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포브스가 바라본 세계 속 한국 

 

김민수 기자
한국은 지난해 다양한 이슈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 기업들이 미래 유망 산업에서 세계 기업들과 합종연횡을 꾀하며 달라진 위상을 자랑했고, 각국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한 K방역 시스템과 더불어 K팝과 K드라마도 이슈의 중심에 섰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글로벌 OTT 플랫폼들 간의 경쟁이 국내 콘텐트 제작사들의 든든한 뒷배가 됐다. 지난 한 해 동안 글로벌 포브스는 한국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봤을까. 포브스코리아가 정리해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 사진:넷플릭스
“오미크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한국은 이제 더는 수출이라는 엔진에 기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코로나 시대를 위한 ‘경제학 101’ 과정을 전 세계에 가르치고 있다.”

윌리엄 페섹 포브스 시니어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칼럼에서 한국이 장기화되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높은 백신 접종률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여타 선진국보다 더 잘 대처한 “검증된 실적”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실적에는 “운이 따랐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확대로 IT기기 및 데이터센터 처리 용량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칩 제조사들이 수출 실적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13년 연속 무역흑자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6445억4000만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 수출액을 달성했다.

그러나 빛과 어두움은 공존하는 법이다. 페섹은 “한국이 코로나 팬데믹에 능숙하고 민첩하게 대처했다”며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다만 (한국은) 지난 2년간 구조적 개혁을 통해 성장 동력을 개선해야 하는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구조적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전년 대비 25% 증가한 해외 수출 부문의 도움으로 경제를 안정시켰다”며 “그러나 이젠 수출에 의존할 수 있는 운이 다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미래 먹거리 선점 서두르는 韓 기업들


▎지난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리나에 위치한 조비 애비에이션 생산시설에서 유영상 SK텔레콤 CEO(왼쪽)와 조벤 비버트 조비 애비에이션 CEO가 UAM 기체에 탑승한 모습. / 사진:SK텔레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의 성장 동력을 책임지고 있는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포브스는 지난 2월 9일 SK텔레콤과 미국의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제조사인 조비 에비에이션의 파트너십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지난해 5월에 발간된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UAM 시장은 2040년 1조 달러, 2050년 9조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025년까지 UAM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포브스는 “이번 협력으로 반도체·통신사업으로 잘 알려진 SK그룹이 UAM 시장에서 한 단계 진전을 이뤄냈다”며 “롯데와 카카오모빌리티, 현대자동차의 미국 UAM 법인인 슈퍼널도 ‘플라잉카’ 개발에 뛰어들며 한국 기업들이 앞다퉈 UAM 시장 선점 경쟁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석유·가스 회사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탈화석연료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포브스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KKR이 SK그룹의 에너지 자회사인 SK E&S에 2조4000억원을 투자하며 수소와 신재생에너지 솔루션 개발에 베팅한 것에도 주목했다. KKR은 이번 투자에 관한 성명에서 “수소 시장으로의 에너지 전환이 한국의 미래 인프라 확충에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SK E&S는 이번 투자를 기반으로 ‘수소 허브’를 구축한다. 이는 SK그룹의 국내 수소사업 생태계 건설 및 글로벌 수소 시장 공략의 일환이다. SK㈜는 지난해 초 미국 수소기업 플러그파워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고, 청록수소 생산기업인 모놀리스에 잇따라 투자했다. 포브스는 관련 리서치 연구원을 통해 KKR이 ‘탄소배출 제로’를 위한 수소경제의 잠재력에 베팅했다고 풀이했다.

수소경제 등 에너지 전환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수소차 20만 대 운행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에 114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2월에는 2030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430억 달러 규모 계획을 발표해 풍력타워 제작사인 씨에스윈드(CS Wind)의 김성곤 회장을 포브스 억만장자 반열에 올려놓았다(2021년 한국 50대 부자 리스트 44위, 순자산 11억 달러)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0월 30일 친환경 미래차 현장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함께 수소차 넥쏘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전기차·암호화폐·신재생에너지 분야 ‘부호’ 탄생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8월 20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열린 ‘탄소섬유 신규 투자 협약식’에 참석한 뒤 조현준 효성 회장 등과 탄소섬유 제작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 기업들은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세계적인 흐름 속에 선제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6)에서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해 2018년 대비 40% 이상 줄이겠다고 선포했다.

