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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이 된 픽스아트, 어도비 대항마 되나 

 

호바네스 아보얀이 창업한 무료 사진 편집 앱 픽스아트는 기업가치를 15억 달러로 인정받고 투자금 1억3000만 달러를 모집하면서 틱톡·인스타그램 세대의 포토샵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 초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성장기를 보낸 호바네스 아보얀(Hovhannes Avoyan·56세)은 국영 예술학교 진학을 꿈꿨다. 그러나 입학 시험에서 제출한 화병 정물화는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그가 대안으로 선택한 창의적 학문은 바로 컴퓨터과학이었다. 그렇게 그는 1세대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을 배우기 시작했다.

결과는 아주 환상적이었다. 이후 30년간 아보얀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3개를 창업하고 매각했다.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됐고, 아르메니아에서 움트기 시작한 기술산업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리더가 됐다.

그러나 아보얀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열정이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예술가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1년 어느 날, 당시 11살이었던 딸 자라가 침울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SNS에 그림을 올렸다가 남들이 쏟아낸 악플을 보고 기가 죽은 것이다. 자라는 꿈을 포기하려 했다. “자신감을 잃은 거죠. 포기하려 했어요.” 아보얀이 말했다. “과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예술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했던 제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아보얀은 딸을 위해 그림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툴이 담긴 모바일 앱을 개발했다. “딸에게 좀 더 긍정적인 환경을 열어주고 창조적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10년 뒤, 부모의 마음으로 만들었던 아보얀의 앱은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앱 ‘픽스아트(Picsart)’로 폭발적 성장을 했다. 디자인 편집 앱 픽스아트는 지금까지 전 세계 180개국에서 10억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아르메니아에서 태동했지만 원래 영어로만 제공됐던 픽스아트 앱은 이제 28개 언어로 이용할 수 있다. 매달 1억5000만 명 넘는 고객이 픽스아트를 이용해 SNS나 쇼핑몰, 디지털 광고에 올릴 사진과 동영상을 10억 회 넘게 편집한다. 게다가 이용자 대부분은 35세 미만이다.

‘프리미엄(freemium)’ 사업 모델을 가진 픽스아트는 기본 기능과 툴은 무료로 제공하고 더 다양한 기능을 갖춘 버전은 월 구독료 4.66달러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앱 안에는 가벼운 광고가 들어가지만 데이터는 수집하지 않고 특정 이용자 집단을 노린 광고도 하지 않는다. 2021년 현재까지 매출은 1억 달러를 넘어섰다.

앞으로 매출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최근 아보얀은 소프트뱅크가 주관하고 세쿼이아 캐피털, G 스퀘어드, 트라이브 캐피털, 그래프 벤처스, 시굴러 거프 앤 컴퍼니가 참여하는 시리즈C 투자 라운드에서 직원 800명을 둔 스타트업 픽스아트가 1억3000만 달러를 모집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투자계약에서 투자 후 픽스아트의 기업가치는 약 15억 달러로 책정됐다고 한다. 아보얀은 자신의 보유 지분이 얼마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계속 픽스아트의 최대주주로 남아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픽스아트는 왓츠앱과 아주 유사합니다. 글로벌 자산이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이용하는 보편적 플랫폼이 됐죠.” 페이스북에서 상품 및 엔지니어링 부사장을 맡았던 세쿼이아의 파트너 마이크 버날이 말했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기 전에 이미 하나의 글로벌 현상이 됐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픽스아트는 기술산업 내에서도 가장 강력한 두 트렌드인 ‘SNS’, ‘디지털 상거래’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엄청나다. 누구나 원한다면 소셜 플랫폼과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콘텐트를 출판·발매할 수 있는 요즘, 수억 명이 픽스아트를 통해 자신의 콘텐트를 디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앱으로 먼저 시작해서 사용이 아주 편한 픽스아트는 AI와 자바 기반 툴을 사용하여 인스타그램 필터를 적용하는 것처럼 누구나 쉽게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하고 개선하도록 도와준다. “잠재력이 대단한 여러 사업을 하나로 묶어서 세계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런 기업은 보기 힘들다”고 G 스퀘어드의 래리 애셰브룩이 말했다. “젊은 세대는 꽤 오래전부터 픽스아트에 푹 빠져 애용해왔습니다. 이제는 전문가와 크리에이터 사이에서도 픽스아트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죠.”

예술가와 아마추어 모두 픽스아트를 이용해 사진과 동영상을 수정하고 멋지게 꾸며서 틱톡과 인스타그램, 스냅챗, 유튜브, 페이스북에 올린다. 몇 번만 터치하면 사진에 들어가는 빛의 양을 바꾸거나 화려한 색을 칠하고, 밈으로 만들기 좋은 스티커와 애니메이션을 덧입힐 수 있다. 주름을 지우고 충혈된 눈이나 여드름을 없앨 수 있으며, 허리 두께를 줄여 잘록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픽스아트는 단순히 보기 흐뭇한 셀카를 꾸미기 위한 앱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면서 독립 사업체와 레스토랑, 지역 매장 등 수백만 사업자가 인터넷으로 몰려들었고, 픽스아트를 이용해 제품 사진을 카탈로그처럼 화려하고 멋지게 만들어서 쇼피파이, 엣시, 이베이, 디팝, 도어대시를 비롯한 주요 온라인 쇼핑몰과 중고 장터에 올리고 있다. 웹사이트와 블로그, 이메일 마케팅, SNS 광고 등에 사용되는 콘텐트도 마찬가지다.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도구는 스마트폰입니다.” 세쿼이아의 버날이 말했다. “고객들은 스마트폰으로 제품 사진을 찍은 후 빠르게 뒷배경을 지우고 이미지를 예쁘게 만들어서 바로 사이트에 올리고 있습니다.”

