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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5) | 권이선 LYK ART PROJECTS 대표 

일상 속 예술의 가치를 전하다 

미술시장의 문턱이 낮아졌다. 갤러리나 아트페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에서 손쉽게 미술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호텔이나 백화점, 공공시설 등 주변 곳곳에서 공간을 가득 채운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정승우 이사장이 아트 컨설턴트이자 큐레이터, 저술가로 활동하며 미술을 일상 속에서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대중과의 교차점을 확장해온 권이선 대표를 만났다.

뉴욕을 기반으로 다양한 국제 예술 및 디자인 프로젝트를 큐레이팅하고 컨설팅하는 회사인 LYK Art Projects를 운영하며, 글로벌 아트 컨설팅 그룹 벨베누아르(Velvenoir)의 파트너로도 활동 중인 권이선 대표. 권 대표는 고려대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문화예술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미국에서 미술관 운영에 관한 논문을 썼으며, 미술관을 주제로 한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전 세계 수많은 현대미술 작가를 인터뷰했고, 현대미술 작품에 관한 글들을 잡지에 기고하며 뉴욕과 한국 미술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특히 디자인과 건축 분야의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퍼블릭 아트에 관한 글을 다수 집필하며 뉴욕 미술관과 공공미술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


▎『위대한 서양미술사』는 지역적·역사적 흐름 안에서 시대별 시각 예술을 설명한다.
저서로는 『뉴욕의 특별한 미술관』(아트북스, 2012), 『모두의 미술』(아트북스, 2017), 『위대한 서양미술사 1』(가로책길, 2021), 『위대한 서양미술사 2』(가로책길, 2022)가 있다. 특히 최근 출간한 『위대한 서양미술사』는 그간 발행된 미술사 책과 달리 사조별, 작가별이 아닌 시대적 상황과 지리적 차원에서 리뷰를 기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미술사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미술을 모르는 이를 위한 교양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전시 기획과 아트 컨설팅을 하고 있다. 서울과 뉴욕에서 미술이론과 예술 경영을 공부했고, 뉴욕에 거주하면서 일한 지 20여 년이 되어간다. 초기에는 글로벌 아트 자문 회사에 다녔고, 첼시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뉴욕이라는 도시와 관련해 미술관, 현대미술에 관한 책 몇 권과 미술사 책을 펴냈고, 지금은 예술 작품 자문 및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LYK Projects라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 때는 회화 작업을 했고 대학에서는 미술교육을 전공했으며, 대학원 때부터는 미술사와 예술문화경영을 공부했다. 체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시작해 이론적 연구로 나아간 경우다. 그래서 작가들의 심층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예술 이론을 공부하고 미술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에 콘텐트를 만들고 정리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나름의 방법과 체계를 가지고 있다.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유학을 계획하며 예술 경영에 뜻을 두었기에 다른 도시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며 미술시장에서 문화적 전통을 따라가던 흐름이 도시의 다양성과 수용성, 시장경제의 규모에 좌우되기 시작했고, 뉴욕은 글로벌 아트의 메카로 자리 잡은 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다. 지구촌에 새로운 것, 첨단적인 것이 탄생하면 그것은 모두 뉴욕으로 간다. 앞서가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빨아들이는 허브다. 이른바 ‘똘레랑스’가 높은 도시이자 예술가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큐베이션하는 곳이다. 뉴욕이 복합성과 다양성, 창조성과 개방성이 공존하며, 동시대의 미술 담론을 이끌어가는 최전선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뉴욕을 떠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한국에는 어떤 일로 방문했나.

최근 기획한 전시와 기업 컨설팅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방문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해왔는데, 이번에는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정득용 작가의 다양한 최근 작품을 서울로 옮겨와 개인전 형태로 소개했다. 삼청동과 이태원에 공간을 가지고 있는 스튜디오 디바인과 함께 현대미술 설치·전시에 대해 논의해왔고, 경리단길 초입의 갤러리에서 정 작가의 국내 첫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뉴욕은 물론 유럽의 여러 도시에는 그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입지를 굳혀나가는 한인 예술가가 다수 있는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이다 보니 그들을 국내에 알리고 선보여야겠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게 됐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정득용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을 기획했다.
뉴욕에서 한국과 연계하여 전시 이외에도 여러 일을 하고 있다.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뉴욕을 방문하는 기업 회장님이나 임원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관련 일정을 기획하고 뉴욕의 미술시장을 소개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분들 가운데는 현대미술 작품을 컬렉팅하고 주기적으로 예술 행사에 참여하며, 새로운 작품과 작가를 찾아 나설 만큼 열정을 지닌 분이 많다. 내 역할은 그분들의 관심과 취향을 토대로 미술, 더 나아가 문화예술 정보를 최대한 폭넓게 알려드리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개인적 선호나 경영하는 기업의 가치와 결부해 큰 방향을 잡아드리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어떤 기업들을 컨설팅했는지 궁금하다.