정부의 에너지정책 기조와 더불어 포브스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이들은 또 있다. 조현상 효성 부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포브스는 지난해 조 부회장의 순자산을 14억 달러 규모로 추산했다. 그는 지난해 계열사인 효성첨단소재의 주가가 연초 대비 400% 이상 급등하면서 포브스 억만장자 대열에 재진입했다. 조 부회장은 효성첨단소재 2대 주주로 12.21%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21%를 보유한 효성이다.

효성첨단소재 매출의 절반 이상은 타이어코드와 같은 산업자재 판매에서 나온다. 타이어코드는 타이어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고무 내부에 넣는 보강재다. 그러나 지난해 효성첨단소재의 주가를 끌어올린 일등 공신은 무궁무진한 성장이 기대되는 탄소섬유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가벼우면서 강도와 탄성이 강한 신소재로, 수소차 등 친환경 모빌리티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효성첨단소재는 탄소섬유를 생산하는 유일한 국내 기업으로, 향후 현대차의 미래 먹거리인 수소전기차와 시너지를 모색하고 있다.

효성을 비롯한 계열사의 주가도 수소기술 투자에 대한 낙관론에 힘입어 동반 상승했다. 효성화학 주가는 지난해 연초부터 9월까지 약 160% 상승했고, 같은 기간 효성중공업은 25%, 효성은 60% 이상 상승했다. 효성화학은 액화수소의 원료가 되는 부생수소를 효성중공업에 납품하고 있으며, 효성중공업은 수소충전소 보급을 확대하는 동시에 산업용 가스전문 화학기업 린데그룹과 손잡고 세계 최대 규모의 액화수소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천보 창업주인 이상율 대표도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른 전기차 산업 확대로 수혜를 입은 인물이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해질 제조업체인 천보의 주가는 지난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을 업고 연초 대비 40% 이상 급등했다. 포브스는 이상율 대표와 천보의 공동대표인 아내 서자원씨, 두 딸의 순자산이 총 12억 달러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신재생에너지 및 전기차 시장과 더불어 지난해 새로운 포브스 억만장자를 배출한 산업은 암호화폐다.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쓴 암호화폐 열풍은 전 세계 거래소 설립자들을 포함해 많은 ‘코인 부자’들을 탄생시켰다. 한국의 두나무 공동창업자들도 수조원대 주식 부호가 됐다.

포브스는 지난해 한국 1위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기업가치가 1년 새 21배나 치솟으면서 공동창업자인 송치형 회장과 김형년 부회장이 국내 암호화폐 업계 최초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업비트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두나무는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만 1조8700억원을 올렸는데 이는 네이버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1조3255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포브스는 지난 2018년 송 회장이 3억5000만 달러에서 5억 달러 사이의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산한 바 있다. 두나무 관계자는 포브스코리아에 "송 회장과 김 부회장은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송치형 두나무 의장이 2021년 9월 1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업비트개발자포럼 (UDC) 2021’에서 웰컴스피치를 하고 있다. / 사진:두나무
두나무 최대주주인 송 회장은 26.31%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김 부회장은 2대주주로 13.51% 지분을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 선후배인 두 사람은 모바일 결제회사인 다날에서 함께 일하다가 2012년 두나무를 창업했다. 이후 2014년 주식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2017년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를 출시하며 증권업계를 혁신해왔다.

BTS 소속사인 하이브는 지난해 두나무의 지분 2.48%를 약 5000억원에 취득하면서 두나무의 기업가치를 20조원대로 평가했다. 양사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아티스트 지식재산권(IP)과 NFT를 결합해 다양한 신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BTS로 웃은 방시혁, 정부 규제에 가로막힌 김범수


