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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혁신 돕는 딥테크 강자들] 박별터 씨드로닉스 대표 

인공지능으로 선박 주차 돕는 시스템 

요즘 나오는 차량은 사방을 차 안에서 볼 수 있는 어라운드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주차가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길이만 200m가 넘고, 수천억원이 넘는 선박엔 이런 시스템이 없다. 변화무쌍한 바다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씨드로닉스는 해양산업 안전 분야에 주목했다.

▎씨드로닉스는 선박 접안보조 시스템을 개발해 도선사와 항만 관계자들이 안전하게 접안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박별터 대표는 “무인선박 개발을 목표로 쌓은 제어·센서·분석 기술 노하우가 사업이 됐다”고 말했다. 화면 속 사진은 선박에 설치된 AVISS가 모바일 기기에 전송한 영상.
얼마 전 부산신항에서 사고가 있었다. 지난 4월 6일 오후 부두에 접안 중이던 15만t급 컨테이너선이 부산신항 2부두의 크레인에 부딪혔다. 2부두 8번 선석(배를 대는 장소)의 안벽 크레인 5기 중 1기가 완전히 무너졌고, 다른 1기도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복구 기간은 수개월, 운영사 손해는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해상 사고도 있다. 지난 2017년 미국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이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함정이 부서지고 승조원 7명이 숨졌다. 일본 도쿄 남서쪽 시즈오카현 이즈반도에서 20㎞ 정도 떨어진 바다에서 미국 이지스함 피츠제럴드호와 필리핀 선적 컨테이너선 ACX크리스털호가 충돌했다. 작전 상황이 아닌 밤에 이지스함이 일반 레이더와 근무자들의 육안에 의지해 운항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흔치 않은 해상사고지만, 한번 일어나면 그 피해는 상당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이유가 있다.

“육지와 바다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장애물의 종류도 완전히 다르고, 불규칙하게 몰아치는 파도 위에서 장애물을 분리해 인식해야 합니다. 그 밖에 각종 부유물, 그물, 크기와 종류가 다른 선박 등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장애물이 넘쳐납니다. 장애물을 발견해도 배를 돌리는 데 자동차보다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지난 4월 13일 서울 강남 공유오피스 마루180에서 만난 박별터(34) 씨드로닉스 대표가 말했다. 그는 “선박 산업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이며, 씨드로닉스가 만든 선박 접안보조 시스템(AVISS, Around View Intelligence System)의 센서 모듈을 보여줬다. 자동차 주차를 돕는 어라운드뷰 시스템의 카메라 센서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물론 씨드로닉스가 만든 제품이 훨씬 더 정교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박 대표가 항만 내 시설물에 설치해 선박이 접안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이 화면에는 선박 간의 간격, 선박과 부두 간의 거리, 속도, 주변 장애물 등의 정보가 뜨고 도선사와 부두 작업자에게 모바일로 제공된다. 선박에도 직접 설치할 수 있어 조타실에서 선박 주위 상황을 모니터로 볼 수 있다.

정부와 기관도 씨드로닉스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2018년 울산항만공사는 해양 분야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씨드로닉스에 자금 지원, 테스트베드 부두 지원, 사무실 제공 등의 혜택을 줬다. 올해 2월엔 해양수산부의 해양수산 신기술 인증까지 획득했고, 인천항만공사도 항만 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AVISS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해외 항만 수출에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 선박으로 자율운항까지 꿈꾼다는 박 대표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선박 산업에 뛰어든 스타트업, 힘든 분야 아닌가.

카이스트에서 전자와 건설을 전공했다. 학부 졸업 후 로보틱스를 연구하다 보니 자동차, 선박, 드론 등 무인으로 작동할 수 있는 모든 이동수단에 관심이 갔다. 그중에서도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고, 경쟁자가 없는 시장에 뛰어들고 싶어 선박을 택했다.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었다. 2015년 대학원 동기 4명과 함께 회사를 차리고 어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해파리를 제거하는 드론, 무인 선박 등을 만들었다.

시장 반응은 어땠나.

기술 자체는 인정받았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다. 드론의 정찰 기술, 이미지 분석 기술에 무인 선박이 장애물을 인지하고 피하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항법 기술까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파리를 잡는다고 하니 사업성을 의심하는 이가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현장에서 이미 진행 중인 사업도 많았다. 완전 무인화도 아직은 먼 기술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게 대형 선박인가.

