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곁에 둬야 할 사람, 멀리해야 할 사람 

 

대놓고 악의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해로운 말과 행동을 할 뿐,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명분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역사책을 읽다 보면 종종 현명했던 군주가 간신배들한테 둘러싸이더니 총기를 잃고 암군으로 전락하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아니, 딱 봐도 구린 사람들인 거 알 수 있었을 텐데, 저렇게 똑똑했던 사람이 어떻게?’ 정말 궁금했지만 어릴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왜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해로운 ‘인의 장막’에 갇히게 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물론 아닐지도 모른다. 방심은 금물, 방심은 금물!) 하나,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곱절로 어려워진다. 둘, 사람의 진가는 시간이 흐르고 모든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지쳐서 마음의 평화를 잃었을 때, 우리는 평소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쳐냈을 사람을 가까이 두게 되고,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콧방귀를 뀌며 일축했을 말에 흔들리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궁지에 몰린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현명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가장 현명해야 할 때 가장 경솔하기 쉬운 게 사람이라니, 참 얄궂다.

그러나 제정신을 유지하더라도, 사람의 가치를 통찰해내는 것은 어렵다. 대놓고 악의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해로운 말과 행동을 할 뿐,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명분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개인적으로 사람을 가까이 둘 때 가장 조심하는 유형이 있다면, 내가 아니라 나와의 관계만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이들은 내가 잘되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신 나와 잘 지내는 데에 관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나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 내 선택이 옳다고 말해준다. 내 입장에 공감해준다. 그래서 이들은 나에게 정서적 평화를 준다. 하지만 동시에 아집과 어리석음도 준다.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다 곁에 두기 좋은 사람은 아니다.

반대로 곁에 두려고 애쓰는 유형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들 역시 내가 잘되는 데에 관심이 없는 것은 비슷하다. 만약 내가 우리의 공통 가치를 더는 추구하지 않게 되면, 이들은 내게 쓴소리를 하거나 심지어는 떠나갈 수도 있다. 이들과의 대화는 때로는 아프고, 이들과의 동행은 종종 버겁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매달릴 만한 가치가 있다. 나의 초심을 지켜주고, 탈선과 변질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딱 봐도 별로거나 멋진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쉽게 걸러질 것이고, 알아서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6월호에 썼듯이 판도를 가르는 것은 회색 지대에서의 선택이다.

-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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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호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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