생각보다 많은 기업인이 문화예술 관련 일정에 시간을 크게 할애한다. 투자처와 미팅하기 위해 3~4일 정도 방문하는 짧은 체류 기간에도 하루를 온전히 뮤지엄에서 보내거나, 뉴욕이나 뉴저지에 있는 미국 법인 사무실에서 미술사 또는 뉴욕 현대미술 관련 수업을 듣는 분들도 있다. 포스코, 하나금융그룹, 삼성전자 등 여러 기업 회장님과 대표님들의 뉴욕 방문 시 문화예술 관련 일정에 관여한 지 십여 년이 됐다. 그분들의 해외 일정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어떻게 보면 단편적인 정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 클라이언트들이 미술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관심이 높아질수록 국내 미술시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일반인이 쉽게 미술 분야에, 특히 뮤지엄과 퍼블릭 아트 분야에 다가설 수 있도록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뉴욕에서 공부하고 일했기 때문에 뉴욕의 동시대 예술 지형을 전달하고자 했고, 가장 기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미술관에 관한 책을 먼저 선보였다. 그리고 뮤지엄 관련 활동과 컬렉션 컨설팅을 시작하면서 퍼블릭 아트라는 주제를 포함한 뉴욕 현대미술의 현장을 알리는 출판 활동으로 연결됐고, 그 이후 미술사까지 이어지며 저술 활동이 여러 갈래로 확장됐다. 모두 일반 대중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한 문체로 썼다. 저서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을 많이 들였는데, 특히 퍼블릭 아트와 현대미술을 다룬 책은 해외의 좋은 사례들이 한국에서 참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평소 예술과 건축물을 연계하고,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예술작품 설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간에 맞는 작품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기에 자연히 실내외 건축 환경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현대미술을 다루는 기획자로서 건축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버지가 도시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어머니가 조각가여서 자라온 배경이 공간과 디자인 영역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할 때는 건축학과 수업을 이수할 정도로 개인적 열정도 높았다. 모든 예술 장르가 그러하지만 조형예술은 특히나 건축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퍼블릭 아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공공기관과 상업 영역이 긴밀히 상응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형물을 설치할 때 대충 공간을 비워두었다가 나중에 채우는 식이 아니라, 설계나 시공 초기 단계에서부터 작가와 기획자를 참여시키고 합리적인 시간을 주어야 한다. 뉴욕에서는 기획에서 설치까지 예술 관계자를 존중하는 진행 과정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곤 한다. 작가와 작품의 내용을 중시하는 것은 물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행정적 환경과 문화적 토양에 대해서도 늘 예의 주시해야 한다.

공간에 조화롭게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하고 설치할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작품 컨설팅에서 중요한 요건 가운데 하나는 작품의 기세가 과도해서 공간이 편안하지 못하거나 작품이 약하여 공간에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상황의 경계선에 예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작품과 공간 사이에는 적정한 긴장과 밸런스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과 창작 주체인 아티스트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 물론 동상과 같은 고전적 의미의 공공 조형물은 상징성이 부각되어야 하겠지만, 보통 현대미술 작품이 설치되는 건축물의 내외부 공간이나 오피스 빌딩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작품과 공간의 조화로움은 작품의 가치와 소장가의 취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최근 서양미술사 서적도 출판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미술사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품 컨설팅을 하면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일을 해왔지만, 특정 시기와 작가만 다뤘기에 종합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두 권으로 나온 『위대한 서양미술사』는 시대별 시각예술의 특징을 알기 쉽게 압축하여 기술한 책이다. 미술 사조나 운동으로 구획한 일반 미술사 책과 달리, ‘지역적·역사적 흐름’ 안에서 특정 예술적 양식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일례로 바로크라고 불리는 한 시대의 예술 양식도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 네덜란드에서 각기 뚜렷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하나의 스타일로 묶는 대신 지역별 정치문화 상황을 함께 기술했다. 20세기 미술에서도 러시아의 수프리마티즘, 이탈리아의 퓨처리즘, 여러 도시에서 발생한 다다와 초현실주의 등이 모두 시기적으로 겹치거나 동시대에 공존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인 사조로 공부하곤 한다. 여러 미술 양식들이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여전히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예술 사조를 선형적으로 배우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융통성 있게 미술 지식을 넓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립 예술 기관의 외부 기획도 하고 상업 갤러리도 운영하는 등 다각도에서 큐레이팅과 컨설팅을 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든 상업적인 기관이든 사회적으로 보면 모두 사회 문화 창달을 위해 필요한 부분들이다. 예술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공적인 기관, 사적인 시장, 학계가 트라이포드처럼 하나로 모이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줄 때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다. 학예 기능을 하는 뮤지엄에서도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서는 아트 마케팅이 필요하고, 갤러리 측에서는 작품의 내용적·질적 검증을 위해 뮤지엄 같은 기능을 추가해야 공공의 신뢰를 얻게 된다.

한국의 예술품 컬렉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먼저 작품의 수준이 시장의 평가나 선호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갤러리에서 완판되고 옥션에서 고가에 낙찰되었다고 반드시 좋은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작품이라고 모두에게서 공감과 소통을 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예술을 향유하는 컬렉터들이 아트페어와 같은 상업 행사뿐만 아니라 뮤지엄과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 비엔날레 같은 행사도 둘러보고, 미술 서적이나 평론을 통해 스스로 작가의 작품 세계에 깊이 들어가봐야 한다. 미술사적 가치 기준도 이해하고 자신의 개인적 취향도 함께 길러졌을 때, 예술 작품이 바람직하게 소비될 수 있다. 이렇게 준비된 컬렉터가 많아져야 미술계가 양적·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 정승우는…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208호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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