끊김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픽스아트의 디자인 경험은 아보얀이 2011년 딸을 위해 처음 픽스아트를 만들었을 때부터 목표했던 바였다. 아보얀은 “많은 사람이 테크닉과 창의성을 동일하게 생각한다”며 “우리 기술은 사람들이 가진 테크닉을 향상해 시각적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어줍니다”라고 말했다.

아보얀은 1965년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태어나 의학 교수이자 선구적 병리학자였던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공산국가였던 아르메니아에서의 삶은 일상에 변화가 없는 안정된 상태였고, 예측 가능한 하루하루가 펼쳐졌으며, 지루했다. 공산당 고위 간부가 되는 것 말고 괜찮은 직업이라고 하면 학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예술학교에서 퇴짜를 맞은 아보얀은 어머니를 따라 학자의 길을 택했고, 아르메니아의 아메리칸대학에서 컴퓨터과학 박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혁명은 1992년에 일어났다. 소련이 무너지자 안정된 생활은 사라졌다. 대신 전쟁과 초기 자본주의의 혼란이 시작됐다. 학자들은 기업가로 변신했다. 1996년 당시 30세였던 아보얀은 박사 과정을 그만두고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 세딧(Cedit)을 창업했다. 세딧은 4년 뒤 초창기 검색엔진이었던 라이코스가 수백만 달러를 주고 인수했다. 아보얀은 2005년에 소프트웨어 R&D 기업이자 인큐베이터인 소시오(Sourcio)를 설립했고, 그다음에는 웹사이트 모니터링 서비스 모니티스(Monitis)를 창업했다. 모니티스는 2011년 팀뷰어/GFI 소프트웨어에 400만 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그리고 같은 해 아보얀은 픽스아트를 출시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뛰어들어 방향을 완전히 전환한 후에도 아보얀은 아메리칸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였던 아타바즈드 메라비얀과 미카옐 바르다냔을 고용해 픽스아트를 기업으로 키워냈다. 당시 아르메니아에서는 아이폰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엔지니어 대부분은 자바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했기 때문에 앱은 안드로이드에서 출시했다. 별 의도 없이 내린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최상의 선택이 됐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는 이미지 편집 앱 경쟁자가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픽스아트는 엄청난 수의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아보얀과 개발팀은 안드로이드가 첫 화면에서 소개하는 앱 목록에 들어가기 위해 매주 금요일 자정에 앱을 업데이트하는 등 빠른 성장을 위한 초기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매주 새로운 툴과 기능을 소개해서 고객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고 정기적으로 앱을 확인하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픽스아트가 성장하면서 아보얀은 학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매년 컴퓨터과학과 졸업생 200명을 인턴으로 채용했다. 아보얀은 “가장 비용효율적인 고용입니다. 인턴들은 회사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고요. 모두가 만족해하는 방식이죠”라고 말했다. 아보얀은 지금도 인턴 프로그램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그는 AI 기능 개발을 담당할 엔지니어 채용에 창투사에서 받은 투자금 1억3000만 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규모가 작은 디자인 앱 수백 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스타트업 캔바(Canva), 2020년 매출이 128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강자 어도비(Adobe)로 붐비는 시장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투자다. 아보얀은 독립적으로 회사를 키워낼 생각이며, 12~18개월 후 IPO를 고려하고 있다.

일단 지금은 마케팅과 광고에 힘을 쏟아 그간 대부분 입소문으로 몸집을 키워온 픽스아트 앱의 성장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회사가 더 성장하면 기업영업팀을 구축하여 픽스아트 고객사를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가 규모를 키워 대기업으로 고객층을 바꾼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에어테이블이나 드롭박스의 상품과 비슷한 디자인·퍼블리싱·협업 툴을 제공할 것이다.

2015년 세쿼이아에서 첫 투자를 받은 후 픽스아트 본사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했지만, 엔지니어링팀 대부분은 아직 아르메니아에 남아 있다. 엔지니어 인건비가 더 싸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보얀은 비주류이면서도 일에서의 성취를 가장 중요시 여기고 일에 매진하는 아르메니아 특유의 문화가 강력한 자산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아보얀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능통하고 영리하며, 안정된 현실을 뒤흔들고 도전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스타트업의 정신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혁명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 사진의 신시대 개척 픽스아트의 모바일 앱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아트로 변신시켜준다. 사진을 몇 번만 가볍게 두드리거나 문지르면 스타일이 살아난다. 색상을 바꾸거나 초현실적인 배경을 넣거나 디지털 스티커 또는 애니메이션을 붙여 넣을 수 있다.

※ 햇살과 무지개 픽스아트의 AI 편집툴을 이용하면 아마추어도 전문가 못지않은 디자인을 적용해 SNS 게시글, 온라인 쇼핑몰 페이지, SNS 마케팅 등에 사용할 수 있다.


- STEVEN BERTONI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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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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