▎방시혁 하이브 의장(왼쪽)이 2020년 10월 코스피 상장을 기념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을 논할 때 BTS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다. 포브스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BTS가 벌어들인 수익이 2억1400만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특히 2021년 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하이브로 사명을 바꾸고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소속사인 미국 이타카를 10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며 또한 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상장 이후 하이브(당시 빅히트)의 기업가치는 80억 달러까지 치솟았고, 방시혁 하이브 수장은 2021년 한국 50대 부자 리스트에 16위로 데뷔했다. 당시 포브스는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의 순자산을 27억 달러 규모로 추정하며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이그룹의 아버지가 K팝 산업에서 첫 억만장자가 됐다”고 말했다. 방 의장의 순위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17위, 26억 달러)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19위, 23억 달러)보다 높았고, 구광모 LG 회장(15위, 33억 달러)보다는 낮았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지난해 상반기 카카오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6월 기준으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을 제치고 한국 부자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9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수 의장을 상대로 계열사 지정 자료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며 조사를 시작하자 카카오의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3조원가량 증발했다. 김 의장의 순자산도 함께 감소해 부자 순위도 1위에서 4위까지 하락했다. 정부의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 입장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카카오의 주가 반등은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 규제로 직격탄을 맞은 건 국내 기업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구글과 애플이 자체 개발한 내부 결제 시스템으로 자사 앱 안에서 결제하도록 강요하는 ‘인앱결제’를 세계 최초로 제지한 국가가 됐다. 포브스는 “한국이 기술 거물들의 힘을 견제한 첫 번째 국가가 됐다”면서 “미국 법원과 국회의원들도 이와 비슷한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 이어 네덜란드와 인도도 애플의 앱스토어 인앱 결제 관행에 제동을 걸며 제재에 나섰다.

‘K콘텐트 붐’에 가려진 현실

“아시아 4위의 경제대국이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1위가 됐을까?”

윌리엄 페섹은 “10년 전 한국이 문화 콘텐트 수출로 국내총생산(GDP)을 견인하기 위해 실시한 ‘코리안 웨이브’ 전략이 문재인 대통령 정권에 와서 현실이 되었다”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벌어들이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한국을 코로나 사태에서 회복시키는 데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은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주요 통화국이다. 외신들은 한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넘겼듯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잘 대처하며 큰 재앙을 무사히 피해갔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윌리엄 페섹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붐을 둘러싼 온갖 흥분에 잊힌 것은 바로 문재인 정권의 성과가 얼마나 미미한지에 대한 자각이다”라며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어린이들의 놀이에 목숨을 거는 [오징어 게임]은 기록적인 가계부채와 정체된 임금,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무섭게 뒤섞인 한국의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오징어 게임]의 흥행은 한국 언론이 MZ세대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했다고 앞다투어 보도하는 시점에 찾아왔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너무 많은 사람이 뒤처져 있는 현 경제 상황에서 산업 구조를 바꿀 준비가 되었을까?”라고 날카롭게 질문했다.

그는 K콘텐트 붐으로 많은 이가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도 지적했다. 바로 “온갖 화려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콘텐트 산업 규모는 아직 메모리 반도체의 10분의 1 정도로 왜소하다”는 점이다. 그는 “문제는 한국이 반도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고, 한국 제조업계가 ‘중국제조 2025’에 보조를 맞추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 드라마 시장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한국 최초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 [킹덤]을 시작으로 [스위트홈], [지옥], [그해 우리는], [알고 있지만], [너를 닮은 사람], [갯마을 차차차], [마인] 등 히트작이 줄줄이 탄생했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 이후 넷플릭스는 올해 한국에 1조원을 투입하며 25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할 계획이다. 2021년 15개에서 2022년 25개로 콘텐트를 늘리면서 투자금도 두 배로 커졌다.

지난해 말 한국에 진출한 디즈니 플러스도 올해 콘텐트 제작에 230억 달러(약 27조5000억원)를 투자할 전망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만 50여 개 넘는 오리지널 콘텐트를 선보인다. 콘텐트 기업과 OTT 플랫폼들의 투자 규모는 계속 커지고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CJ ENM이 영화 [라라랜드] 제작사인 엔데버 콘텐트(Endeavor Contents)를 9200억원에 인수하며 글로벌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고, 웨이브는 2025년까지 1조원 규모 콘텐트 투자를 선언했다. 티빙도 2023년까지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에 4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202203호 (2022.0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