그렇다. 이것도 대형 선박을 완전 무인화하는 쪽에서 자율 운항기술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보조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무인 자율화를 이루는 ‘인지’, ‘판단’, ‘행동’ 세 가지 축에서 ‘판단’ 일부와 ‘행동’을 뺐다. 항만 관계자들이 대형 선박을 항만에 접안하는 일이 상당히 위험하다고 알려줬다. 그전까지 연봉 1억 이상 받는 도선사가 쉽게 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별다른 시스템 없이 도선사의 경험 노하우와 기술만으로 접안하기에 리스크가 컸다. 보조 시스템 개발로 가닥을 잡은 까닭이다.

제품 개발이 한결 수월해졌겠다.

아니다. ‘인지’를 정교화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이 시스템엔 인공지능 연상 인식 기술과 여러 센서를 조합한 모듈 기술이 핵심이다. 카메라가 바다와 육지에서 선박을 식별하고 센서는 파도 높이, 선박 속도, 장애물과의 거리 등을 파악해야 한다. 기초 데이터가 필요했다. 투자자금으로 동해·서해·남해를 다니면서 화물선·낚싯배·요트 등을 빌려 수백만 장의 해상 데이터를 수집했다. 데이터를 수집한 후 모듈 센서가 항만에서 제대로 작동할지 확인할 테스트베드가 필요했고, 울산항만공사를 찾아갔다.

울산에서 테스트해보니 어떻던가.

200m 길이의 대형 선박이 들어오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다. 울산항만공사가 테스트베드를 제공해준 덕분에 인공지능 기술은 한층 정교화됐다. 현재 울산을 비롯해 여수 등 테스트베드를 최대 다섯 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항만의 형태가 다르고 들어오는 선박의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다. 도선 방식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 이를 모두 데이터화하고자 한다. 기기도 종전보다 훨씬 더 최적화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적화’란 어떤 의미인가.

해상이나 항만 상황은 날씨에 민감하고, 한 치 앞 상황을 내다보기 어렵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보다 극한의 상황에서 센서 기기 한곳에서 모두 처리해야 한다. 서버를 연결하고, 고성능 컴퓨터를 연결해야 시스템이 온전히 가동한다면 비상 상황에선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통신이 끊겼을 때를 고려해서 모듈 시스템을 소형화, 안정화, 독립화하는 데 주력했다.

도선사들 반응은 어땠나.

반응이 좋았다. 도선사들의 기술 이해도는 놀랍도록 높았다. 우리가 시도하려는 취지도 금방 공감했다. 항만에 나와보면 알겠지만, 도선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다. 바다 상황은 그만큼 예측 불허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도 많이 내줬다. 현재 접안 모니터링 시스템 외에도 충돌 경보 시스템, 통신이 온전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독립형 인공지능 신경망 기술도 개발 중이다.

씨드로닉스는 조선업 같은 중후장대 산업이 스타트업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스타트업이 있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한 발 늦은 산업도 기회를 맞을 수 있다. 박 대표도 “기술 스타트업이면서 시장과 보폭을 맞추기 위해 무인선박에서 선박 접안보조 시스템 개발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사업 아이템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씨드로닉스는 인천항, 부산항, 울산항, 여수 광양항 등 한국 4대 항만을 넘어 전 세계 메이저 항만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시장성도 좋다. 인천항, 부산항, 울산항, 여수 광양항 등 한국 4대 항만만 해도 선석만 1000여 개가 넘고, 전 세계 메이저 항구로까지 넓히면 6만 개에 육박한다. 여기에 어라운드뷰 시스템을 갖추고자 하는 대형 선박 수까지 포함하면 비즈니스 기회는 훨씬 커진다. 박별터 대표는 그간의 소회를 이렇게 전했다.

“기술과 목표를 고집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투자자부터 수많은 현장 관계자의 얘기를 귀담아들었습니다. 방향을 바꿔가며 기술은 차츰 정교화됐습니다. 울산항만공사도 지원해줘서 상용화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시스템은 한국을 넘어 해외 항만업계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중후장대한 산업은 스타트업에는 훨씬 진입장벽이 높을 것 같지만, 막상 진출하면 스타트업의 신기술을 애타게 찾는 곳이 많을 겁니다. 불모지가 곧 기회입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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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호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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