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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태 쿠팡페이 대표 

‘더 빠르고 민첩하게’ 애자일의 힘 

김영문 기자
쿠팡페이 리더가 AWS서밋코리아 이그젝리더스(ExecLeaders)에 패널로 나섰다. 비즈니스 리더에게 ‘애자일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다. 매년 결제 거래액만 수십조원에 달하는 쿠팡을 뒷받침하는 쿠팡페이는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소규모 단위 팀으로 더 민첩하게 소비자의 니즈를 좇고 있다.

▎경인태 쿠팡페이 대표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2014년 쿠팡에 합류했다. 당시 쿠팡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고 빠른 애자일 조직을 표방한 기업이었다. 쿠팡페이 수장으로 올라선 그는 쿠팡의 애자일 철학을 ‘문화’로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한다. / 사진:쿠팡페이
지난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한 이커머스 서비스는 쿠팡이었다. 지난 4월 13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인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이커머스 서비스의 올 1분기 결제금액을 추정해보니 쿠팡(쿠팡이츠 포함), 네이버, SSG닷컴·G마켓글로벌, 배달의민족, 11번가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 결제금액이 7조5172억원이었던 쿠팡은 올해 1분기에는 9조6226억원이 결제돼 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온라인쇼핑 거래액을 보면 지난해 쿠팡 총거래액은 34조원이었으니 올해는 이를 뛰어넘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선다. 쿠팡이 네이버를 제치고 명실상부 국내 최대 이커머스로 등극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도 지난달 콘퍼런스콜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올해 흑자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만약 올해 흑자전환에 성공한다면 2010년 8월 쿠팡 창업 이후 12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셈이다. 쿠팡은 지금도 수조원을 투자해 전국을 커버하는 대규모 물류시설을 짓고 있다. 2020년 이미 231만㎡(70만 평)에 달했던 물류 시설을 내년까지 528만㎡(160만 평)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종업원 월급, 토지 이용료 등 매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임에도 쿠팡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정비쯤은 그냥 넘어설 정도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쿠팡이 몸집을 불릴수록 주목받는 자회사가 바로 쿠팡페이다. 이 회사는 2020년 8월 쿠팡에서 독립법인으로 분사하면서 자연스레 쿠팡의 결제, 선불충전 서비스를 이어가기 위해 쿠팡이 수집하는 신용정보도 넘겨받았다. 길목을 잡은 덕에 쿠팡페이도 쿠팡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쿠페이 등록 인원만 1000만 명을 훌쩍 넘긴 지 오래고, 쿠팡 거래액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매해 적자를 이어가는 쿠팡과 달리 쿠팡페이는 실적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쿠팡페이는 지난해 매출액 5688억원, 당기순이익 358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보다 매출액(1795억원)은 약 3배, 당기순이익(71억원)은 무려 5배나 뛴 셈이다.

쿠팡페이 처리 금액만 10조 육박


▎ 사진:쿠팡페이
성장세가 너무 가파르다 보니 쿠팡페이가 전방위로 핀테크 사업을 확대할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 업계는 쿠팡페이가 마음만 먹으면 결제뿐만 아니라 송금, 대출, 자산관리, 보험, 증권 등 여러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고 봤다. 경인태(47) 대표가 쿠팡페이 수장으로 올라서며 “‘종합 핀테크 플랫폼’으로 발전하겠다”고 밝혔던 포부도 한몫했다. 하지만 지난 4월 1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쿠팡 본사에서 만난 경 대표는 쿠팡페이 본연의 역할에 더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그는 “쿠팡이 원클릭 결제 시스템인 ‘쿠페이’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매우 불편했다”며 “지금도 결제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면 이탈하는 고객이 많아 고객이 더 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이자 미션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쿠팡페이 처리 규모가 커질수록 그의 어깨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경 대표는 당장 사업 확장보다는 ‘서비스 안정’에 무게를 두기로 하고 코로나19 이후 내부 재정비에 집중했다. 먼저 경력 개발자를 계속 충원하고 클라우드 도입을 서둘렀다. 2017년 아마존웹서비스(이하 AWS)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한 쿠팡처럼 메인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부 옮긴 것이다. 그는 “쿠팡과 달리 쿠팡페이는 금융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클라우드로 마이그레이션하는 과정이 훨씬 복잡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폭증하는 거래를 소화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드로 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경 대표가 인프라 강화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애자일(Agile·민첩) 문화’다. 애자일 문화란 급변하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만든 유연한 조직 운영방식을 의미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시장에 알려진 지 20년이 넘은 기법이지만 아직도 한국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만연한 한국에서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기반으로 소규모 프로덕트 오너(PO) 체제로 업무 체계를 바꾸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쿠팡은 창업할 때부터 고객의 피드백에 집중하기 위해 ‘와우 더 커스터머(WOW the customer)’를 내세우며 스스로 애자일 조직임을 천명했다. 스타트업 창업가였던 경 대표가 2014년 쿠팡에 합류한 것도 ‘애자일 문화’를 온전히 경험해보기 위함이 컸다. 쿠팡페이 수장이 된 그는 쿠팡의 애자일 철학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쿠팡 창업 초기부터 애자일 문화를 표방했다.

