곳이다. 노후된 설비를 제때 바꾸지 못하거나 관리하지 않으면 대형 폭발 사고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제철소는 수많은 카메라와 센서를 동원해 공정 프로세스를 첨단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쇳물이 닿는 고로와 래들 내부 상태는 알 수 없다. 박성재(44) 엑셀로 대표는 여기에 주목했다.

“내화물이라는 게 고온에도 견디는 물질, 그러니까 쇳물을 담으려면 일종의 도자기(세라믹) 재질의 통이 필요하거든요. 고로, 래들 등 제철소 공정 수많은 곳에 쓰입니다. 그런데 수명을 알 수가 없습니다. 도입한 시기를 따져서 교체 시기를 가늠할 뿐이죠. 수천 개 래들이 떠다니며 쇳물을 나르는데 위치조차도 잘 모릅니다. 카메라 속 영상을 보거나 작업자가 맨눈으로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센서나 IT 장비가 고온에 견디질 못해서죠.”

지난 4월 13일 엑셀로 주주인 ICTK 판교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철소도 한국 반도체, 자동차 제조업 공장처럼 IT 시스템을 접목할 순 없을까’란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IT기업을 창업해 운영하던 박 대표는 부친이 운영하는 광양의 내화물 제조기업에서 일하면서 호기심을 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박 대표는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나오는 고로, 쇳물을 담아 나르는 래들, 100m 넘게 이어진 생산라인을 오가는 슬래브도 500도가 넘는다”며 “뜨거운 쇳물에 십수 년간 달궈지고 식길 반복하는 제철소 환경에서 견뎌낼 장비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가업을 잇다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박 대표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융합 시스템인 IRS(Intelligent Refractory System)를 탄생시켰다. 박 대표의 아이디어는 고로 설비업체인 룩셈부르크 풀워스(Paul Wurth)사가 먼저 알아봤다. 전 세계 상위 100여 개 제철기업의 고로는 모두 이 회사의 손을 탔다고 할 정도다. 2016년 풀워스가 주최한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서 ‘인더스트리 4.0’ 부문 1위를 했고, 이듬해 엑셀로를 설립하고 한국 중소벤처기업부 창업 지원 프로그램 TIPS에 선정됐다. 2019년엔 포스코와 ‘고로 내화물 잔존량 측정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다른 철강기업과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

어떤 원리이길래 세계적인 회사가 손을 잡았나.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고로, 래들, 러너 철피(외벽)와 내화물(세라믹) 사이 층에 얇은 철망을 촘촘하게 설치한다. 쇳물이 내화벽을 뚫고 철망에 닿으면 전기가 통한다. 외벽에 붙은 IRS와 선으로 연결돼 전기신호를 포착해 쇳물이 침투한 시간, 위치, 깊이 등의 데이터를 전송한다. 아주 간단한 원리다. 풀워스 관계자들도 “내가 왜 이제껏 이 간단한 생각을 못했지?”라며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철강기업들이 공정관리 기술 개선에 매년 수천억, 많게는 수조원을 쓰고 있다.

유사한 제품도 없었나.

그렇다. 원리는 간단한데 숱한 장비가 고로나 래들 주변에서 녹아버렸다. 제철소엔 래들이 수백 개, 많게는 천여 개 이상이 공장 곳곳을 다닌다. 래들 하나 무게만 300t에 달하고, 온도는 안쪽 1600도, 바깥쪽은 400~500도 정도다. 애당초 제철소에선 설비에 IT 장비를 갖다 붙일 생각을 안 하더라. 스마트한 개념은 꼭 하이테크에만 있는 게 아니라 로테크에도 존재한다. 내화물을 청동기 때부터 썼는데, 이 속에 담는 쇳물을 컨트롤할 장치가 아직도 없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

제철소 관계자가 쉽게 장소를 내어줄 리 없다.

그렇다. 제철소 환경은 상당히 터프하다. IT 신기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작업자들에겐 쇳물을 보는 육감적인 느낌이 서려 있고, 외부 기술엔 매우 폐쇄적이라 생산 공정 자체를 바꾸자고 하기도 어렵다. 광양제철소 1고로만 해도 1987년 가동을 시작해 올해로 33년째다. 신기술 장비 하나 달겠다고 고로를 4~5일 멈추면 재가동에 3개월이 걸린다. 그 기간에만 약 120만t에 달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8000억원이 넘는 손실이 생긴다. 어쭙잖은 IT 장비를 들고 가면 쫓겨나기 십상이다.

IRS 장비, 테스트하자마자 통했나.

그렇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데이터들이 IRS 장비를 통해 쏟아졌다. 아이디어대로 설치하면 명확한 데이터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제철소 환경이 워낙 터프하다 보니 일정한 데이터를 쌓는 게 간단하지 않았다. 관건은 데이터분석이다. 내화물에 설치하는 센서, IRS 장비 모듈, 모니터링 시스템 모두 정밀한 데이터분석을 해내지 못했다면 만들 수 없었던 제품들이다.

현장 근로자들 반응은 어땠나.

현장 관계자는 ‘래들에 부착한다’는 말부터 믿지 않았다. 400도가 넘는 외벽에서 버틸 장비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실제 과거에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며칠 만에 부품이 녹는 일이 허다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IRS 장비가 테스트에 들어가자 주위 시선이 변했다. 이왕 장착한 거 위치, 온도 같은 정보도 알 수 있냐고 물었다. 쇳가루가 많아서 래들에 크게 쓰여 있는 번호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면서….

다른 효과는 없나.

제철소마다 고부가가치 철강제품을 뽑아내는 일종의 레시피가 있다. 이 레시피대로 고급강이 나오려면 온도 데이터를 꽉 잡고 있어야 한다. 어차피 장기적으로 저가형 제품은 중국 제철소에서 쏟아질 것이 자명하기에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제철소는 고급강 생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품질에 따라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우리는 고로, 래들은 물론, 쇳물이 흐르는 러너까지 적용이 가능해서 전체 공장 설비 내구도를 평가하는 것은 물론 일정한 온도 통제가 가능하다.

원리가 간단한데, 경쟁자가 없겠나.

처음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에 답이 있다. 센서 역할을 하는 철망이 아무리 가늘어도 쇳덩이, 쇳물이 가득한 제철소 내엔 교란 신호가 많다. 이게 테스트 노하우이자 데이터분석 기법의 토대가 된다. 몇 년간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교란 신호를 걸러내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에서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노하우다.

인터뷰 일주일 전에 엑셀로는 포스코 고로에 적용하는 IRS제품을 공식 납품하는 계약을 맺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공룡 같은 제철소가 돈을 주고 살 만한 물건이라고 인정해준 것이다. 박 대표도 기대가 컸다. 제철소 한 곳만 봐도 대략 내화물 설비만 5000여 종에 달하고, 매년 8000억원씩 쏟아붓는 분야다. 제철소 공정의 75% 이상이 내화물과 연관돼 있다고 보면 된다. 박성재 대표는 철강이 한국 산업의 동맥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정리했다.


▎박성재 대표가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3강 공장 내 IRS 테스트 현장을 보여주며 IRS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철강산업 같은 제조업보다 돈 된다는 IT 분야에만 사람이 몰립니다. 저조차 가업을 잇기 위해 광양에 내려왔을 때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죠. 하지만 현장에서 뛰어보니 철강산업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열망이 강해졌습니다. IRS도 포스코의 협조가 없었다면 세상 빛을 볼 수 없었죠. 제철소도 같은 열망을 지녔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202005호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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