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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13) 김상훈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학장 

마케팅과 예술의 특별한 만남 

지난해 대한민국 미술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서울에 진출했고, 각종 아트페어와 경매시장은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정승우 이사장이 국내 최초의 아트마켓 영문 리포트인 『코리아 아트마켓 2022』를 발간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김상훈 학장을 만났다. 김 교수가 주도한 『코리아 아트마켓 2022』는 망망대해에서 지도에 의존하여 항해하듯 변동성이 심한 아트마켓에서 체계적이고 공신력 있는 데이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미술시장을 해외에 알리는 선봉장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상훈 교수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2001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는 경영학자다. 지난해부터 경영대학 학장을 맡아 학교 행정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저서로는 『진정성 마케팅(끌리는 브랜드를 만드는 9가지 방법)』, 『2015-2017 앞으로 3년 세계 트렌드』, 『하이테크 마케팅』, 『상식 파괴의 경영 트렌드 28』 등이 있다.

2006년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미술관 운영위원으로 합류해 17년 동안 활동하며 미술계로도 발을 넓혔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주최로 미술계 사람들뿐만 아니라 창조적 감성 경영을 추구하는 CEO들과 함께 학문과 예술에 대해 소통하는 예술문화최고지도자과정(ACP)을 기획하고 출범시켜 올해 18기를 모집했다. 다양한 예술계 인사를 만나고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내로라하는 예술 전문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경영학자이면서 아트마켓 전문가로도 손꼽히고 있다.

서울대학교에 미술경영 협동과정이라는 대학원 과정이 있는데 수년간 겸무 교수를 맡아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도 많이 했다. 경영학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미술시장, 즉 아트마켓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케팅과 예술은 완전히 다른 분야 같은데.

요즘 문화마케팅이라는 수업을 하고 있는데, 예술을 활용한 마케팅을 가르친다.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예술을 빌려 전달하면 굉장히 효과적이다. 물건을 억지로 사라고 강요하면 사람들은 다 도망가기 마련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광고가 나오면 건너뛰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예술을 접목하면 오히려 고객들이 먼저 다가온다. 최근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아티스트 쿠사마 야오이의 컬래버레이션이 엄청난 화제가 됐다. 사람들이 쿠사마 야오이의 조형물과 작품으로 꾸민 건물을 감상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파리나 뉴욕 매장으로 날아갈 만큼 인기가 좋았다. 이렇듯 고객을 끌어당기는 예술이 앞으로는 마케팅에서도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이다.

서울대 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문화예술 기관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 미술관이 오픈한 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사, 관리, 재무 등을 돕기 위해 운영위원으로 합류했다. 작품을 자주 접하고 직접 교육에 참여하다 보니 어느새 미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서울대 미술관 운영위원은 오픈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맡고 있고, 미술계 인맥이 점점 많아져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 자문으로 시작해 경영 평가부터 전시 평가, 광고 제작 등 홍보 활동까지 영역을 넓히며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 이사로도 활동했다. 이 밖에도 서울 시립미술관 운영 자문 및 구매 심의위원, 정부 미술품 운영위원회 초대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태진문화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미술관과 관련된 거의 모든 활동을 두루 경험한 셈이다.

『코리아 아트마켓 2022』를 발간하게 된 계기가 있나.