그렇다. 사실 쿠팡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자금력과 물류 인프라만큼이나 애자일 문화가 강점이라 생각한다. 쿠팡 내에서 핀테크 사업을 펼칠 때도 내부 조직을 프로덕트 오너 중심의 소규모 단위로 운영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유동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해체하는 식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런 민첩함 덕분에 쿠팡이 일본과 대만에 퀵커머스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2개월이면 충분하다. 일반 유통 대기업이었다면 1년 넘게 걸렸을 일이다.

쿠팡페이가 특별히 적용하는 애자일 기법이 있나.

없다. 애자일을 두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쿠팡페이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클라우드로 마이그레이션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우리 측 전담팀과 AWS 팀이 마주 앉아 일일이 작업을 체크하며 준비해야 했다. 팀을 꾸리는 와중에 애자일 화두를 던져놓고 나가면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보다 때 아닌 애자일 논쟁이 벌어진다. ‘원래 애자일은 그런 게 아니다’, ‘개발 프로세스에 애자일은 이렇게 활용돼야 한다’ 등이다. ‘방법론’에 매달리면 정작 애자일을 도입하려던 목적을 잃게 된다.

그럼 애자일이 뭔가.

그냥 문화 그 자체다. 우리가 애자일이라는 단어 때문에 간혹 이런 문화를 왜 도입하는지 잊을 때가 많다. 애자일 프로세스는 언제나 사용자(User) 또는 고객을 염두에 두면서 시작한다. 결국 고객을 만족하게 하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얘기다. 페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프로덕트를 빠르게 배포하고 고객 피드백을 받아 다시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고객 만족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쿠팡은 초기부터 개발, 배포, 테스트해서 다시 배포하는 것까지 2주 단위로 잡았고 재차 고객 피드백을 끌어냈다.

어디까지가 애자일이라고 봐야 할까.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페이 서비스를 검토하면서 업무 관점으로만 접근하고 추진하다가 금융 관련 규제 검토가 늦어진 적이 있다. 해당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개발팀과 서비스팀, 컴플라이언스팀이 매일 크로스체크 할 업무를 쪼개고 연결해 추진해나갔다. 달라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애자일’이라고 본다. 일반 회사 같았으면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관련 예산 청구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을 거다. 새로운 서비스 출시에만 1년 이상 걸리는 이유다.

한국이 핀테크 분야에서 규제가 정말 심한 곳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관점이나 분야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 당국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도 많다. 국내에서도 모든 금융 비즈니스에 규제가 심한 것은 아니다. 규제가 모호하거나 없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한국은 대다수의 규제가 합리적으로 정립돼 있다. 기술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건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규제 때문에 사업을 못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실제 비즈니스에도 긍정적이었나.

쿠팡페이에서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페이먼트 컨버전(Payment Conversion)이다. 고객이 물건을 고르고 구매하기와 결제하기를 누른 이후 구매 완료까지의 한 패턴을 우리는 ‘컨버전’이라고 부른다. 이 패턴이 지속하려면 결제 과정에서 한 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소프트웨어를 배포하기 전에 시작부터 끝까지 ‘엔드-투-엔드(End-to-End)’ 테스트를 진행한 후 배포한다. 여기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버그가 있다. 그래서 ‘컨트롤 그룹’과 ‘테스트그룹’을 소규모로 나눠 특정 고객군에만 일정 기간 테스트를 하며 개선해 전체로 확장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고객 피드백을 계속해서 시스템에 반영할 수 있게 됐고, 페이먼트 컨버전 수치가 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난 이 일련의 과정이 애자일 프로세스였다고 생각한다.

클라우드 이전으로 ‘보안’·‘안전’ 확보

이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려면 클라우드 체제가 필수겠다.

그렇다. 네이티브 클라우드 회사는 아니었지만, 분명 클라우드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안, 안전, 테스트 측면에서 그렇다. 쿠팡페이는 전자금융업자 라이선스(PG) 회사라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금융회사가 클라우드로 시스템을 완전히 전환하려면 금융감독원에 클라우드 이용보고를 해야 한다. 여기에 각종 보안인증서가 필요한데, AWS와 손잡지 않고 독자적으로 이 업무를 수행했다면 몇 년이 걸렸을지 모를 일이다. 시스템 안정성도 금융회사라면 놓칠 수 없는 요소다. 온프레미스(Onpremise, 기업 사내 구축)로 추진했다면 별도의 데이터센터 두 곳을 구축해 실시간으로 동기화를 해야 하고, 돈도 많이 들었을 거다. 하지만 클라우드로 전환하면 모든 준비가 깔끔하게 끝난다. 결국 애자일 문화를 더 탄탄하게 해주는 인프라인 셈이다.

다른 이점도 있나.

세상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플랫폼 개발 자체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이곳에 흐르는 데이터가 더 중요해졌다. 플랫폼을 새로 개발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다. 클라우드 서비스도 이런 욕구에 발맞춰 계속 진화해왔고, 예전 같으면 여러 개발팀이 매달려 1년 이상 걸려 만들어야 하는 인프라를 클라우드는 서비스로 제공해버린다. 얼핏 개발자 역할이 많이 줄 것 같지만, 엔지니어 회사 입장에서는 개발자들을 정밀한 고객 서비스 개발이나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하는 일에 투입할 기회를 얻어 대환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앞으로 클라우드로 전환하려고 시도하는 기업이 많이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쿠팡 결제액이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설마 이런 대규모 트래픽을 클라우드에서 소화하나.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아무 생각 없이 클라우드를 이용하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여기서 개발진이 클라우드 시스템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능력이 드러나는 법이다. 클라우드 시스템은 이미 비용 효율화를 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를 제공한다. 트래픽이 들어왔을 때 클라우드 리소스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우리만의 지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AWS서밋코리아2022’ 이그젝리더스 세션에서 패널로도 참여해 애자일을 논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기업에 조언한다면.

다시 말하지만 애자일은 문화다. 회사마다 상품과 서비스가 다르고 속한 시장이 다르다. 이미 업계에는 수십 가지 애자일 기법이 있다. 어느 것을 골라 가져다 쓸 것이냐를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자일 문화를 왜 도입하려는지부터 조직 내부에서 심도 있게 고민해보면 좋겠다. 우리도 표면상 애자일 하자고 하면 여기저기서 ‘이거 애자일 아닌데?’라며 수정(?)에 저항하는 직원이 나타난다. 방법론은 방법론일 뿐이다. 쿠팡과 쿠팡페이에서는 어떤 미팅을 하든 피드백을 받아서 그 내용을 보고 다시 개선하려는 시도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게 애자일 문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쿠팡의 목표는 고객들이 ‘예전에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재는 쿠팡의 결제 서비스를 주로 담당하고 있지만, 우리 역량을 따져본 후에 사업 방향을 죽 펼쳐놓고 보면 정말 할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쿠팡을 벗어나려면 ‘쿠팡 없이 어떻게 하겠어’란 인식을 깰 정도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지금도 밤낮없이 고객 피드백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새로운 것을 찾는 이유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2205호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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