2008년 리먼사태가 오기 전, 단색화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2010년 이후, 아트페어와 경매시장으로 뜨거웠던 지난해 등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핫했던 시기가 몇 번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나라 미술을 정리해 해외에 알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의아했다. 아트넷 리포트나 바젤 리포트처럼 우리도 리포트를 발행해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려보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계원예대 재단인 계원학원 이사직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은 파라디이스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고, 서울대 경연연구소가 발간하고, 문화관광체육부에서 번역 지원을 받아, 국내 최초로 한국 미술시장을 다룬 영문 리포트 『코리아 아트마켓 2022』가 지난해 탄생했다. 마침 프리즈 서울이 열려 한국 미술시장이 한창 주목받던 시기여서 타이밍도 좋았다. 올해는 내용을 조금 더 보강해서 『코리아 아트마켓 2023』을 발행할 예정이고, 앞으로도 매년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 최초 발행이기에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고생 많이 했다. (웃음) 무엇보다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번역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번역 비용도 만만치 않고. 다행히도 우리나라 문화를 해외에 알리겠다는 취지에 공감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번역을 도와줘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 리포트는 책으로 제본하는 대신에 PDF 파일로만 만들어 인쇄 과정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했다. 필요한 곳에 무료로 재빨리 전송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창간호 작업이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최근 한국 미술시장의 경향을 갤러리, 아트페어, 경매, 컬렉터 트렌드, 작가론 등 8가지 핵심 사항으로 정리하며 필진과 인터뷰이 구성에 특히 신경 썼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트 프로페셔널들을 직접 섭외해 필진을 구성했고, 컬렉터, 아티스트, 갤러리스트를 인터뷰했다. 컬렉터로는 아이돌 그룹 빅뱅 출신의 최승현씨, 아티스트로는 화가 박서보 선생님, 갤러리스트로는 파리에 본점을 두고 한국에 제일 먼저 진출한 페로탕 갤러리를 인터뷰했다. 특히 최승현씨는 자신의 영문 인터뷰를 직접 한글로 번역해 SNS에 업로드했는데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코리아 아트마켓 2022』를 홍보하는 데 일조했다. 무엇보다 미술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진정한 컬렉터였기에 특히 기억에 남는다.

리포트의 존재 의의를 부여한다면.


▎국내 최초로 한국 미술시장을 다룬 영문 리포트『 코리아 아트 마켓 2022
한국 미술시장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 미술시장의 다양한 경험과 이슈를 해외에 더욱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리포트 『Korea Art Market(KAM)』 은 애초부터 해외 컬렉터와 미술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서 영어로만 발간된다. 해외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경매, 갤러리, 아트페어, 아티스트, 컬렉터를 비롯해 앞서가는 최신 기술 등 한국 미술시장의 요소들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 대한민국 미술의 국제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갤러리와 아트페어, 미술관 등 인프라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되지만 작가들의 수준만큼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적·마케팅적으로 뒷받침해준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많다. 머지않아 젊은 세대에서 박서보 선생님의 계보를 이을 대형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쏟아지리라 기대한다.

데이터의 축적·분석과 아트마켓 발전 간의 상관관계는.

아트마켓이 발전하려면 데이터의 축적과 분석은 필수다. 그런데 아직 국내 미술시장은 컬렉터나 갤러리 모두 데이터의 공개·공유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많아 자료 수집·분석에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앞으로 많은 합의와 개선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최근 AI, 메타버스, NFT가 큰 화두다. 예술과 긍정적인 상생이 가능하다고 보나.

기술 트렌드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해야 한다. 다만 아티스트, 소비자나 구매자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미술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설명을 보면 너무 어렵게 쓰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게 하려면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지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건희 컬렉션의 서양 작가 작품을 보면 샤갈도 있고 모네도 있고 고갱도 있다. 그 작품들을 따로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작품인데 전시에 가보니 기가 막히게 짝을 지어놓았더라. 고갱과 피사로가 어떤 관계였는지 연관 지어 함께 묶고, 모네와 르누아르를 짝지어 놓는 등 기획하는 사람이 화가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내 나란히 묶어 놓은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시 작품 해설도 마찬가지다. 전시에 대해 많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이해하기 쉬운 내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 앞으로 기획자들의 노력으로 미술 전시의 해설이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표현돼 더 많은 사람이 미술작품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2020년에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아미(ART MANAGEMENT INITIATIVE: 미술경영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미술계에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밀실에서 얘기할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함께 모여 의견을 제시하고 목소리를 내자는 목적으로 구성했는데 제대로 활동도 못 해보고 코로나를 만났다. 1년에 한두 번 소규모 포럼을 진행했는데 그마저도 다 비공개였다. 이제 그 연구를 대폭 확대해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논의가 필요한 화두를 던지고 사람들을 설득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미술시장을 만들고 싶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04호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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